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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 기리는 문학관 경기도 광명에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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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독서수첩 33]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시인 기리는 문학관 경기도 광명에 개관
기사입력 2017.12.04 13:16


경기도 광명시에 들어선 기형도 문학관. <사진 : 조선일보 DB>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8000원 | 146쪽

기형도(1960~1989) 시인은 서른 살 생일을 엿새 앞두고 뇌졸중으로 세상을 떴다. 서울 종로의 심야 극장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쓰러진 뒤 누군가 그의 윗도리에서 지갑을 빼내 사라졌다. 그러나 그가 어깨에 메고 다니던 가방은 곁에 있었다. 출간을 준비 중이던 첫 시집의 원고 일부가 들어있었다. 1985년 등단 이후 발표한 시를 타이핑한 것이었다. 그가 시작 메모를 남긴 푸른색 노트도 남아있었다.

기형도의 친구들은 시인을 대신해 시집 출간을 추진하기로 했다. 원래 시집을 내기로 계약한 출판사는 기존 발표작만으론 책을 내기에 충분하지 않으니 미발표 원고도 곁들여 내자고 했다. 친구들은 다시 모여 기형도의 습작 원고도 한자리에 모았다. 나름대로 완결된 것으로 보이는 습작 시 중에서 시집에 실을 만한 작품들을 골라냈다. 기형도가 타계한 지 두 달 남짓 지난 뒤 시집이 나왔다. 기형도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었다. 시집 해설을 쓴 평론가 김현이 책 제목도 정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중략)/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는 시 ‘빈집’이 기형도의 사실상 마지막 발표작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상실과 절망을 애수와 우울에 젖은 음성으로 읊은 시다. 이 밖에 죽음의 이미지를 동반한 실존의 불안과 공포를 담은 나머지 작품들이 기형도 문학, 이른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세계를 구성했다.


기형도 시집 30만부 팔려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올해 10월 31일 84쇄를 발행했다. 지금껏 30만 부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올해로 500호를 낸 문학과지성 시인선 중 독자가 가장 많은 시집이 됐다. 시인 지망생을 중심으로 젊은 문학 독자들 사이에선 필독서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기형도는 한국 문학의 지울 수 없는 신화가 됐고, 한국 문화의 어떤 증상을 상징했으며, 젊은 문학도에게는 피할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의 질병이 됐다”고 기형도 20주기 추모 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 편집위원들이 규정한 바 있다.

최근 경기도 광명시에서 기형도 문학관 개관식이 열렸다. 기형도는 경기도 연평(현재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서 태어났지만 광명시로 이주한 가난한 집안에서 힘겨운 성장기를 보냈고, 짧은 생을 마칠 때까지 주민등록지를 옮기지 않았다. 기형도의 데뷔작 ‘안개’는 안양천과 그 주변의 공단 지역을 배경으로 삼았고, 그의 작품 중 상당수가 광명시의 풍경을 암시적이거나 에돌아 묘사하고 있다.

기형도 시집이 입소문을 타자 광명 시민이 기형도를 기리는 행사를 잇달아 열었고, 시청은 시민의 뜻을 존중해 3층짜리 기형도 문학관을 세웠다. 기형도의 창작 경력이 일천한 탓에 전시 공간은 1층뿐이고 나머지는 시집 전문 서점과 창작 교실 등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활용된다. 유족의 뜻이기도 하다.

기형도 문학관 개관식 때 소리꾼 장사익이 출연했다.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기형도의 시 ‘엄마 생각’에 곡을 붙인 노래를 불렀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 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사: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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