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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현실을 언어의 바다에 절이다
  > 2017년05월 198호 > 컬처&
[박해현의 독서 수첩 21] 강화도
역사와 현실을 언어의 바다에 절이다
기사입력 2017.05.01 14:21


송호근 교수는 ‘강화도’에서 신헌이 일본과의 조약 협상을 조선에 유리하게 이끈 것으로 평가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체결 모습. <사진 : 위키피디아>

강화도
송호근 지음 | 나남
1만3800원 | 296쪽

“큰 군함 한 척이 검은 연기를 뿜으며 대부도 인근에 정박했습니다. 요망색리(瞭望色吏)를 시켜 정탐했는데 배 옆구리에 현무환(玄武丸)이라 쓴 글자가 뚜렷했습니다. 왜선인 듯합니다.”

요망색리는 시력이 좋아 멀리 있는 물체를 관찰하는 조선 시대의 말단 군졸을 말한다. 망원경이 없던 시절이라 눈 밝은 병졸을 뽑아 초병 근무를 서게 했던 것이다. 1876년 1월 일본 함대가 강화도를 향해 몰려오자 그 이동 경로에 흩어져 있던 섬의 요망색리들이 바빠졌다. 대부도를 지키던 조선군의 요망색리가 일본 군함을 확인하자 지휘관이 조정에 장계를 올렸다. 의정부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검은 연기를 내뿜는 최첨단 일본 함대를 멀리서 육안으로나마 살펴야 했던 조선의 군사력은 거대한 솔개가 뱅뱅 도는 하늘 아래 시커먼 그림자 속에 내몰린 병아리 같았다. 오늘의 시점을 들이댔을 때 요망색리라는 보직(補職) 명칭은 무력하면서도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어 짙은 비애를 불러일으킨다. 요즘 한반도가 다시 역사의 격류에 휘말리는데, 아직 우리는 그 허망한 요망색리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신헌의 ‘심행일기’ 토대로 삼은 소설

이런 상황을 문학으로 헤아려 보자며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역사 소설 ‘강화도’를 출간했다. 그는 첫 소설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미국과 중국 함대가 남중해에서 맞붙고, 사드 배치로 한류가 쫓겨나고, 촛불과 태극기 물결이 광화문에서 대결하던 작년 12월, 오랫동안 방치했던 문학의 세계로 잠시 이주했다. 논문으로는 도저히 화해시킬 수 없는 세상 현실을 언어의 바다에 절이고 싶은 욕망을 따라가고자 했다.”

이 소설은 19세기 말 조선에서 학식 높고 서예에도 일가를 이룬 장수였기에 유장(儒將)으로 꼽힌 신헌(申櫶)이 남긴 ‘심행일기(沁行日記)’를 토대로 삼았다. 일본이 함대까지 보내 무력 시위를 벌이며 요구한 강화도 수호 조약 체결 과정을 기록한 ‘심행일기’에 소설적 상상력을 불어넣은 것. 일본 함대는 조선이 문호를 개방하지 않으면 한강을 타고 올라가 한양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신헌은 오늘날 수도경비사령관에 해당하는 어영대장이었다. 송 교수는 신헌이 개방과 쇄국,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면서 일본과 조약 협상을 조선에 유리하게 이끈 것으로 평가했다. 덕분에 “조선의 심장에 창이 깊이 박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소설은 신헌의 개인사와 조선의 역사를 대비시켰다. 신헌의 사생활은 대부분 허구지만, 강화도 상황 묘사는 실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구성이 단순하다. 송 교수는 평소 절친하게 지내온 소설가 김훈의 문체를 계승했다. “섬은 쓸쓸했다. 홀로 고립된 세월의 흐름은 느렸다”는 식의 묘사력이 그렇다. 송 교수는 김훈을 문체의 스승으로 여겨왔다. 김훈은 이 소설을 읽고 “역사를 풍경으로 묘사하면서 인간의 진실성과 구체성을 위대한 문장으로 그렸다”며 반가워했다.

소설 ‘강화도’는 정교하고 복잡한 플롯을 활용한 현대적 소설 미학을 거두진 못했다. 전통 서사 양식인 ‘전(傳)’을 떠올리게 한다. 플롯이 단순하고 심리 묘사도 순박하다. 그 단점이 오히려 가독성을 높이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다행히 역사 소설의 양대 기둥인 교훈성과 오락성을 다 갖추고 있다.

기사: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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