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의 색채전문가로는 한동수 한국색채연구소장이 꼽힌다. 1969년 KBS에 디자이너로 입사한 한 소장은 컬러방송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색채연구에 뛰어들었다. 26년간 KBS에 근무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색에 미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색채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기로 했다. 그는 지금까지 2135개의 섬유 표준색, 1519개의 도료 표준색, 1502개의 인쇄잉크 표준색 등을 만들었다.

한동수 한국색채연구소장

“색 지배하면 세계 산업도   지배할 수 있어요”

“색은 기호이자 언어입니다. 색을 통해 의사소통이 가능하단 얘기죠. 색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는데, 우리는 뒤처지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색채 문맹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동수(69) 한국색채연구소장은 색채에 있어서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50년이나 뒤떨어진 후진국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뒤처진 것은 물론 최근에는 중국에도 밀릴 형편이라고 했다.

“중국에서 초청을 받아 색채강의를 갔는데 색깔에 대한 그들의 의지가 무서울 정도였어요. 중국이 미래 패션의 발원지가 되겠다고 선언했는데, 그 툴이 바로 색채입니다. 발빠르게 색채의 중요성을 파악한 거죠.”

1995년 지식경제부 산하 재단법인으로 설립된 한국색채연구소는 한국의 색채표준화, 색채자료 개발, 색채정책, 색채인력 양성 등 산업과 문화 전반에 걸쳐 꾸준히 색채관련 연구를 해 오고 있다. 또 기업 등을 대상으로 컬러 컨설팅과 컬러 마케팅, 색채관리 등의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신호등의 초록불을 파란불이라고 하죠. 사람에게 시각이 83%를 차지하고, 그중 70% 정도가 색깔인데, 이런 걸 보면 한국의 색채현실은 암담할 정도입니다. 선진국들은 1900년부터 색을 기호로 썼어요. 하지만 우리는 색에 너무 무감각해요. 지금도 기술은 되는데 색채만큼은 극복이 안 되고 있잖아요.”

그는 자동차의 색을 예로 들었다. 미국의 자동차 색은 1700여 가지에 달하는 반면, 우리나라 자동차는 100여개 색깔밖에 없다. 그것도 검은색과 하얀색이나 또는 그 두 가지가 혼합된 색이 대부분이다. 깊고 우아하게 색깔만 바꿔도 품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적 분석 통해 색 다뤄야

한 소장은 기업의 경우에도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색을 다룰 줄 아는 수준에 올라야 컬러마케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색마다 생리적 반응과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기본적인 에너지가 따로 있다고 한다. 색이 그저 단편적인 느낌만을 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신체에 생리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빨간색을 보면 흥분하고, 맥박이 빨라지고, 혈압이 높아지는 생리적 반응을 경험한다. 반대로 파란색은 맥박이나 혈압을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다.

“아름다워서만 되는 게 아닙니다. 색에 대한 이미지는 지역이나 민족, 나이나 성별에 따라 각각 달라요. 수출품의 색깔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죠. 또 제품 고유의 의미를 전달하는 색이 따로 있기도 하고요. 커피나 꿀에는 녹색을 안 쓰잖아요.”

그는 이탈리아의 베네통처럼 한국 기업도 색을 만들 수 있어야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이탈리아보다 색을 개발할 여지가 더 많아요. ‘검정’을 의미하는 우리말만해도 ‘검다’ ‘거무튀튀하다’ ‘거무스름하다’ 등 69가지나 됩니다. 그만큼 색을 세분화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한 소장은 예전 우리네 할머니가 집안에서 굴러다니던 헝겊 조각을 모아 만든 보자기만 보더라도 그 색의 조화는 현대회화에서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색깔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고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그는 검은색 원단을 주문받았다가 40여회나 클레임을 받았다는 기업의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가장 좋은 색은 자연색

그는 사람도 타고난 색깔이 있는데, 색에 따라 인상이 환해지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하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색은 무엇일까.

“가장 좋은 색은 자연의 색입니다. 징그러운 쐐기벌레도 배색은 완벽하잖아요. 해가 지는 장면을 보면서 ‘더 빨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어요. 자연을 바라보면 그저 감탄사만 나올 뿐이죠. 하루 종일 자연 속에 있어도 질리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고요.”

그가 한국의 자연에서 2010개의 색을 뽑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를 두고 ‘우리의 색’을 전 세계적으로 언어화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한 소장은 2014년까지 2010개의 색을 언어화해 전 세계에 무료로 배포한다는 계획이다. 전 세계가 하나의 색상체계로 통일되면 번호만으로 색깔을 쓸 수 있게 된다. 전 세계 모든 기업에서 쓰는 색을 우리가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색이 색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쓰이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고감성 시대로 접어들고 있어요. 고감성 시대에는 색 하나만 잘 사용해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지요. 색은 디자인의 한 분야가 아니라 하나의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이제 소비자들의 선택기준은 색깔입니다. 색에 대한 체계를 세워두지 않으면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색을 지배하면 우리나라 전체 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세계 산업 발전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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