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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욱의 기업인 탐방 42] 김용만 김가네 회장
“30대 중반까지는 운동·사업 하는 것마다 쓴맛 국내 최초 즉석 김밥 ‘김가네’ 사업으로 대박”
기사입력 2017.05.08 11:02


김용만 회장은 “김가네를 23년 넘게 장수 브랜드로 키운 것은 ‘음식의 기본은 맛’이라는 초심과 원칙을 지켜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이신영>

서울 광진구 구의동 김가네 본사 3층의 김용만(61) 회장 사무실에는 눈빛이 무서운 호랑이 그림이 걸려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김 회장을 호랑이 그림 옆에 서게 하니, 김 회장 얼굴이 그림 속의 호랑이 얼굴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키 178cm, 체중 90kg으로 한마디로 ‘거구’다. 호랑이 그림 옆에는 호시우보(虎視牛步)라는 사자성어가 쓰여 있다. ‘호랑이처럼 예리한 판단을 가지되 행보는 소처럼 우직하게 정해진 목표를 향해 가자’는 의미라고 한다. 김 회장은 “김가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끌어 갈 원동력은 호시우보가 뜻하는 ‘원칙과 장인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94년 법인설립… 가맹점 수 520개

김용만 회장이 경영하고 있는 김밥 전문점 ‘김가네’는 1994년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시작(법인설립)해 현재 520개 가맹점을 두고 있다. 해마다 수백개의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새로 생기고 또 그 수만큼 사라지는 프랜차이즈 업계 내에서 김가네는 보기 드문 장수 브랜드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회장을 지낸 김 회장은 안정적인 가맹점 관리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는 동료, 후배 사장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하지만 30대 중반까지 그의 인생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초등학교 때 이미 164㎝로 키가 큰 편이라 학교 대표 축구선수로 뛰었지만 고교 1학년 때 상대 선수의 깊은 태클에 부상을 입어 결국 축구를 접어야 했다. 그가 선수로 뛰었던 서울 영등포공고는 허정무 감독을 배출한 축구 명문이다. 김 회장은 “고교 1학년 때 키가 178㎝였는데,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몸무게는 62㎏밖에 안 돼 늘 몸싸움에서 밀렸다”고 말했다. 축구 하는 아들에게 고기를 배불리 먹일 집안 형편이 못됐다고 한다.

고교 재학 중에 축구를 포기했지만 공부 역시 아니었다. 새로 도전한 역도는 늑막염 때문에 다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김 회장은 이번엔 유도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군대 가는 바람에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 회장은 “운동도 여럿 했지만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운동으로 먹고 살기는 애초부터 글렀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김가네의 인기 메뉴 <사진 : 김가네>


주점·치킨집 열었다가 모두 실패

그러나 ‘생업’도 만만치 않았다. 제대 후 체중이 90㎏ 남짓으로 불어난 덕분에 한때 보디가드 일도 했지만 일년 만에 그만두고 나이 서른 무렵인 1986년, 서울 대학로에 주점을 열었다. 주점 이름이 ‘DMZ’라서 그런지 휴가 나온 ‘육·해·공’ 군인들로 북적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4년 만에 서울시 도시계획으로 매장이 반으로 쪼그라드는 바람에 결국 접어야 했다. 주점 근처에 차린 치킨집도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그의 인생에 전기를 마련한 김가네 김밥집을 대학로에 차린 게 그 직후인 1992년이었다. 당시 다른 김밥집과 달리 김밥 마는 과정을 고객들이 볼 수 있도록 토핑 테이블(김밥 조리대)을 창가에 설치, ‘쇼윈도 김밥’을 처음 시작한 것이 마침내 대박을 쳤다. “이전에 모든 김밥은 미리 만들어 두었다가 손님들에게 판매했다. 주문을 받고 나서 고객이 보는 앞에서 김밥을 마는 ‘즉석김밥’은 우리가 처음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매장 창문 위쪽에 냄새를 밖으로 빼는 환풍기를 달아, 김밥용 밥을 참기름으로 비비는 고소한 냄새가 거리로 나가도록 해서, 지나가던 사람들마저 매장 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김가네는 2년 후인 1994년부터 가맹사업을 시작, 김밥 전문점 중 최장수 브랜드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김밥 조리대를 주방이 아닌 창가에 처음 설치해 대박을 쳤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얻었나.
“김밥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국민 간식이 아닌가. 그래서 ‘어떻게 하면 차별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당시엔 대부분의 김밥집이 주방에서 미리 김밥을 말아 판매하는 방식이었고, 속 재료도 3~4가지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다. 김밥은 대중들이 쉽게 찾고, 즐겨 먹는 메뉴임에도 불구하고 길거리 음식처럼 치부되는 것이 아쉬웠다. ‘김밥을 좀 더 전문적이고 다양하게 만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고안해 낸 것이 쇼윈도 형태로 오픈된 주방에서 다양한 김밥재료를 신선하게 보관해 고객의 주문과 함께 즉석에서 만들어 제공하는 ‘즉석김밥’이었다. 이를 위해 별도의 김밥 토핑기도 제작했는데 즉석에서 만들어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위생적인 환경을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 줄 수 있었고, 김밥을 만드는 모습을 통해 고객에게 호기심을 유발하고, 재미를 주는 요인이 됐다. 또한 참치, 치즈, 소고기, 매콤하게 볶은 멸치와 고추 등 재료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김밥 메뉴를 개발한 것도 인기를 얻은 비결이었다. 그냥 단순한 음식에 불과했던 ‘김밥’이 길게는 몇십분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 먹어야 하는 ‘명물’로 새롭게 탄생된 순간이었다.”

23년 넘게 최장수 김밥 브랜드로 성장한 비결은.
“초심과 원칙을 지킨 덕분이다. 김가네의 성공비결은 근본적으로는 맛과 품질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기본원칙을 준수하는 것이다. 음식의 기본은 맛이 아니겠는가. 맛을 위해 식재료 품질이 좋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김가네는 최고의 품질을 위해 국내산 제품 위주의 식자재를 고집하는 등 질 높은 식자재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초기 사업전략이 ‘맛으로 승부를 건다’였다. 사업 초기부터 30여가지의 조리제품을 직접 생산함은 물론, 재료들의 선도 유지를 위해 업계에서 거의 처음으로 직접 물류시스템을 운영했다. 그 덕분에 정확하고 신속한 당일 배송을 통해 항상 신선하고 품질 좋은 원료를 사용, 최상의 맛을 구현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또 효율적인 가맹점 관리를 위해 한 가맹점당 영업, 수퍼바이저(SV), 교육 강사(MV) 등 3명이 한 조가 돼 가맹점의 매출 향상과 표준 운영의 편의를 돕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

김밥 한줄의 본질은.
“소풍 가는 날 아침 부엌에서 나는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잠을 깬 적이 있지 않나? 소풍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님께서 싸 주시던 정성 가득 담긴 김밥. 도시락에 가지런히 열을 맞춰 놓여 있던 김밥. 지금처럼 속 재료가 풍성하진 않았지만 너무나 든든하고 맛있었던 김밥. 김밥은 이런 아련한 추억의 음식이면서도 한 끼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충분한 양과 영양, 식재료, 맛 등이 어우러져 고객이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김가네 김밥은 처음부터 값이 비싼 편이었다. 경쟁력이 있나.
“외환위기가 1997년도에 터졌다. 그 당시에 1000원 김밥이 많이 생겼다. 김가네는 두 배인 2000원이었다. 그때  한국외식정보 박형희 대표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김 사장님, 지금 1000원 김밥 하는 곳들이 이렇게 많이 생겼는데 어떻게 할 겁니까? 가격 내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내가 그랬다. ‘아닙니다. 저희는 가격을 안 내릴 겁니다. 지금 좋은 재료 쓰고 하니까 이 맛을 유지할 수 있는 거고 여기서 가격 내리면 그 품질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저희는 맛있게 할 겁니다.’ 그랬더니 박형희 대표가 무릎을 탁 치더라. 그분이 일본통인데, 일본이 우리와 같은 방식이라고. 가격은 그대로 하면서 품질은 높이고 서비스를 더 좋게 해주는 그런 방식. 대신 오랫동안 가격을 올리지 않고 그 가격 그대로 갖고 가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김가네 김밥 가격은 사업 초기 2000원에서 23년이 지난 지금 3000원으로 1000원 올랐다. 어려워도 우리는 그 가격을 유지하면서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1000원 김밥집은 지금 어떤가? 소비자들 눈이 많이 높아졌다. 1000원 김밥은 먹어보면 대번 안다. 중국산 품질 낮은 재료로 만든 건 고객들도 안다.”

사업 초기부터 물류관리를 직접하는 이유는.
“김가네는 처음부터 물류를 직접 했다. 물류를 외주 주면 본사의 투자비는 줄어들겠지만 그만큼 원가 부담이 커져 가맹점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맹점이 15~17개 추가로 생겨날 때마다 물류차량도 1대, 2대 계속 사들여 현재 물류 트럭이 26대다. 서울 시내에 김가네 매장이 240개 정도 있는데 차 한 대에 들어갈 수 있는 식자재 양은 한정돼 있다. 식자재는 당일배송이 원칙인데, 외주를 주게 되면 물건을 신선하게 배송하는 게 어려워진다. 또 외주 물류는 1개 업체만 상대하는 게 아니라 여러 업체의 물건을 한꺼번에 싣고 다니고 수익을 위해 빨리 가려고 하다 보면 물건끼리 트럭 안에서 부딪히고 상하게 되기 십상이다. 본사 직원이 직접 배송을 하면 매장 점주들을 매일 직접 마주치니까 요구하는 사항을 현장에서 접수받아서 처리해 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관리비용을 본사가 부담하는 부분이 많더라도 이런 원칙을 가지고 자체물류를 고집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자영업은 매장 문 열고 1년 지나면 80%가 문을 닫고 프랜차이즈는 80%가 살아남는다는 말이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하면 프랜차이즈 본사의 물류시스템을 제공받을 수 있다. 가맹점에 물류관리가 잘돼야 신선한 재료로 음식도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시행을 앞두고 가맹 본사들이 불안해하고 있는데 의견은.
“법대로 하면 문제가 없다고 본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라는 것은 가맹 본사가 가맹점주한테 제대로 된 정보와 제대로 된 상권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가맹점주협의회가 왜 생겼겠나? 가맹점 운영이 어려우니까 생긴 것이다. 김가네는 분쟁의 여지가 별로 없는 브랜드라는 게 장점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부 가맹 본부들은 신규 점주들에게 ‘무조건 이익 난다’고 하면서 가맹점 모집을 하지만, 이 말을 믿은 가맹점주 입장에선 손익분기점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분쟁이 생기는 것이다. 가맹점 관리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본사는 두려울 게 없다. 다만, 프랜차이즈 업계 전체로 볼 때 과거처럼 공격적인 가맹점 모집은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프랜차이즈협회장 재직 시 기억에 남는 것은.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는 아무래도 대회 유치에서부터 마감까지 성공적으로 치러낸 ‘2010 APFC(아시아·태평양프랜차이즈연맹) & WFC(세계프랜차이즈이사회) 서울총회’다. 2008년에 WFC에 가입하고 2010년에 총회를 유치했는데 가입된 세계 41개국 중 무려 38개국이 참석할 만큼 성공적이었다. 보람되고 뿌듯했다. 또 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교육사업 전개에도 주력했다. 협회를 회원사 화합의 장으로 만든 것, 세계프랜차이즈협회 가입과 유치 등의 프랜차이즈 관련 산업의 활성화, 법률적 지원이 가능한 관련법 제정 등에 노력했다. 그 결과 한국프랜차이즈협회는 외식산업진흥법 개정시행에 큰 역할을 했고 2012년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국내 최초 ‘외식산업 전문인력 양성기관’으로 지정됐을 뿐 아니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심사를 거쳐 ‘외식경영관리사’ 민간자격관리기관으로 선정됐다.”

1994년 김가네 체인사업을 시작한 김 회장은 브랜드를 확장하지는 못했다. 쭈가네, 루시, 치킨방앗간 등 여러 브랜드를 새로 시작했지만 김가네처럼 뻗어나가지 못했다. 역설적으로 김가네 브랜드에 집중해 온 때문이기도 했다.

2011년 론칭한 루시, 2014년 시작한 치킨방앗간은 사업을 접었나.
“치맥(치킨과 생맥주가 주된 메뉴) 펍인 루시는 사업을 접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많다. 당시 직영점이 서울 고덕동에 있어 멀어서 자주 가지도 못했다. 초기에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투자도 확대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치킨 브랜드인 치킨방앗간은 브랜드 이름도 바꾸고 콘셉트를 새로 잡아 올 하반기에 새로 시작하려고 한다. 점포 수를 500개, 1000개 이렇게 욕심내지 않고 창업자나 고객이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자 한다.”

요즘도 주말에 직영점을 둘러보나.
“김가네 직영점이 3군데가 있는데 매주 토요일에 거의 빠지지 않고 둘러본 뒤 사무실로 출근한다. 가맹점도 몰래 다닌다. 가맹점들의 경우는 매장 서빙 직원들은 본사 대표인 나를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으니까 암행어사처럼(웃음) 메뉴 주문해 먹어보기도 하고 매장을 샅샅이 둘러본다. 전체적으로 잘하고 있는 가맹점엔 계산하고 나갈 때 직원들에게 인사도 하고 고충사항을 듣는다.”


▒ 김용만
1956년생, 김가네 법인 설립(1994년), 올해의 신지식인상(한국신지식인협회 선정 2006년), 한국프랜차이즈협회 회장(2008~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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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배상제 가맹 본부(프랜차이즈 본사)의 허위·과장 정보 제공, 부당한 거래거절(갱신거절, 계약해지 등)로 가맹점사업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가맹 본부가 그 손해의 3배 범위 내에서 배상책임을 지는 제도를 말한다. 지난 3월 말 국회에서 의결돼 오는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식자재 당일 배송 원칙을 고수해 신선한 재료를 책임지는 김가네 물류배송시스템. <사진 : 김가네>

plus point

업계 최고의 물류 유통 시스템 식자재 품질·가격 경쟁력 유지

외식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점에 원활한 식자재를 공급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할 시스템 중 하나가 물류시스템이다. 초기 프랜차이즈 본사들이 물류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해 사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김가네는 프랜차이즈 사업 초기부터 안정적인 물류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우선 생산, 입고, 적치, 재고, 피킹, 출고 등 물류센터 프로세스 전체를 통합 관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가맹점에 신속하고 안전한 제품 공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물류 창고, 중앙 집중식 조리센터(Central Kitchen), 연구개발센터(Research & Development Center), 물류배송차량 등을 원스톱 시스템으로 구축했다.

프랜차이즈 시스템에 있어 물류 유통의 최대 장점은 대량구매로 인한 가격 경쟁력에 있다. 대량구매에 의한 바잉파워(Buying power)를 적극 활용, 본사는 최대한 식자재를 저가로 구입해 가맹점에 제공한다. 우수한 품질의 원료를 저렴한 가격에 가맹점에 공급할 수 있는 구조가 바로 직접 물류유통이다. 이러한 구매력을 통해 구매한 우수한 공산품들과 함께 오랜 노하우로 만들어지는 조리 생산품들을 가맹점에 당일 배송을 원칙으로 공급함으로써 식자재의 품질과 가격측면에서 높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물류 배송 직원 또한 정직원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가맹점과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질 수 있다. 이를 통해 매장의 운영 상태가 1차 관리되고, 운영상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도 신속한 조치가 현장에서 바로 이뤄진다. 김가네가 장수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물류 유통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글: 박순욱 조선비즈 성장기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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