조선비즈 | 조선비즈K | Tech Chosun | 조선일보
1차 대전 후 승전국 감시 피해 무기 개발, 독일군 육성 기업도 혜안·의지 가진 리더 있어야 위기 극복 가능
  > 2017년05월 200호 > 위클리비즈 인사이트
[War & Tech 14] 변혁을 이끈 한스 폰 젝트 장군
1차 대전 후 승전국 감시 피해 무기 개발, 독일군 육성 기업도 혜안·의지 가진 리더 있어야 위기 극복 가능
기사입력 2017.05.16 12:39


1936년 독일군을 사열하는 한스 폰 젝트(맨 오른쪽) 장군. 그는 놀라운 리더십으로 해체되다시피 한 독일군을 짧은 시간에 강군으로 만든 발판을 놓았다. <사진 : 위키피디아>

1919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 특히 군부에는 엄청난 치욕이었다. 종전 당시의 전선만 놓고 본다면 결코 불리한 상황이 아니었으나 패배를 강요받았고 제1차세계대전 발발에 대한 책임까지 물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차·전투기 등의 무기 개발과 보유를 금지당했고, 총병력도 10만으로 제한받았다.

그러나 독일은 불과 20년 후인 1939년에 제2차세계대전을 벌였고 1942년까지 유럽의 지배자처럼 행세했다. 엄밀히 말해 히틀러가 재군비를 선언한 1935년까지도 독일이 베르사유 조약을 준수했으니, 실제로 독일군이 대놓고 전쟁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기간은 겨우 4년밖에 되지 않았다.

경무장한 10만의 독일군이 불과 4년 만에 중무장한 300만 대군으로 급성장한 것이다. 물론 독일의 침략 행위는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바닥까지 떨어졌던 독일군의 놀라운 변신은 가히 연구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극적인 반전의 이면에는 묵묵히 어려운 시절을 이끌었던 한스 폰 젝트(Hans von Seeckt) 장군이 있었다.

젝트는 제1차세계대전이 끝난 다음 해인 1919년 7월 7일 독일 육군 참모총장에 올랐다. 하지만 한때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육군은 겨우 간판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1차 대전 승전국, 패전국 독일 군대 축소

더구나 승전국이 눈엣가시이자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독일 육군 총참모본부를 전격 폐지시키면서 불과 일주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젝트는 수송을 관장하던 군 요원들을 정부 교통부서로 보내 예전 업무를 계속 관리하는 식으로 총참모본부를 비밀리에 존속시켰다. 더불어 외부의 강요에 의해 대대적 감군에 들어가자, 최대한 엘리트만 선별해 남기면서 군을 소수 정예화시켰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전과를 올린 많은 독일의 명장들이 바로 이때 키워졌다.

하지만 젝트가 이렇게 인력 관리를 철저히 했다고 독일군이 기회를 잡자마자 곧바로 강군으로 재건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전쟁은 사람보다 무기의 질에 의해 결정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었기에 질적으로 좋은 무기를 보유하지 않고는 강군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은 무기의 개발과 보유에 엄청난 제한을 받고 있었다.


비밀리에 전차·전투기 연구개발

젝트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좋은 무기의 개발과 보유를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탄띠식 중기관총의 개발과 보유는 금지당했지만 탄창식 경기관총은 가능했던 베르사유 조약의 맹점을 파고들었다. 탄창식으로 개발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했지만 재군비 선언 후 탄띠식으로 완성된 MG34 기관총이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는 항공기와 기갑부대의 창설을 미리 준비한 혜안에 비한다면 작은 사례일 뿐이다. 젝트는 공군이 장차 전쟁의 주역이 되리라 확신해 민항기를 개발할 때 군용기로 개조가 가능하도록 미리 준비시켰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맹활약한 He 111 폭격기와 Ju 52 수송기가 그렇게 탄생했다.

젝트는 장차 전쟁에서 전차와 기갑부대의 역할이 클 것이라 생각해 연구와 인력 양성에도 힘썼다. 당장은 승전국의 제한과 감시를 받고 있어서 차량에 캔버스로 만든 전차 모형을 씌워 훈련했고 트랙터를 만든다고 둘러대며 기초적인 개발을 진행했지만, 결국 이렇게 얻은 노하우와 양성된 인력은 이후 유명한 독일 기갑부대의 초석이 됐다.

그래서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전격전을 완성한 인물은 아니지만 젝트는 이런 군사 사상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손꼽힌다. 이 같은 노력으로 독일군은 차근히 내실을 다져놓아 기회만 되면 크게 성장할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망한 군대가 이처럼 짧은 시간에 다시 거대한 전쟁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기초를 다져놓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가 남긴 흔적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한 후 와신상담해 23년 후에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시작한 한니발 정도를 제외한다면 세계 전쟁사에서 이런 사례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1989년 유동성 지원을 시작으로 1999년 워크아웃, 2015년 4조2000억원 그리고 또다시 올해 5조8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받으며 간신히 생명을 이어가는 대우조선해양을 보면, 젝트 장군 같은 인물이 왜 대단한지 이해할 수 있다. 30년 동안 그 정도의 지원을 받고도 여전히 바닥을 헤매고 있다면 결국 사람의 문제다. 굳은 의지와 혜안으로 위기를 극복할 능력을 가진 인물이 없었다는 뜻이다.


▒ 남도현
럭키금성상사근무, 현 DHT에이전스 대표, 군사칼럼니스트, ‘무기의 탄생’ ‘발칙한 세계사’ 등 저술



1925년 독일군 장교단을 방문한 젝트(가운데 뒷짐을 진 사람) 장군. <사진 : 위키피디아>

plus point

젝트 장군의 ‘軍 인재 4유형’

한스 폰 젝트 장군은 군대에는 4가지 유형의 인간이 있다고 강조한다. 첫째, 똑똑하고 부지런한 인간은 참모로 적당하다. 조직에서 가장 필요한 인재다. 둘째, 똑똑한데 게으른 인간은 지휘관에 적합하다. 지휘관은 전쟁터에서만 날쌔야지 평소 부지런하면 부하들이 힘들다. 셋째, 멍청하고 게으른 인간은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하므로 사병으로 적당하다. 마지막으로 멍청한 데다 부지런한 인간은 작전을 망치고 동료까지 죽일 수 있으니 즉시 총살시키는 것이 좋다.

극단적인 표현일지 모르나 인사가 만사라는 금언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능한 내용이다. 어쩌면 단순명료하지만 이처럼 확고한 원칙에 따라 일을 했기에 단기간에 놀라운 성과를 이끈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업 경영에도 필요한 원칙이다.

기사: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다음글
이전글 ㆍ‘지원 부서’ 꼬리표 뗀 IT… 부서 간 경계 허물기 주도 IT 강한 기업이 수익도 좋아… 주목받는 ‘CIO 리더십’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17.05
[201호]
리더를 위한 고품격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조선> 공식 사이트입니다.
뉴스레터 신청하기
자주묻는질문 1:1온라인문의
독자편지 정기구독문의
배송문의 광고문의
고객불만사항

광고문의: 02-724-6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