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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면서도 서글픈 젊은 세대의 사랑 풍속도
  > 2017년07월 209호 > 컬처&
[박해현의 독서수첩 25] 바깥은 여름
냉정하면서도 서글픈 젊은 세대의 사랑 풍속도
기사입력 2017.07.17 14:19


고시 학원이 밀집한 노량진 거리. ‘바깥은 여름’은 노량진 고시 학원가에서 만난 젊은 남녀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렸다. <사진 : 조선일보 DB>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1만3000원 | 272쪽

10년 전 한국의 젊은 소설에 대한 분석이 문예지에서 잇달아 제기된 적이 있다. 평론가들은 2000년대 이후 등장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신(新)빈곤층의 문학’이라고 규정했다. 민주화 이후 경쟁 사회 속에서 백수로 지내거나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하거나 고시촌에서 취업준비생으로 살아가며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풍속을 반영한 문학이라는 것이다.

그때 여러 작가가 거론됐지만 그중에서 20대 중반이었던 소설가 김애란이 우뚝 솟아 보였다. 김애란은 등단하자마자 날렵한 문체의 단편으로 몇몇 문학상을 받아 문단의 ‘무서운 아이’로 불렸고, 그의 소설은 프랑스어로 번역돼 현지 비평가와 기자들이 선정하는 ‘주목받지 못한 상’을 받기도 했다.

김애란도 어느덧 30대 후반의 나이에 들어섰다. 그가 5년 만에 소설집 ‘바깥은 여름’을 냈다. 7편의 단편들은 제각각 오늘날 20~30대의 풍속도를 희극과 비극의 관점을 뒤섞어 그린다. 그중 단편 ‘건너편’이 눈길을 끈다.

노량진 고시 학원가에서 만나 10년간 사귀다가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채 동거하는 젊은 남녀의 이야기다. 남자 주인공 ‘이수’는 번번이 고시에 떨어져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하는데 여자 ‘도화’는 재수 끝에 경찰 채용 시험에 합격했다. 여자는 자기 일에 긍지를 갖는 사회인이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건너편’의 사람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둘 사이엔 괴리감이 점점 더 커진다. 결국 여자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남자와 헤어지기로 한다.


젊은 세대의 음지(陰地) 절묘하게 그려내

진부한 청춘 멜로 드라마 같은 소설이지만, 젊은 세대의 음지(陰地)를 절묘하게 그려낸 언어의 다양한 마술이 돋보이기에, 문단에선 호평을 한다.

첫째, 가난한 젊은이의 꿈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동화 기법이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나물 반찬만 먹고 잠을 잔 여자의 내면 묘사다.

“도화는 밤새 내장 안에서 녹색숯이 오래 타는 기운을 느꼈다. 낮은 조도로 점멸하는 식물 에너지가 어두운 몸속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는 동안 영혼도 그쪽으로 팔을 뻗어 불을 쬐는 기분이었다.”

둘째, 남녀의 심리적 거리감을 영화처럼 처리했다. “이수가 가랑이 사이로 이불을 말아 넣으며 도화 눈치를 봤다. 해 뜨기 전이라 잠 묻은 눈두덩이에 의식이 가물댔다. 도화가 ‘응’ 하고 답하며 화장대 거울에 비친 이수를 봤다. 뻗친 머리카락 사이로 새치가 부쩍 늘어 있었다.” 남자는 여자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는 신세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등 뒤에 두곤 거울을 통해 바라보며 초라한 몰골을 말없이 확인하는 것.

셋째, 연극적 상황 묘사다. 여자는 뒤늦게 남자가 전세금을 몰래 빼내 유용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둘의 핑퐁 같은 대화가 연극처럼 전개되는데, 작가는 “도화가 너그럽고 가혹한 투로 물었다”고 썼다. 남자를 추궁하지만 몰아세우진 않은 것. 남자는 더 비굴해진다. 이어서 여자가 말한다.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다음 날 여자는 남자의 전세금 유용을 처음 알았을 때 ‘배신감’보다 ‘안도감’이 찾아왔음을 기억한다. 남자를 버릴 명분이 생겼다는 안도감. 동시에 남자와 함께 보낸 과거가 머릿속을 스쳐 가며 뜨거운 침을 삼킨다.

그녀는 남자에게 “네가 돈이 없어서 헤어지는 게 아니야”라고 했지만, 소설은 그 반대의 진실을 반어법으로 일러준다. 냉정하면서도 서글픈 사랑의 풍속도를 정교한 서사와 플롯으로 그려냈기에 독자의 가슴이 먹먹해지는 소설이다.

기사: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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