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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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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독서 수첩 20] 운명과 분노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기사입력 2017.04.18 13:32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5년 ‘운명과 분노’를 올해의 책으로 꼽았다. 딸 말리아와 함께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오바마 전 대통령.

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1만6500원 | 608쪽

한 부부의 결혼과 인생을 각자의 관점에서 서술해 놓고 독자로 하여금 하나로 엮게 만드는 장편소설이다. 2015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잡지 인터뷰에서 ‘올해 최고의 책’으로 로런 그로프의 장편소설 ‘운명과 분노’를 꼽아 화제가 됐다. 이 소설은 그해 여러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이 소설은 남편 로토와 부인 마틸드가 20여 년 동안 가꾼 결혼 생활을 다룬다. 그 속으로 더 들어가면 사랑과 예술, 운명과 의지, 진실과 거짓이라는 문학사에서 고전적이고 거대한 주제들이 현대적으로 처리된다.

로토와 마틸드는 부부이긴 하지만 각기 상이한 삶의 조건과 초상을 대변한다. 로토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마틸드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로토가 운명을 긍정하는 대신 마틸드는 행복한 결혼 생활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향해 분노한다.

이 소설은 그리스 신화와 비극을 현대적으로 활용했다. 그리스 신화에선 운명은 3명의 여신에 의해 좌우된다고 했고, 분노 역시 3명의 여신이 관장한다고 했다. 작가는 이런 신화를 암시하면서 주인공 부부의 삶을 각각 운명과 분노에 위치시켰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최고로 꼽은 소설

이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1부는 로토의 이야기이고, 2부는 로토가 갑자기 세상을 뜬 뒤 마틸드의 현재와 과거를 다룬다. 작가는 원래 따로 책으로 만들려고 했던 이야기를 하나로 통합했다고 한다. 이 소설은 예술가 소설이기도 하다. 로토가 희곡 작가로 성공을 거두는 과정을 다루면서 그가 쓴 희곡이 소설 속에 삽입돼 그 허구 속에 투영된 로토의 삶을 묘사하기도 한다.

가령 그는 ‘애꾸눈 왕’이란 희곡을 쓰는데, 그것은 제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살고 있는 로토의 삶을 암시하기도 한다. 어쩌면 모든 사람이 두 눈 뜨고 있지만, 한쪽으로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향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이 소설은 삶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결정하는 것은 절대적 기준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

“비극, 희극, 그것은 오로지 관점의 문제다.”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의 문제. 태양의 위치에서 보면 결국 인류란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는 그저 회전하며 깜빡거리는 빛일 뿐이다. (중략) 구체적인 것은 한곳에 초점을 맞출 때에야 보인다.”

이 소설은 작가의 지적(知的) 유희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어와 프랑스어의 묘한 의미론적 말장난이 종종 등장하고,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고전의 일부가 동원되기도 한다. 작가는 상투적 소설 문법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고대 그리스의 코러스를 연상케 하는 소설 바깥의 목소리가 집단으로 울려퍼지면서 작품 속에 개입한다.

“이것은 한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심연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낸 하나의 위대한 피조물이었다. 내러티브라기보다는 돌연 귓가에 밀어닥친 파도였다.”

미국 문단에서 작가 로런 그로프는 폭발적인 서사와 시적이고 우아한 문체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독창적인 서술 솜씨 덕분에 ‘산문의 거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소설은 사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분량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왜 이 소설을 최고로 쳤을지 유추하면서 천천히 읽어봄 직하다.

기사: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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