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회장은 M&A를 적절히 이용해 STX그룹을 빠른 속도로 키웠다. 그는 수익성 악화와 유동성 문제에 시달리던 기업들을 인수해 알짜기업으로 변신시킨 점을 강조하며 STX를 ‘M&A 잘하는 회사’로만 보는 세간의 평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STX그룹의 성장은 M&A와 함께 적절한 신규 설립 및 투자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다. 하지만 STX그룹의 초고속 성장 뒤에 적시에 이뤄진 M&A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도 곤란하다. STX그룹의 M&A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까.

시너지 효과 고려해 과감하게 인수…

기업가치 키워 알짜로 변신시켜

시너지 없으면 절대 안 산다

STX그룹이 M&A를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M&A한 것은 대동조선(STX조선해양), 산단에너지(STX에너지), 범양상선(STX팬오션), 아커 야즈(STX유럽) 4건뿐이다. M&A가 본업도 아니고, M&A 전담팀 같은 것도 따로 없다. 관심 있는 매물이 있으면 재무나 기획 같은 담당 부서 임원과 함께 강 회장이 직접 뛴다.

강 회장에게는 자신만의 M&A 철학이 있다. 우선 매물을 고르는 눈이 남다르다. 강 회장이 가장 주목하는 것은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 효과다. 초기에 인수한 대동조선, 산단에너지, 범양상선 모두 공개 매각 기업이었다.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정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사업 전략에 맞는 회사를 찾다 보면 남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도 눈에 띈다. 강 회장이 처음 포착한 것은 법정관리 중이던 대동조선이었다. 당시 대동조선은 주인이 다섯 차례나 바뀌는 동안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회사였다. 강 회장의 ‘매직 아이’가 반짝였다. STX의 전신인 쌍용중공업은 당시 선박용 엔진을 만들고 있었는데, 대동조선과 묶을 경우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베팅은 과감하고 빠르게

범양상선 인수는 해운·조선·엔진·조선 기자재로 이어지는 해운 조선 산업의 완벽한 수직계열화를 의미했다. STX조선해양의 안정적인 건조 물량 확보와 범양상선의 선단 확충을 통한 경쟁력 강화도 기대됐다. STX조선해양의 선박 건조 기술을 활용하면 경쟁력 있는 선단을 구축할 수 있어 범양상선이 세계 5대 해운사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할 기회였다. 범양상선이 합류하면서 STX조선해양도 ‘세계 5대 조선소’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STX조선해양과 STX팬오션 모두 인수 당시에는 그처럼 화려한 부활을 기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 회장은 각 사가 보유한 숨은 가치를 꿰뚫고 정확한 예측으로 지속적 성장을 위한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강 회장은 일단 M&A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후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베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동조선을 인수할 때 실무진이 “회사 재무 여력 등을 따져볼 때 인수가는 400억~600억원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는 보고서를 올렸다. 강 회장은 “남이 얼마를 쓸지 고민할 게 아니라 우리에게 대동조선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따져 인수가격을 정해야 한다”며 경쟁사가 제시한 금액의 두 배에 달하는 1000억원을 써냈다.

범양상선의 경우 경쟁업체 평균 제시 가격보다 20% 이상 비싼 4199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그룹 전체 규모와 맞먹는 인수가로 대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과감한 베팅 못지않게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다. 그룹 차원의 회의 같은 것은 없었다. 임원들이 모여 갑론을박을 하다가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강 회장은 핵심 담당 임원 2~3명만 데리고 2~3개월간 밤샘 스터디를 거쳐 인수를 최종 결정했다.

기업이 아니라 인재를 산다

STX그룹에서는 인수한 기업이나 외부에서 영입한 능력 있는 인사를 중용한다. 강 회장의 M&A 후속 전략은 한 마디로 ‘포용’이다. 강 회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핵심 인사 대부분이 외부 출신이다. ㈜STX와 STX팬오션 대표이사로 그룹의 해운과 무역 부문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고 있는 이종철 부회장을 비롯해 STX에너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홍경진 사장 모두 범양상선 출신이다. 이인성 부회장, 장원갑 부회장 같은 이들도 밖에서 온 중역이다. 그룹 내 각 사업 부문을 책임지는 대다수의 경영진에는 그동안 해당 사업을 묵묵히 소신 있게 수행해 온 인물이 대거 포진돼 있다.

“나는 회사가 아니라, 인재를 샀다.” 강 회장이 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하는 말이다. 인수 후 인적 쇄신을 할 법도 하건만 강 회장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그랬다면 적서를 차별하는 것으로 비춰져 심각한 내부갈등을 빚었을지 모른다. 역사가 짧다는 단점을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부 결속을 다지고 한마음 한 뜻으로 매진해야 한다는 것을 강 회장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강 회장은 인수 후 조직을 대폭 축소·통합하지 않고 오히려 조직을 둘로 나눠 사람을 더 채용한다.

차입 최소화 및 인수 자금은 조기 회수

STX그룹이 M&A에 뛰어들 때마다 주변에선 “도대체 무슨 돈이 그리 많아 매물이 나오는 족족 사들이느냐”며 자금 조달 능력에 의아스러워 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이해하지 못할 베팅도 아니다. 대동조선, 산단에너지, 범양상선 3건의 M&A에 들어간 돈은 6000억원 정도다. 인수자금도 빚을 얻어온 것이 아니라 시장과 투자자한테서 나온 것이다. 게다가 M&A를 할 때마다 들인 돈을 1~2년 안에 회수해 왔다.

2001년 대동조선을 인수할 때 들어간 1000억원은 2002년 일반 투자자와 금융기관에 일부 주식을 팔아 700억원, 2003년 HSBC에 일부 주식을 팔아 400억원을 회수했다. 오히려 100억원을 남긴 셈이다. 그리고 그 해 10월 대동조선을 상장할 때 주식을 매각해 355억원이 추가로 들어왔다.

범양상선도 그렇다. 2004년 범양상선을 4199억원에 인수했는데, 이듬해 싱가포르에 직 상장해 3800억원을 회수했다. 400억원 정도가 나간 셈인데, 당시 STX그룹이 보유한 주식 가치가 2조원이 넘었으니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였다. 아커 야즈를 인수할 때 들어간 8000억원도 현금이 많은 STX엔진과 STX조선해양 돈으로 전액 조달했다.

tip  STX, M&A 실패·외부공격 받기도

강 회장이 공격적인 M&A만 한 것은 아니다. 강 회장 역시 M&A 공격을 받기도 했다. 2004년 초, 두산중공업 계열의 선박엔진 제조업체인 HSD엔진이 STX 지분 12.79%를 인수하며 최대주주가 됐을 때 강 회장은 아찔했다. 그러나 이를 잘 막아내 오히려 지배구조를 튼튼하게 하는 계기로 삼았다.

강 회장의 M&A가 언제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2004년 인천정유 인수전과 2008년 대한통운 인수전에서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자산가치가 수조원에 이르는 인천정유가 근소한 차로 6000억 원을 제시한 중국의 시노켐으로 매각되는 것을 보며 강 회장은 심각한 국부 유출의 허탈함을 통감했다.

이임광 기업전문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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