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원 기업 MP머티리얼즈가 운영하는 희토류 광산인 캘리포니아주 마운틴패스. 구덩이에 있는 원석을 덤프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자원 기업 MP머티리얼즈가 운영하는 희토류 광산인 캘리포니아주 마운틴패스. 구덩이에 있는 원석을 덤프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희토류 노천 광산 ‘마운틴패스’에 요즘 활기가 돌고 있다. 이 광산을 소유한 MP머티리얼즈의 제임스 리틴스키 회장은 3월 18일(이하 현지시각) 2020년 실적을 발표하면서 “생산량이 전년보다 40% 급증했다”며 “미국에 대한 희토류 공급망을 완전 복원하는 우리의 미션에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고 자평했다. 지난해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15.8%가 이 광산에서 나왔다. 미국 국방부로부터 받는 보조금으로 추가 시설 투자도 할 계획이다. 마운틴패스는 1952년 개장한 미국 유일의 희토류 채굴 및 가공 지역으로 2002년과 2015년 두 차례 폐광하는 아픔을 겪었다.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과 경쟁 격화와 환경 규제 탓에 운영 업체가 파산하고, 주인이 수차례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MP머티리얼즈는 미국 헤지펀드 JHL캐피털 등이 소유한 회사로 2017년 이 광산을 인수했고, 지난해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과 합병으로 뉴욕증시에 상장했다. 미국에서 희토류 관련 업체가 상장한 것은 역대 두 번째였다. 마운틴패스의 전 소유주인 몰리코프가 2010년 상장한 지 5년 만에 파산한 바 있다.

마운틴패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지원도 예고돼 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월 24일 중국에 의존하지 않도록 공급망 재검토를 지시한 품목이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과 함께 희토류로, 지원책을 담은 검토 결과가 6월 초 나올 예정이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에도 수그러들지 않는 미·중 무역갈등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의 리스크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마운틴패스의 부활은 자국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는 미국의 행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EU(유럽연합)가 희토류와 필수 금속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한 ‘유럽원자재동맹’을 지난해 9월 발족시킨 것도 중국 중심의 공급망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다.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부 장관은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필수 원자재 공급망 확보가 전기차를 통한 탄소 배출 감소와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이용 확대의 전제”라고 말했다.

희토류뿐이 아니다. 반도체와 의약품, 배터리 등 미래 산업과 민생과 직결된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노력이 확산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4월 16일 반도체 공급망과 차세대 이동통신인 5G 기술 개발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5G 공급망에서 중국 화웨이를 배제하는 데 애로를 겪고 있는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6G 연구개발에 총 45억달러(약 5조850억원)를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첫 대면 정상회담에서 중국 중심 글로벌 공급망을 동맹을 통해 재편하려는 바이든의 구상이 가시화했다는 지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을 전제주의(autocracy) 국가로 명명하고, 이에 대응하는 민주주의(democracy)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로 공급망을 재조정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혀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4월 12일 삼성전자와 TSMC 등 글로벌 19개 사 대표와 화상 연결을 통해서도 “미국의 반도체 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을 요청했다. 미국의 인텔은 200억달러(약 22조6000억원)를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재진출하고, 차량용 반도체 생산에 나서기로 하는 등 정부에 화답하고 있다. 대만의 TSMC도 미국 공장 확충으로 반도체 동맹에 가세하기로 했다. 중국의 시안과 우시에 각각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서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미국은 삼성전자의 중국 공장 축소와 미국 오스틴 공장 확충을 압박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삼성은 중국 시장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 탓에 난처한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미국을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하는데, 스가 총리처럼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중국을 배제하는 반도체 동맹 가입을 요구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유럽도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나섰다. EU는 반도체 생산 세계 점유율을 지금의 두 배인 20%로 확대하는 목표를 담은 ‘디지털 전환 로드맵’을 3월 9일 발표했다.


의약품·배터리도 공급망 재편 분주

코로나19 사태로 취약성이 부각된 의약품 공급망 역시 재편 시도가 이뤄지는 분야다. 바이든 대통령은 2월 24일 의약품 공급망 검토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의사들이 (방호복이 없어)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끔찍한 얘기를 들었다”며 “국가 비상사태에 미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의 이익이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에 의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의료용품을 가장 많이 공급하는 중국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유럽도 백신 공급망 확보에 분주하다. 이탈리아는 미국 모더나와 스위스 노바티스, 이탈리아 레이테라와 함께 자체 백신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EU가 아스트라제네카와 존슨앤드존슨 백신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계 백신의 60%를 생산하는 인도는 자국민을 먼저 보호하겠다며 백신 수출을 제한해 특정국에 의존한 글로벌 백신 공급망의 취약성이 부각되고 있다.

전기차용 배터리의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이 이긴 SK이노베이션과의 특허권 분쟁을 놓고 미국 정부가 직접 두 기업의 극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미국 조지아주에 짓는 SK이노베이션 공장의 일자리 2600개와 지역 발전을 간과할 수 없었다는 이유도 있지만, SK이노베이션이 미국을 떠나면 자국 중심 배터리 공급망 구축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생산은 개도국으로 넘기고, 설계와 특허, 표준으로 글로벌 가치사슬의 상단에 집중했던 미국과 EU가 리쇼어링(제조업의 본국 회귀)과 외자 유치, 동맹 구축 등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의 축을 뒤흔들고 있다. 영국 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호에서 “지정학적인 구도가 대립적으로 바뀔 때 글로벌 공급망이 한곳에 몰리는 것은 리스크가 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글로벌 공급망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의 원천”이라며 “자급하는 게 더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터 윌리엄슨 케임브리지대 저지비즈니스스쿨 명예교수는 “한 지역에서만 공급하는 것은 여러 국가에 걸친 공급자의 네트워크와 비교해 규모가 작고, 위기에 대응해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옵션이 적다”고 말했다.


plus point

AI, 글로벌 공급망 지형 바꾸나

“화웨이 생산라인은 일부만 인공지능(AI)을 활용하고 있는데도 생산라인에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더 발전하면 일하는 사람은 더 줄어들 것이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가 외신기자들과 만나면 자주 하는 발언이다. 그는 AI를 통한 공장자동화로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도 높은 생산성으로 제조공장을 운영할 수 있어 중국이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해왔다. 제조업에서 저렴한 인건비로 승부 거는 시절은 지났다는 경고였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도 올해 초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발간한 ‘기술 패권 시대의 대중국 전략’ 보고서에서 “4차 산업 혁명과 디지털화에 의한 생산성 혁신이 가능하면 AI와 스마트공장 및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무장한 기업의 리쇼어링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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