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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등 국내 7대 제강사는 6월부터 10대 대형 건설사에 공급하는 철근 기준 가격을 t당 84만5000원으로 5.6% 인상했다. 유통 대리점에 공급하는 가격은 15.2% 올렸다. 건설사와 사전협의를 거쳐 분기 단위로 해온 철근 공급 계약 관행이 무너지고, 대형 건설사와 유통대리점에 공급하는 기준 가격도 이원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상황이 더 나쁜 중소형 건설사 관계자는 “당장 몇 개월은 버티겠지만, 철근 가격이 계속 오르면 공사 현장이 멈추는 등 예상치 못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물경제에 인플레이션(이하 인플레) 공포가 엄습하고 있는 사례다. 코로나19 이후 고공행진을 해온 주식·부동산·암호화폐 등 금융 자산의 거품 우려도 인플레 공포를 키우고 있다. 미국 증권사 찰스슈바프의 캐시 존스 수석 채권전략가는 5월 12일(이하 현지시각) 보고서에서 “원자재 가격 급등, 통화량 폭발, 정부지출 급증이 맞물리면서 1970년대식 인플레의 복귀 공포가 뚜렷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6월 7일 독일의 도이체방크도 인플레에 대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의 늑장 대응탓에 세계 경제가 ‘시한폭탄’을 깔고 앉았다며 “이번 인플레가 1970년대를 닮을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보고서를 내놓았다.

1970년대 초반까지 10여 년간 5% 이상 고성장을 유지하던 미국은 확장적 재정정책과 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 중동 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 등이 맞물리며 1973~75년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가 수반된 인플레이션)을 겪었다. 당시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10%를 넘어섰다. 1970년대 미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은 1979년 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가 레이건 행정부에서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린 후에야 치유됐다.

세계 1, 2위 경제 대국 미국과 중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의 물가지표를 보이면서 인플레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4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4.2% 올랐다. 5월에는 5% 상승해 13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중국의 5월 CPI 상승률은 1.3%로 8개월 만에 최고치 정도였지만, 생산자가격지수(PPI) 상승 폭은 9%로 13년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5월 세계 식량가격지수도 전달보다 4.8% 오르면서 월간 기준으로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양적완화 등으로 중앙은행이 공급한 유동성이 금융기관으로만 흘러들었던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달리 코로나19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가 투하한 유동성의 상당 규모가 현금 지급 형태로 소비자 주머니로 꽂히면서 인플레 압력을 키우고 있다. 미국 정부는 5월 28일 6조달러(약 6720조원) 규모의 2022 회계연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다. ECB는 팬데믹 긴급매입 프로그램(PEPP) 규모를 1조8500억유로(약 2534조원)로 제시하고, 자산매입 프로그램(APP)도 월 200억유로(약 27조원) 규모로 유지하고 있다. “인플레는 언제나, 어디서나 존재하는 통화 현상”이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경고를 떠올리게 한다.


자산 인플레, 실물경제 타격

인플레 조짐은 금융투자 자산부터 나타났다. 비트코인은 최근 1년간(6월 9일 기준) 258% 올랐고, 코스피(47%), 대만 가권(46%), 나스닥(40%), S&P500(32%), 닛케이225(25%) 등 주요 주가지수가 급등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주택 가격도 2019년 4분기에서 2020년 4분기까지 1년 동안 약 7% 올랐다. 최근 20년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미국 주택 가격을 보여주는 S&P 코어로직 케이스-실러 지수에 따르면 미국의 3월 주택 가격은 전년보다 13.2% 올라 2005년 12월 이후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목재, 배선용 구리, PVC 파이프에 이르기까지 물량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집값 상승을 자극하고 있다. 원목과 철광석, 구리 가격은 올해 5월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최근 1년간 상승률(6월 9일 기준)만 봐도 원목 225%, 철광석 97%, 구리 74%에 달했다.

자산 인플레는 실물경제로 빠르게 침투했다. 금융투자 자금이 몰린 원자재 가격 상승이 결국 상품 가격과 생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최근 2년 이내 최고치를 찍은 원유 가격 상승은 통상 2~3주의 시차를 두고 휘발유·등유 가격을 올려 교통비와 난방비 인상으로 이어진다. 옥수수와 밀, 콩 등 곡물 가격이 오르면 중간재인 밀가루, 전분 등의 가격이 상승해 결과적으로 외식비와 가공식품 가격이 오른다. 이미 대두, 밀이 8년 만에 최고치를, 원유는 2년 만에 최고가를 찍은 탓에 실물경제도 자산시장처럼 인플레를 우려할 만큼 들썩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원자재 가격이 추세적으로 약 10% 상승할 경우 올해 4분기 이후 국내 소비자물가는 최대 0.2% 오르고, 이 충격의 여파가 장기간에 걸쳐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용 상승 우려하는 기업들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심화한 양극화가 생필품 물가 상승으로 더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산업계는 원가 상승분을 가격에 반영해 소비자에게 전가하자니 부담이고, 회사가 떠안자니 실적에 악영향이 우려되는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다. 미국 금융 정보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3월 15일부터 5월 14일까지 1분기 실적을 발표한 S&P500 기업 중 175개 사가 콘퍼런스콜에서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언급했다. 팩트셋이 자료를 집계한 2010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로, 기업 현장에 인플레 우려가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인플레발 실적 부진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1분기 각각 5068억원과 2128억의 영업손실을 냈다. 현대중공업은 28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9% 감소한 성적표를 받았다.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불확실성이 걷히며 대형 선박 수주가 잇따르고 있지만, 원자재 가격 급등이 비용을 키운 탓이다.

미국 등 세계 주요국 당국은 인플레가 일시적이라는 의견을 고수하지만 최근 들어 긴축 시그널을 흘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신흥국 금융시장에서 투자금이 이탈하는 테이퍼 탠트럼(긴축 발작)이 2013년에 이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플레 공포라는 유령이 다시 나타난 시대,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코노미조선’이 ‘인플레이션의 귀환’에 2021년 인플레의 원인과 각국의 대응 및 투자법, 국내외 전문가들의 시각을 담은 이유다.

이진혁·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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