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전쟁 가장 큰 무기는 ‘혁신’



- 애플 CEO에서 물러난 스티브 잡스는 글로벌IT 업계에 혁신만이 승자가 되는 길임을 알려줬다.

조지 오웰의 음산한 예언이 온 세계를 휘감던 1984년 1월22일. 미국 프로풋볼 결승전인 슈퍼볼이 열리는 날이었다. 하지만 훗날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건 슈퍼볼 우승팀이 아니었다. 그날 중계방송 중간에 소개된 컴퓨터 광고 한 편이 두고두고 회자됐다. 애플의 ‘매킨토시’ 광고였다. 그 광고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났다.

“1월24일은 애플컴퓨터가 매킨토시를 소개하는 날입니다. 그때 당신은 왜 우리의 1984년이 조지 오웰의 <1984년>과 다른 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틀 뒤인 1월24일. 예고대로 매킨토시가 출시됐다. 그때까지 컴퓨터 시장의 기본 문법과는 완전히 다른 제품이었다. 명령어 입력 방식을 버리고 아이콘을 누르면서 작업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요즘 상식으로 통하는 ‘그래픽 이용자 인터페이스(GUI)’가 컴퓨터의 기본 문법으로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잡스는 매킨토시로 컴퓨터 시장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잡스는 1970년대 애플1과 애플2를 연이어 성공시키면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매킨토시는 혁신의 진수를 보여준 첫 작품이란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설립한 스티브 잡스의 삶은 기존 통념에 대한 도전과 혁신이란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인문학적 직관과 몽상가적 기질을 바탕으로 상식을 뛰어넘는 제품들을 연이어 선보이면서 정보기술(IT) 업계의 ‘혁신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IT업계의 영원한 ‘아이콘’

잡스에게도 시련의 시간은 있었다. 매킨토시를 내놓은 이듬해인 1985년에 자신이 영입한 존 스컬리의 친위 쿠데타로 애플에서 쫓겨난 것. 애플을 떠난 이후 야심적으로 설립했던 넥스트컴퓨터 역시 실패를 거듭했다. 독불장군식 자세를 버리지 못한 데다 지나치게 고급 제품을 고집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시련 중에도 ‘혁신’에 대한 욕심은 버리지 않았다. 외도 기간 동안 픽사를 통해 ‘토이 스토리’ ‘벅스 라이프’ 등 애니메이션 히트작을 내놓으면서 명성을 높였던 잡스는 1996년말 애플이 넥스트컴퓨터를 인수할 때 특별고문 자격으로 돌아왔다. 이듬해인 1997년 7월엔 CEO 자리를 되찾았다.

두 번째로 애플호의 키를 잡은 잡스는 혁신 아이콘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보여줬다. 첫 작품으로 내놓은 ‘아이맥’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디자인으로 컴퓨터에 대한 통념을 깨뜨렸다.

하지만 진짜 혁신은 2001년 시작됐다. 혁신의 대상은 엉뚱하게도 디지털 음악이었다. 당시 디지털 음악 시장은 불법복제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었다. ‘냅스터’ 때문이었다. 그 시장에서 돈을 번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잡스는 또 통념에 도전했다. CD 음악을 간단하게 MP3 파일로 변환해 주는 ‘아이튠스’를 선보인 데 이어 2001년 10월 ‘아이팟’이란 MP3 플레이어를 내놨다. 디지털 음악 시장을 공략하는 애플의 전략은 특별했다. 다른 회사들과 달리 소프트웨어(아이튠스)를 먼저 내놓은 뒤 하드웨어(아이팟)를 출시하는 전략을 썼다. 이 전략은 이후 아이폰, 아이패드를 아우르는 애플 생태계의 밑거름이 됐다. 이 부분이 ‘잡스표 혁신’의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 

특히 중요한 것은 2003년 4월 선보인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였다. BMG, EMI 등 5대 음반사 음악 20만 곡을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면서 또 다른 시장을 연 때문이다. 아이튠스는 불법복제가 판치던 디지털 음악시장의 문법을 단숨에 바꿔버렸다. 1년 만에 누적 판매량 1억 곡을 돌파한 아이튠스는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판매량을 늘려나갔다. 지난 6월 현재 아이튠스 누적 판매량은 150억 곡을 넘어섰다. 이제 아이튠스는 월마트를 제치고 미국 최대 음반 체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잡스의 혁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7년 6월 ‘아이폰’을 선보이면서 휴대폰 시장의 상식에 도전한 것이다. 아이폰은 깔끔하고 단순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디자인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생태계였다. 앱스토어를 통해 각종 앱들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장의 무게 중심을 통신사에서 이용자들 쪽으로 옮겨놓는 데 성공했다. 물론 그 중심엔 애플이 있었다. 통신시장 자체를 애플의 정원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덕분에 애플은 통신사와의 헤게모니 다툼에서 승리하면서 이동통신 시장을 주도할 수 있게 됐다.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이런 변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스마트폰 시장에 첫 발을 내디딘 애플은 2007년말 미국 시장 점유율을 14.8%까지 끌어 올렸다. 이 수치는 3년 뒤인 지난해 말엔 25.1%로 껑충 뛰어오른다. 출시 3년 만에 스마트폰 최강자로 떠오른 것이다. 

지난해 선보인 ‘아이패드’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제품이다. 아이폰을 통해 위력이 입증된 앱스토어 생태계를 등에 업은 아이패드는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유명무실했던 태블릿 시장을 살려냈다. 덕분에 태블릿 출하량은 내년엔 1억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오는 2016년이면 태블릿 판매량이 PC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쉽게 휴대하고 간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한 잡스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잡스가 얼마나 대단한 경영자인지는 수치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잡스가 복귀하던 1997년 6월 분기에 애플은 5600만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 분기인 지난 6월엔 73억달러의 분기 순익을 기록했다. 순익 규모가 복귀 당시 분기 매출(17억3000만달러)의 4배에 이른다. 5달러 수준에 머물렀던 주가는 370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덕분에 애플은 엑손모빌을 제치고 세계 시가총액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제품에 통찰과 철학을 담아라

하지만 잡스가 IT 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숫자보다 훨씬 더 크다. 그는 늘 기존 상식에 도전했고, 그 도전에 성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인문학과 동양의 선 사상에 심취했던 잡스는 내놓는 제품에 자신의 철학을 담아냈다. 특히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 잡스의 통찰력은 필적할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잡스는 “유명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피카소의 말을 좋아했다. 그는 또 “지금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퍽이 가는 곳으로 달려간다”고 했던 아이스하키 스타 웨인 그레츠키의 말도 좋아했다. 이 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컴퓨터 시장이란 한정된 공간을 벗어났던 잡스의 기본 혁신 철학이 됐다. 그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연이어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 역시 이런 생활 태도 덕분이었다. 우리가 잡스의 삶에서 배워야 할 교훈 역시 바로 그 부분에 있다.

김익현 아이뉴스24 글로벌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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