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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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4월 일본 다케다제약이 미국 바이오테크인 아리아드 파마슈티컬스(이하 아리아드)를 54억달러(약 6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 본사를 둔 아리아드는 백혈병 치료제인 ‘아이클루식’을 개발한 꽤 유망한 벤처였다.

초대형 빅딜이 알려지자 아리아드가 개발하던 폐암 신약 ‘알룬브릭(Alunbrig·성분명 브리가티닙)’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알룬브릭은 폐암을 일으키는 암세포 돌연변이를 표적으로 삼아 없애는 항암제다. 지금은 널리 쓰이는 약이지만, 당시만 해도 ‘가망이 없던 폐암 환자가 이 약을 먹고 살아났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새로운 약이었다.

흔히 폐암은 흡연으로 생기는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도 폐암에 걸리는 사람이 꽤 된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폐암 환자 가운데 여성이 35%이고, 이 중 87.8%는 비흡연자다. 이런 비흡연 폐암 환자들은 암세포에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된다. EGFR(이지에프알·표피생장인자수용체)과 ALK(알크·역형성 림프종 인산화효소)가 대표적인 변이들인데, 변이는 암세포를 활성화하는 신호, 즉 스위치 역할을 한다. 따라서 변이가 있는 환자는 변이 스위치만 꺼(억제)도 상태가 금세 좋아진다. 알룬브릭은 ALK 변이의 스위치를 끄는 표적 항암제다.

하지만 알룬브릭은 약효뿐 아니라 개발 속도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다케다제약은 2017년 4월 미 식품의약국(FDA)에서 알룬브릭에 대한 사용 허가를 받았는데, 이는 아리아드팀이 알룬브릭을 후보물질로 발굴한 지 불과 4년 만의 일이었다. ‘과학이 만들어 낸 속도’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진단 기법·IT 기술 발달에 임상 가속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21년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에 나선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의 코로나19 백신이 착수 1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다케다제약 마헨더 나야크 아시아·태평양 총괄은 “10년 전만 해도 ‘신약 개발’은 13~15년 이상 걸리는 일이었다”며 “신약 개발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약 개발 속도 가속화는 정보기술(IT)의 발달, 진단 기법의 발달, 대형 제약사 간 협업과 오픈이노베이션, FDA 등 규제 당국의 신속 대응이 어우러진 결과다. 국내 폐암 분야의 권위자인 이승룡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교수는 “분자진단 기법 발달로 진단이 빨라졌고, 임상전문기업(CRO)에 임상을 맡기면서 속도가 빨라진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표적 항암제의 경우 암세포 변이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억제하는 기전인데,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니, 정답(치료제)도 빨리 낼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형 제약사들이 임상시험을 직접 하지 않고 외주를 맡기면서, 일의 처리 속도가 빨라졌다. 시장 경쟁 덕분이다.

IT가 발달하면서 잡다한 일들이 줄기도 했다. 신약 임상은 ‘이 약을 먹은 환자가 얼마나 안전하고 오래 생존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환자를 병원에 옮겨서, 경과를 확인하기 위한 서류 작업이 많았는데, 이런 과정이 간소화됐다.

미국 규제 당국의 태도도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나야크 총괄은 “미국 FDA가 얼마 전 화이자와 모더나의 오미크론 변이 대응 백신을 불과 20일 만에 승인해 준 것으로 안다”며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 신약 개발 컨트롤타워 세워야”

안타깝게도 이런 신약 개발의 새 트렌드는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 신약이 없다. 국산 코로나19 백신은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나온 지 1년 6개월 만인 올해 6월 겨우 국내 허가를 받았다. ‘이코노미조선’이 ‘공식 바뀐 신약 개발’을 기획한 이유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신약 개발에서 뒤처지는 원인을 ‘컨트롤타워’ 부재에 있다고 봤다. 미국과 대형 제약사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시장을 뚫고 성공하는 신약을 만들어내려면 치밀하게 전략을 잘 짜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그런 전략을 주도하고 이끌어 가는 정부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약 개발 속도를 가속화하는 기술적 측면인 진단 기법과 IT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적 수준이다. 이형기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 교수는 “한국은 너무 많은 부처가 신약 개발 관련 정책을 갖고 있다 보니 부처 간 경쟁과 이기심으로 효율이 떨어진다”라고 설명했다.

2020년 정부 연구개발(R&D)에서 신약 개발에 투자되는 예산은 과학기술정통부가 1977억원, 보건복지부 1839억원, 산업통상자원부 271억원, 식품의약품안전처 256억원 등 8개 부처가 약 4700억원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신약 개발에 성공하려면 중복 투자와 전략 부재를 해결해야 한다”라며 “새로운 정부가 신약 개발을 국정 과제로 삼았다면 바이오 신약 개발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를 국무총리실 이상의 조직으로 상향하고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지원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부문 본부장
“아베오 인수로 글로벌 항암제 시장에서 비상할 것”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부문 본부장(사장)서울대 의학박사, 서울대 내과 전문의, 전 한림대 의대 임상면역학 교수, 전 아스트라제네카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전 한미약품 신약개발본부장 사진 조선비즈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부문 본부장(사장)서울대 의학박사, 서울대 내과 전문의, 전 한림대 의대 임상면역학 교수, 전 아스트라제네카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 전 한미약품 신약개발본부장 사진 조선비즈

“아베오 테라퓨틱스(이하 아베오)는 LG화학이 글로벌 시장으로 비상하는 날개가 될 것이다.”

손지웅 LG화학 생명과학부문 본부장(사장)은 11월 28일 인터뷰에서 지난 10월 5억6600만달러(약 8000억원)를 들여 인수한 미국의 항암 신약 개발 회사 ‘아베오 파마슈티컬스’에 대한 기대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LG화학에서 8000억원 빅딜 소식이 나오자 제약·바이오 업계는 술렁였다. 아베오는 작년 신장암 표적 항암제 신약 포티브다(FOTIVDA·성분명 티보자닙)를 FDA에 3차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신약 개발에 성공한 미국 바이오테크이긴 하지만, 보수적인 LG 기업 문화에서 이 정도 규모의 딜이 성사되기까지는 꽤 오랜 검토 작업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손 본부장은 아베오 인수 배경을 묻는 말에는 ‘최고가 되기 위해, 최고와 함께 일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대부분의 회사가 회사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혁신 신약 개발에 성공하기 어렵다”라며 “날렵한 조직으로, 큰 플레이를 하면서 최고와 함께 일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손 본부장은 이어 “혁신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사의 숙명은 한 번의 성공에 안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며 “신약을 개발하더라도 특허 기간이 끝나면 제네릭(복제약)으로 혜택을 나눠주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제약사의 숙제는 환자들을 위한 혁신 의약품을 끊임없이 내놓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관점에서 아베오와 LG화학의 비전이 잘 맞아떨어졌다”라고 했다. 포티브다를 개발하며 성공한 아베오가 LG화학과 인수합병(M&A)을 받아들인 것은 이런 성공 신화를 이어 가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설명이다.

손 본부장은 아베오가 ‘전통 신약 강자’였던 LG화학에 재기의 발판이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는 “넘어진 적이 없으니 ‘재기(再起)’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LG화학이 글로벌 신약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목표를 아직 이루지 못한 건 맞다”라며 “하지만 시장 성장률을 상회하는 실적은 내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외 바이오벤처의 사업 모델이 ‘여러 개 중 하나만 성공하면 된다’는 자본시장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면, 기존 사업에서 나오는 현금을 미래 성장산업에 투자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라고도 말했다. 그는 “이런 LG 고유의 전략은 흔들림 없이 신약을 성공시키는 포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지 조선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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