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80년대 말 이후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버블이 꺼졌다. 그리고는 20년에 이르는 장기침체에 빠졌다. 제로금리에도 경기는 아직까지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일본을 보면 한국이 보인다는 얘기들을 한다. 정말 그럴까.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의 실상, 그리고 이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을 살펴본다.

  

일본, 부동산 가격 급락 ‘잃어버린 20년’

빈집 800만 가구…20년만에 반토막

 

단신 세대 증가 등 추가하락 불가피



- 1990년대 들어 부동산 버블이 꺼졌던 일본의 도쿄.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인해 일본은 20년간 장기침체의 고통을 겪고 있다.

도쿄 도심에서 전철로 1시간 거리인 요코스카 시 시오이리 역세권. 대형 백화점과 호텔이 있는 상가 거리를 빠져나와 10분쯤 걸어가면 시오이리마치오초메(汐入町5丁目)라는 동네가 나온다. 미군의 제7함대가 주둔한 요코스카의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역세권 주택가다. 하지만 동네 초입부터 인기척이 없다. 동네 입구에 있는 2층 임대주택용 건물 입구에 있는 우편함이 모두 텅 비어 있다. 현관 옆에 설치된 전기계량기는 돌고 있지 않았다. 주변의 단독주택들이 몰려 있는 골목길로 들어가자 마당이 잡초로 뒤덮여 있거나 창문이 깨져 있는 빈집들이 곳곳에 보였다. 한 주민은 “집주인이 죽거나 이사를 해도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보니 빈집이 늘었다”고 말했다. 요코스카시가 최근 이 동네의 주택을 전수 조사한 결과, 287가구 중 53가구가 빈집이었다. 다섯 가구 중 한 가구가 빈집인 셈. 요코스카는 미 제7함대가 주둔해 있어 미군수요가 많은 데다 요코하마·도쿄 출퇴근권이어서 도쿄권에서는 비교적 상황이 좋은데도 빈집이 급증하고 있다.

빈집 늘어나는 일본

일본 부동산 가격은 20년째 하락 중이다. 2005~2006년 도쿄지역을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디플레 탈출의 기대감이 있었지만, 리먼 쇼크에 직격탄을 맞은 이후 계속 하락 중이다. 20년 전에 비해 부동산 가격이 대부분 반 토막 났다.



일본 부동산 가격의 장기하락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현상이 빈집의 증가다. 일본 국토교통성 조사에 따르면 2008년에 전체 5711만9170가구 중 13%가 넘는 745만9110가구가 빈집이었다. 올해는 800만 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빈집 증가와 경기침체로 인해 일본 주택가격이 20년 만에 반 토막 났지만, 저출산에다 단신 세대 증가까지 겹치면서 주택가격의 추가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일본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국토의 장기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연간 출생자가 1970년대 200만명대에서 최근 100만명대로 급감함에 따라 올해 출생자들이 내 집 마련 수요로 전환하는 40년 후에는 빈집이 1500만 가구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인구가 급감하는 야마나시현, 나가노현, 와카야마현 등 지방은 다섯 집 중 한 집이 빈집이다. 하지만 대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도쿄도 전체 678만가구 중 11%인 74만7080가구가 빈집이다. 대부분 도심과 거리가 먼 신도시 등 교외지역에 집중돼 있지만 도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NHK가 연초 도쿄에서도 인기주거지로 꼽히는 세타가야(世田谷)구와 쓰기나미(杉)구의 빈집 103곳을 조사한 결과, 30% 정도는 집주인이 행방불명 상태였다. 자녀 없이 혼자 살다 죽은 후 집이 방치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자식이 없는 등의 이유로 재산상속인이 지정되지 않은 사망자가 연간 1만5000명에 달한다.



나머지는 투자용으로 주택을 사들였거나 자녀가 상속한 경우였는데, 주택수요 감소로 인해 주택거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방치하고 있었다. 빈집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벌레가 대량으로 발생하거나 방화 등 범죄가 잇따르는 등 흉가로 전락하고 있다. 자치단체들은 빈집이 급증하자 빈집을 강제로 헐 수 있도록 하는 조례를 만들거나 철거자금을 지원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빈집이 급증하는 것은 가족구조의 변화도 큰 원인이다. 혼자 사는 단독가구가 1985년 790만 가구에서 2010년 1570만 가구로 두 배나 증가했지만 대부분의 주택은 4인 가족 중심으로 공급됐다. 일본정부 조사에 따르면 30~69㎡는 800만 가구 정도가 부족한 데 반해 150㎡ 초과 주택은 350만 가구 정도가 남아돈다. 대가족이 급감하면서 관리비가 많이 드는 큰 집을 기피하는 현상이 일반화된 것. 도심 주택가에도 방이 서너개가 넘는 단독주택에 노부부만 사는 집들이 많다. 한국도 가족구조의 변화에 대비한 정책이 필요하다. 나 홀로 사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지만 대부분 주택이 4인 가족 중심이다 보니 앞으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고층아파트 건설 현장. 일본은 2000년대 중반 부동산 펀드 붐을 타고 고층아파트 건설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종지부를 찍었다.

20년 하락에 사라진 투자마인드

일본인들은 주택가격이 20년간 하락을 거듭하다 보니 집을 살 때 집값이 오르기를 기대하고 투자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택을 파는 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기자가 찾아간 도쿄의 고층 주상복합아파트의 모델하우스 상담원은 ‘내 집 마련이 재테크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한마디 설명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편리한 시설을 갖추고 있는가와 장기대출 금리에 대해 설명했을 뿐이다. 저금리인 상황에서 임대료를 감안하면 오히려 집을 사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 마케팅 포인트였다.



저금리인데도 집을 사지 않는 이유는 집값이 계속 내려갈 것이라는 공포감 때문이다. 또 집을 한번 사면 되팔 수 없어 그 집에 영원히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갖고 있다. 일본 주택의 거래빈도는 1~2% 정도에 불과하다. 향후의 집값 하락을 감안하면 차라리 임대료를 내는 것이 더 싸고 원하는 집에서 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판매원은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집을 사라고 해도 누가 믿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5년 전후로 일본의 땅값이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급등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건설업체 간의 토지확보 경쟁으로 나타난 현상으로 일종의 미니 버블이라는 전망이 많았고 실제 리먼 쇼크 이후 땅값이 급락했고 부동산 업체들의 도산이 잇따랐다.



1980년대 말에만 해도 <부동산이 최고야>와 같은 책들이 유행했던 점을 감안하면 상전벽해다. 당시 부동산 재테크 책은 ‘지가 하락 걱정하지 마라’, ‘지가 상승은 지방도시에도 파급 된다’, ‘위성도시의 임대용 부동산을 노려라’, ‘내 집을 마련하는 새로운 법칙’ 등 적극적으로 부동산 투자를 권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일본의 부동산 불패신화를 부추긴 것은 인구보다 국토가 비좁다는 믿음 때문이다. 일본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섬나라로 국토 대부분이 산지다. 환경적으로 일본인들은 이용할 수 있는 토지가 좁기 때문에 땅을 사두면 결국 오를 것이라 믿었다. ‘일본인들은 농경민족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땅을 갖고 싶어 한다’는 등의 속설도 난무했다. 한국의 부동산불패론 근거와 유사하다. 그 때문에 1980년대 말에는 ‘일본 국토를 팔면 미국 국토를 서너 번은 살 수 있을’ 정도로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일부 전문가들이 거품론을 제기했지만 <부동산이 최고야> 부류의 책들이 쏟아지면서 부동산 가격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이 일본 열도를 휩쓸었다.



하지만 지금은 장기침체, 인구구조의 변화로 영원히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일본에 팽배해 있다. 도쿄 도심 주택가에도 빈집이 널려 있고 낡아 금방 붕괴할 것 같은 허름한 주택들도 많다. 집을 새로 지어 임대사업을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왜 주택들을 방치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실제 일부 일본인들은 낡은 주택을 사서 리모델링으로 임대사업을 벌여 억만장자가 됐다며 부동산 재테크 책들을 펴내고 있다. 하지만 떼돈 번다는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 일본인은 주택 투자 마인드 자체를 상실했다.



- 일본은 1990년 이후 장기침체로 니케이지수가 1만선을 밑돌고 있다. 1990년에는 니케이지수가 4만선에 육박했다(왼편). 지난 4월 28일 일본 최대 전자업체 파나소닉이 4만명의 대규모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하자 직원들이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도쿄 파나소닉 사옥을 걸어 나오고 있다.

한국 부동산 시장 어디로?

한국도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가장 큰 근거는 한국도 일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2005년을 정점으로 인구감소가 시작됐는데, 한국도 2019년부터 인구가 줄기 시작한다. 인구증가에 의한 주택수요 증가 및 가격 상승이라는 ‘인구보너스’ 시대가 서서히 끝나가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는 주택 수요가 왕성한 젊은 인구의 감소와 함께 소비성향이 떨어지는 고령인구의 증가를 특징으로 한다.



고령화의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히 주택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동차, 전자, 유통 등 내수시장 모든 분야를 축소해 경제 자체를 쪼그라들게 한다. 일본 20년간 디플레에 빠진 것도 인구구조 변화에 의한 내수시장의 축소와 무관하지 않다. 주택가격은 단기적으로 금리에 가장 민감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인구구조상의 주택수요와 함께 소득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가령 주택을 요구하는 인구가 감소세를 보이더라도 소득이 지속적으로 오르면 더 넓고, 더 좋은 입지의 주택을 요구하는 수요로 주택가격이 오를 수 있다. 소득이 정체하더라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 집값이 급등할 수 있다. 고령화가 주택 수요뿐만 아니라 내수시장 축소로 이어져 전체 경기를 하락시키고 소득수준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에 주택시장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이 인구감소의 충격을 극복하지 못하고 인구감소와 내수침체에 직면한다면 일본식 부동산 장기 침체로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고령화가 극복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선 이민이다. 선진국 대부분이 저출산·고령화를 겪고 있지만, 인구감소로 이어진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이민에 폐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민은 주택가격의 결정적 변수가 되기도 한다. 최근 3년간 캐나다 밴쿠버 집값이 50% 이상 올랐다. 중국인 부자들이 몰려들면서 집값을 올린 것이다. 뉴질랜드 호주 등도 집값 결정요인 중 가장 중요한 변수가 이민이다. 한국은 통일이라는 변수를 갖고 있다는 점도 일본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둘째, 한국은 일본보다 내수시장이 훨씬 좁다 보니 수출의존형 국가다. 일본은 수출의존도가 16%인 반면 우리 경제는 43%나 된다. 내수시장보다는 글로벌시장의 영향이 훨씬 크다는 점에서 일본과 결정적인 차이가 난다. 한국의 주택시장은 고령화보다는 글로벌시장이 더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세계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한다든지, 우리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확 떨어진다면 오히려 인구구조 변화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그 반대도 가능하다.



한국주택시장에 대해 무조건적인 비관론이나 낙관론은 선동에 지나지 않는다. 인구구조는 물론 수출경쟁력, 정부 정책, 글로벌 경제의 변화에 따라 한국주택시장의 미래가 정해질 것이다.

차학봉 조선일보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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