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2600억원은 28조원으로 107배, 자산 4400억원은 32조원으로 72배, 수주액 2000억원은 32조원으로 162배. 출범 9년 만에 재계 12위 등극.’ 이것은 지난 2000년 쌍용그룹에서 분리돼 탄생한 STX(옛 쌍용중공업)가 2008년 12월까지 불과 9년 만에 이뤄낸 놀라운 성적표다. 그동안 STX그룹에서는 대체 무슨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수주액 32조원 ‘162배 고속 성장’

출범 9년 만에 재계 12위  등극

STX의 태동은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쌍용그룹이 삐걱이면서 시작됐다. 무리한 자동차 사업 투자로 어려움을 겪던 쌍용그룹은 발전용 엔진과 선박용 엔진을 만들던 계열사 쌍용중공업의 지분 34.45%를 2000년 11월에 한누리컨소시엄에 163억원에 매각한다. 새 주인을 맞은 쌍용중공업이 바로 STX그룹의 모체다.

인수 직후 한누리컨소시엄과 채권단은 쌍용그룹과 더불어 위기에 빠져있던 쌍용중공업 정상화에 착수한다. 이들은 쌍용중공업의 구원투수로 쌍용중공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였던 강덕수 당시 전무를 투입한다. 쌍용그룹에서 막 분리됐던 2000년 말, 쌍용중공업의 매출은 2605억원, 자산규모는 4391억원 수준이었다.

퇴출기업 명단에 올라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던 쌍용중공업이었지만 강 회장은 선박엔진 산업을 통해 들여다본 조선 산업에서 밝은 미래를 읽고 있었다. 이듬해인 2001년 5월, 그는 오너 경영자로 변신한다. 사재를 털고, 갖고 있던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 등을 토대로 회사의 최대주주로 올라선 것이다. 회사 이름도 STX로 바꾸고 새로이 출발선에 섰다.

분위기를 정비한 STX는 같은 해 6월 엔진부품을 만들던 소재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STX엔파코를 설립한다. 이어 10월에는 STX그룹의 핵심 계열사가 되는 대동조선(STX조선해양)을 인수하며 오늘날 그룹 성장의 중요한 기반을 다졌다.

이 같은 계열사 분할과 대동조선 인수를 통해 STX는 당시 ‘선박(STX조선)·선박용 엔진(STX)·선박 엔진 부품(STX엔파코)’ 편대를 구성, 조선그룹의 기본 틀을 갖추게 된다. 조선그룹의 기틀은 잡았지만, STX그룹의 갈 길은 아직 멀었다. 이 해 매출은 4850억원, 자산 규모는 1조855억원에 불과했다.

2002년 11월에는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를 인수하며 STX그룹은 조선과 해운의 연관 산업이자 신수종 사업인 에너지 사업으로 가는 길을 연다. 그 해 그룹 매출은 9760억원, 자산 규모는 1조3821억원이었다.

경영권 위협 있었지만 잘 막아내

2004년, 강 회장과 STX그룹은 연초부터 뜻하지 않은 외부의 공격에 마음을 졸여야 했다. 2월에 두산그룹 계열인 HSD엔진(현 두산엔진)이 STX그룹의 지주회사 격이던 STX의 지분 12.79%를 매입하며 강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했던 것이다. 이어 삼영(현 S&T)의 최평규 회장도 STX 지분 9.94%를 사들이며 경영권 흔들기에 가세했다.

강 회장은 오히려 이를 계기 삼아 강 회장 지분과 우호 지분의 규모를 늘려 경영권을 강화했다. 아울러 취약한 지배구조로 인해 외부의 공격이 초래됐음을 절감하고 지주회사 체제 도입을 서둘렀다. 앞서 2월에 엔진사업 부문을 조선기자재업체인 STX중공업으로 분가시켰던 그룹은 4월에 기존 STX의 투자부문을 지주회사로, 선박엔진 부문은 STX엔진으로 출범시켰다.

한바탕 경영권 방어전을 치른 후인 5월, STX그룹은 에너지 부문의 한 축으로 삼고자 공을 들였던 인천정유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시고 만다. 간발의 차이었다. 인수전의 승자였던 중국 씨노켐이 써낸 가격에 불과 200억원이 부족했던 것.

정신없던 상반기를 지나 하반기에 들어서자 마침내 낭보가 날아들었다. 11월에 벌크선(건화물선) 운송업체인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조선업의 후방산업인 해운업종에 드디어 발을 내딛게 된 것이었다.

범양상선 가세에 힘입어 STX그룹은 이 해에 의미 있는 도약을 한다. 2004년에 그룹 매출 4조9000억원, 자산 규모 4조576억원을 기록하며 전년과 비교해 3~4배가량 훌쩍 성장한 것이다.

2005년 재계 20위권 첫 진입

2005년에 STX그룹은 그 동안의 성장을 바탕으로 재계 순위(공기업 제외, 그룹 자산 규모 기준)에 첫 진입하며 재계에 등장하게 된다. 22위였다. 이 해 그룹 매출은 6조4000억원, 자산 규모는 5조82억원으로 불어났다. 이 해 2월에는 공장 건설 등 그룹의 사업과의 시너지를 도모하고자 STX엔파코의 건설 부문을 떼어 내 STX건설을 설립했다.

2006년 역시 STX그룹에는 인상적인 해다. 11월, 중국 다롄에 대규모 조선기지 건설을 위해 STX다롄을 설립한다. 부지 넓이가 550만㎡(약 170만평)에 이르는 STX의 중국 다롄 조선해양기지는 세계 최대인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660만㎡)에 못지 않은 초대형 조선소다. 공사비만 15억달러(약 1조9500억원)다. 이 해 그룹 매출은 7조8000억원, 자산 규모는 6조원이 되었다. 재계 순위는 20위였다.

2007년부터 STX그룹은 조선과 해운 경기 활황을 타고 순풍에 돛을 단 듯이 거침없이 나아갔다. 2007년에 그룹 매출 12조6266억원, 자산 규모 12조3937억원으로 나란히 12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2008년에는 그룹 매출 28조1592억원, 자산 규모 31조6439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순풍에 돛을 달다

재계 순위도 계속 올라갔다. 2007년 18위, 2008년에는 1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2007년 2월에는 태양광사업을 책임질 STX솔라를 출범시켰고, 역시 같은 달에 리조트 개발 등을 맡은 STX리조트가 사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10월. STX그룹은 세계 2위 크루즈선업체인 아커 야즈(현 STX유럽) 인수라는 ‘빅뉴스’를 전했다. 아커 야즈를 인수하면서 STX그룹은 전 세계 조선업체 가운데 유일한 포지션을 구축하게 된다. 일반상선, 여객선, 해양플랜트, 방산용 군함 등 조선 4개 분야의 전 선종을 모두 생산하는 지구상 단 하나의 조선그룹이 된 것이다.

아커 야즈 인수는 최고 고부가선종인 크루즈선 건조능력 확보라는 점 외에도, 강 회장의 오랜 소원이던 ‘선진국의 조선 원천기술 보유’의 꿈을 이루게 해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2008년에는 에너지 사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오일뱅크 인수를 노렸다. 그러나 오일뱅크 인수전은 무산됐다.

2009년 7월 현재 STX그룹은 에너지 사업과 관련해 지역발전사업을 하는 안산도시개발 인수전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 STX의 재계 순위는 12위로, 지난해와 동일하다.

 

tip ‘입양’과 ‘출산’의 절묘한 하모니

STX그룹은 ‘M&A로 큰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그룹의 성장사를 들여다보면 단순히 ‘인수 및 합병’에 그치지 않았다. M&A 후 STX그룹의 대응을 보면 ‘인수 후 육성’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인수했던 2001년 매출이 4428억원이었던 STX조선해양은 2008년에 매출 3조57억원을 내며 579% 컸고, 역시 인수했던 2004년 1조9771억원의 매출을 보였던 STX팬오션도 매출 규모를 8조2673억원으로 늘리며 318% 성장했다.

강덕수 회장은 늘 “STX는 M&A를 잘하는 회사가 아니라, 기업의 가치를 키울 줄 아는 회사”라고 강조한다. 차익을 노려 기업을 사고파는 ‘기업 사냥꾼’과는 차원이 다르고, 이미 강자로 큰 초대형 기업을 비싸게 사들이는 식의 무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력 계열사인 조선해양과 팬오션의 눈부신 성장을 볼 때, STX그룹은 확실히 ‘중간 규모의 기업을 사들여 튼실하게 키우는’ 데 남다른 솜씨가 있다.

STX그룹은 M&A로 그룹의 핵심 계열사를 ‘입양’해 키움으로써 그룹 성장의 시간을 단축시키기도 했지만, 신규 설립이라는 ‘출산’도 꾸준히 병행했다. 선박을 만드는 STX조선해양은 M&A했지만, 선박에 들어가는 엔진(STX엔진), 선박엔진 부품(STX엔파코), 조선기자재(STX중공업) 등 선박 본체를 제외한 모든 분야는 그룹의 뿌리인 쌍용중공업(STX)을 모태로 태어난 기업이다.

에너지 부문의 경우 STX솔라를 설립해 태양광 사업을 맡겼다. 국내외에 새로운 조선소와 공장 건설이 이어지자 STX엔파코의 건설 부문을 분할해 STX건설을 출범시켰다. 중국 다롄에 거대한 조선소를 짓고 있는 것 역시 ‘출산’이다.

한 마디로, STX그룹은 M&A로 핵심 계열사를 찾아내는 동시에, 직접 설립을 해나가면서 수직계열화의 퍼즐을 맞춰간 것이다.

tip 강 회장·STX그룹 “운도 따랐다”

‘아무리 실력 있는 사람도 운 좋은 사람 못 당한다’는 말이 있다. STX그룹이 성장한 과정에는 ‘행운의 여신’이 대부분 함께 있었다. 대동조선, 산단에너지, 범양상선, 아커 야즈 등의 인수 성공은 물론이고, 심지어 실패했던 M&A마저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STX그룹에는 행운이 된 경우가 많았다.

2004년 5월의 인천정유 인수 실패는 강덕수 회장에게 역으로 그 해 11월 범양상선(STX팬오션) 인수라는 행운으로 돌아왔다. 인천정유를 놓친 강 회장은 ‘꼭 인수하고 싶은 기업에는 올인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고, 인천정유 인수에 쓰려던 자금을 범양상선 인수에 투입할 수 있었다.

대한통운 인수 실패(2008년1월)도 당시에는 STX그룹에 뼈아픈 것이었다. 4조2000억원이라는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내고도 가격 외의 평가요소가 경쟁자 쪽에 힘을 실어주면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덕분에 통장에 남아있던 인수 자금은 아커 야즈(STX유럽) 인수에 쓰이며 오히려 약이 됐다.

2008년 9월의 극동빌딩 인수 포기도 그렇다. 입찰에서 4000억원을 쓴 STX는 1등이었지만 매각 주체가 더 비싸게 팔려고 2순위자를 우선협상자에 함께 올려 재입찰을 요구하자 STX그룹은 과하다는 생각에 이를 포기했다. 금융위기로 인해 빌딩 등 자산 가치가 줄줄이 하락하고, 현금도 귀해진 요즘을 생각하면 인수 포기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행운’은 자칫 실력 부족으로 폄하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기회는 아무나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준비가 부족할 때 날아든 기회는 곧 달아나기 일쑤다. 평소에 실력을 갈고 닦아 준비가 되어 있어야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법이다.

이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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