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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명분과 실리 다툼의 근원을 보여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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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독서수첩 30] 남한산성
한국 사회 명분과 실리 다툼의 근원을 보여주는 소설
기사입력 2017.10.23 15:29


영화 ‘남한산성’의 한 장면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1만6000원 | 448쪽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2007년 4월 출간됐다.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남한산성을 중심으로 병자호란의 역사를 다룬 소설이다. 어느덧 출간된 지 10년이 돼 올해 상반기에 100쇄를 기록한 이 소설을 영상에 옮긴 동명의 영화가 최근 개봉돼 주목을 받고 있다.

김훈은 삼전도 비석이 겪은 기구한 역사를 되짚으면서 소설 ‘남한산성’을 착상했다. 10년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청은 조선의 치욕을 영원히 남기려고 삼전도 비석을 세우게 했다. 나중에 일제는 삼전도 비석이 중화사상을 고취한다고 해서 파묻었다. 그러나 일제는 비석이 조선 민족의 예속된 역사를 입증한다고 해서 다시 꺼냈다. 해방이 되자 이 비석은 역사의 치욕이라고 해서 다시 파묻혔다. 그러다 장마가 져 비석이 강가에 다시 나자빠졌다가 오늘에 이르러 페인트로 훼손당하기까지 했다. 이런 기구한 역사의 치욕을 감당한 삼전도 비석을 우리가 모른 척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소설 ‘남한산성’의 주 독자층은 남성 독자라고 한다. 김상헌과 최명길이 각자 항전과 투항을 주장하면서 벌이는 설전이 명분 싸움을 중시하는 한국 남성 취향에 맞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소설가 김연수는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실용과 명분의 싸움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가를 보여주는 소설이란 점에서,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당대의 발언을 하는 소설에 가깝기 때문에 30~40대 남성 독자들이 그 진정성에 동감하는 것 같다”고 풀이했다.


오늘날 한국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소설

그런데 민중문학을 표방해 온 리얼리즘 진영의 평론가 중 일부는 소설 ‘남한산성’을 신랄하게 깎아내렸다. 평론가 임홍배는 “외환위기 이후 국민이 처한 무력감을 불가항력적 사태로 절대화해서 울분을 자극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그런 효과는 카타르시스일 뿐이고 진정한 역사소설로는 함량 미달이다”라고 비판했다. 평론가 윤지관도 “독자들의 민족주의 정서에 호소하면서도 거꾸로 역사 자체에 대해 허무의식을 부추기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뭐랄까 좀 부정직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라고 힐난했다.

반면에 역사학자 김기봉은 소설 ‘남한산성’이 기존 역사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탈근대적 역사소설’이라고 색다르게 평가했다. 가령,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좌익과 우익 그리고 중도를 대표하는 전형적 인물들로 꾸며진 ‘근대적 역사소설’의 문법에 충실한 문학이라면, ‘남한산성’은 임금과 사대부·장군·병졸·백성 제각각의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중심과 주변, 선과 악 등의 틀에 갇히지 않는 다성(多聲)의 문학이라는 것이다. “김훈의 역사소설은 ‘역사 속의 인간’의 전형을 추구한 게 아니라 ‘인간의 역사’를 구현했다”라는 얘기다.

소설 ‘남한산성’은 17세기 조선의 국난을 그린 역사소설이지만, 오늘의 한국인에게 당대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알레고리 소설로 더 읽히는 듯하다. 과거 역사를 실록과 야사에 맞춰 재현한 것이라기보다는 김훈 특유의 현대적 상상력과 묘사력으로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구조를 지적하는 데 더 주력했기 때문이다. 고립된 남한산성은 내부 싸움으로 국력을 소진해 온 역사의 상징적 조형물로 도드라지는 것이다.

김훈은 “이 소설을 현실 정치의 관점에서 읽지 말아달라”고 부탁해왔다. 하지만 이 소설은 늘 현실에 소환당해 읽힌다. 10년이 지나도록 우리 사회가 고립무원의 산성처럼 내부의 결핍과 공론(空論)에 시달리다 말라 비틀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기사: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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