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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예술에 도전한 ‘아방가르드 예술’의 산실 올드 스쿨 힙합·스윙재즈 등 독특한 문화 꽃피워
  > 2017년02월 189호 > 컬처&
[도시의 유혹 14] 미국 뉴욕
기존 예술에 도전한 ‘아방가르드 예술’의 산실 올드 스쿨 힙합·스윙재즈 등 독특한 문화 꽃피워
기사입력 2017.02.27 16:14


최근 완공된 ‘VI∧ 57 West’는 뉴욕에서 가장 주목받는 아방가르드 건축물이다. 세계적인 건축 그룹 비아이지(Big)가 설계했다. <사진 : 위키피디아>

“New York, 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 There is nothing you can’t do…(뉴욕, 꿈들이 만들어지는 콘크리트 정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

제이 지(Jay-Z)와 앨리샤 키스(Alicia keys)가 함께 부른 ‘Empire state of mind’의 가사만큼 뉴욕을 잘 표현해주는 음악은 찾기 힘들다. 제이 지는 뉴욕에선 ‘문화 대통령’으로 추앙받는 힙합 전사다. 뉴욕은 알려진 대로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 개척됐을 당시에는 네덜란드인들이 원주민으로부터 맨해튼 섬을 24달러에 사들여 ‘뉴 암스테르담’이라고 이름 붙였다. 지금 화폐 가치로 따지면 약 1000달러쯤 된다.


소변기에 사인하고 작품이라 한 뒤샹

패션의 아방가르드 현상을 보여주는 지드래곤의 트레이닝복.
후에 영국이 네덜란드로부터 이 지역을 얻으면서 당시 국왕이었던 찰스 2세의 동생 요크 공이 지배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뉴욕(New York)’이 됐다. 뉴욕은 태생부터 자본주의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디언들의 땅이었던 ‘매나하타(Mannahata)’ 때부터 무역의 거점이었다. 왼쪽 허드슨 강을 따라 들어가면 미국 내륙 깊숙이 닿을 수 있고 이스트 강을 따라 나아가면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아프리카에 닿을 수 있어 무역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다.

뉴욕 도시 건설에서 가장 손꼽는 장점은 바둑판 모양의 그리드로 길을 낸 것과 센트럴 파크 조성이다. 뉴욕은 철저하게 계획된 도시인데, 건설 초기부터 매우 넓은 공간을 비워두고 공원을 만들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호수, 셰익스피어 가든 등이 있는 센트럴 파크의 면적은 340만㎡로 난지도 하늘공원의 18배, 모나코 왕국의 2배나 된다. 광활한 녹지 공간은 도시의 허파 역할을 톡톡히 한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이 센트럴 파크를 중심으로 왼쪽은 음악, 오른쪽은 미술이 담당한다. 왼쪽에는 음악당이, 오른쪽에는 미술관, 박물관이 즐비하다는 말이다.

미술부터 살펴보려면 뉴욕의 아방가르드 문화를 이해해야 접근이 쉽다. 아방가르드란 용어는 원래 군사 용어로 전위부대, 선발대를 지칭하는 호칭에서 비롯됐다. 전쟁 시 가장 먼저 적진으로 뛰어들었던 이들은 적군의 동태 파악에 그치지 않고 미래 상황까지 예측하는 예언자 역할을 해야 했다. 이 전투력 강한 군사 용어가 미술 사조에 등장한 것은 아방가르드 예술이 기존 예술과 전투적으로 싸워 이겼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중에서도 마르셀 뒤샹은 신예술이라는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한 영웅으로 아방가르드의 시조다.

현대미술을 처음 접했던 20세기 초, 사람들은 놀람과 충격을 금치 못했다. 이들이 본 최초의 현대미술 작품 중 하나가 뒤샹의 ‘샘’이다. 이 소변기가 왜 샘일까? 뒤샹은 평범한 소변기에 과감하게 사인을 하고 예술 작품으로 변신시켜 버렸다. ‘R.Mutt’라고 당시 뉴욕에서 욕실용품 제조업을 하던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이 샘은 1700만달러에 판매되는 쾌거를 달성한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불편한 시선, 기존 주류 예술 사회의 배척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낡고 따분함에서 도발적이고 호기심으로 가득 찬 세계로 인도했다. 이 아방가르드 예술 사조가 탄생한 곳이 바로 센트럴 파크의 남쪽 소호와 그리니치 빌리지다.

그 배경은 제1차세계대전이다. 제1차세계대전은 유럽 대륙에서 민족주의자들끼리 벌인 전쟁이다. 민족주의보다는 국제주의를 지향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중립국인 스위스의 취리히로 거점을 옮기게 된다.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그렇지 않아도 기존 기득권 예술계를 뒤흔들어야 먹고 살 수 있었던 이들에게 유럽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제1차세계대전에 휘말리지 않았던 뉴욕이 그들의 안전지대가 된 것이다.


스티비 원더, 마이클 잭슨도 배출

막스 에른스트, 마르셀 뒤샹, 마르크 샤갈 같은 미술가들은 뉴욕으로 건너가 꿈을 펼쳤는데, 뉴욕에서도 유럽인들의 거주지였던 그리니치 빌리지, 소호를 선택했다. 이렇게 뉴욕은 아방가르드 문화를 품으며 새로움과 혁신의 기치를 알리는 도시가 됐다. 아방가르드란 용어는 전투적이고 공격성을 띠지만 세월이 지나며 지금은 매우 쿨하고 핫한, 진보적이면서도 공격적이지 않은, 가장 도회적인 느낌을 품게 됐다. 벤츠의 새로운 디자인도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으로 출시되고, 패셔니스타인 가수 지드래곤(G-DRAGON)도 스트리트 패션(길거리 패션) 스타일의 옷을 입는다. 이것만 봐도 아방가르드가 품은 단어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는지 느낌이 온다.

음악에서의 아방가르드 시조는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 등이다. 12음 체계를 시도한 쇤베르크, 고전발레를 무너뜨리고 야만적인 발레에 원시적인 음악을 선보인 스트라빈스키가 원조다. 앞서 소개한 제이 지의 힙합도 주류 클래식의 아성을 무너뜨린 아방가르드 문화로 볼 수 있다.

뉴욕의 할렘가에서 탄생한 ‘올드 스쿨 힙합(1970~80년대 시작된 초기 힙합)’은 퍼프 대디, 50센트, 제이 지가 주류다. 퍼프 대디가 부른 노래 ‘I will missing you’는 스팅이 부른 ‘Every breath you take’를 리바이벌(기존 노래를 새로 해석해 부르는 것)한 것인데 들어보면 전혀 느낌이 다르다. 물론 재즈도 마찬가지다. 뉴욕 재즈의 산실인 아폴로 극장은 빌리 홀리데이, 스티비 원더 그리고 영원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배출했다. 재즈의 고향은 뉴올리언스지만 상업화돼 꽃피운 곳은 뉴욕이고, 루이 다니엘 암스트롱을 비롯한 걸출한 뮤지션들이 활보한 곳도 다름 아닌 뉴욕이다. 이곳에서 독특한 스윙재즈가 탄생했다.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곳,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서 쉽게 무너지지 않고, 정글처럼 살아서 견디기엔 매우 터프한 곳. 이곳이 바로 아방가르드의 산실, 꿈의 도시 뉴욕이다.


▒ 박현주
보스턴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석사, 고려대 문화콘텐츠 전공 박사,‘도시의 유혹에 빠지다’등 공연 콘텐츠 제작

기사: 박현주 피아니스트·엔터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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