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구글에게 제대로 한 방 맞은 한국 IT산업이 그로기 상태다. 잘못하다간 KO 당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IT강국이라는 성공신화를 썼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소프트웨어 전문가인 김흥남(56)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한국 IT 아직 늦지 않았다…

  스마트TV로 승부하라”

 “IT는 네트워크-단말기-SW 플랫폼-콘텐츠 등 4단계의 계층으로 구성됩니다. 우리의 네트워크 인프라는 세계 최고입니다. 단말기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고요. 콘텐츠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어요.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 강력한 접착제 역할을 하는 SW 플랫폼이 비어 있어요. 위아래가 연결이 안 되다보니 뿔뿔이 흩어지게 됐고, 잘하던 것마저 못하게 된 거죠.”

김흥남 원장이 내놓은 애플·구글 쇼크에 대한 명쾌한 진단이다. HW와 네트워크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성공신화를 이끌어냈지만 SW의 취약한 경쟁력이 스마트 빅뱅 시대에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HW 부문에만 과도하게 집중하고 SW는 홀대한 결과라는 얘기다.



- 김흥남 원장은 2008년 10㎞에 달하는 선박 내 통신선을 1㎞로 줄이는 선박네트워크통신 개발을 주도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분야에 집중하면 향후 IT시장에서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해법은 당연히 ‘구멍 난 SW 플랫폼을 메우는 것’이다. 네트워크에서 콘텐츠로 이어지는 4단계 IT계층을 모두 아우를 수 있어야 급변하는 IT 환경 속에서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작업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의 강점을 살려 정면 돌파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다만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전 세계가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모바일 SW 플랫폼을 개발해야 합니다.”

그는 우리가 강점을 가진 분야로 스마트TV를 꼽았다. 스마트TV와 관련된 SW 플랫폼을 개발하면 향후 IT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마트TV에선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어요. 세계적인 하드웨어 경쟁력과 유선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게 우리의 경쟁력이죠. 휴대전화를 넘어 TV까지 연결할 수 있는 제3의 플랫폼을 개발하면 다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어요. 서둘러야 합니다. 구글과 애플이 TV까지 넘보고 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TV마저 빼앗길지 모릅니다.”

SW 플랫폼 부재가 제조업 경쟁 약화로 이어져

플랫폼은 컴퓨터의 HW와 SW를 제어해 사용자가 컴퓨터를 쓸 수 있게 해주는 운영체계(OS)를 말한다. 보통 우리가 쓰는 PC의 HW 플랫폼은 인텔, 그리고 SW 플랫폼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다. 모바일에서는 애플이 아이폰의 iOS를,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SW 플랫폼으로 삼았다. 이들은 SW 플랫폼을 기반으로 자사 중심의 공고한 생태계를 구축해 놀라운 속도로 시장을 장악했다.

애플과 구글에 가려져 있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MS가 PC분야의 강점을 기반으로 이용자들에게 익숙한 UI(유저 인터페이스)를 모바일 분야에서도 제공한다면 IT시장이 다시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SW 플랫폼이 없다. 더구나 플랫폼의 부재가 휴대전화뿐 아니라 TV, 나아가서는 자동차 등 전체 제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결국 경쟁력 있는 SW 육성이 향후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관건이 된 것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HW는 잘해왔어요. 반도체나 TV에서는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을 뛰어넘었고요. 휴대전화도 한국 업체들이 잘했어요. 그런데, 스마트폰 바람이 불면서 달라졌어요. 시장 점유율이 5.2%에 불과한 애플의 영업이익이 삼성전자보다 4.5배나 많아요. SW 때문입니다. 그런데 SW 경쟁력 부족이 우리가 지금까지 강세를 보여왔던 HW와 서비스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어요.”

애플과 구글은 SW 플랫폼 파워를 앞세워 전 세계 IT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HW 경쟁력만 보유한 IT업체들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SW 기획능력이 없는 IT업체들은 애플이나 구글이 만든 생태계에 들어가거나 점점 도태될 수밖에 없게 됐다. SW 플랫폼이 없는 삼성전자나 LG전자도 이들의 하청업체 수준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SW 플랫폼이 없다면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는 “SW를 빼고 HW를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며 “SW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SW를 키우는 것이 결국 HW를 키우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SW 플랫폼을 강조하는 것은 결국은 모든 게 그곳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애플이나 구글이 막강한 SW 플랫폼을 구축한 상황에서 우리가 과연 이들을 이길 수 있을까. 그는 세계 1위인 우리나라 조선산업을 예로 들었다.

“한국은 조선강국입니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배 한 척 못 만들던 나라가 지금은 세계 조선업계를 주도하고 있어요. 지금 뒤처졌다고 미래까지 부정적으로 생각할 이유는 없죠.”

전략도 제시했다. 김 원장은 2007~2008년 조선·IT 융복합기술개발 과제를 맡으면서 조선업에 평생 종사한 이에게 “한국이 어떻게 조선강국이 됐냐”고 물었다. 그가 들은 답은 ‘적자생존’이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적는 자만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철저하게 선진 프로세스를 따라가기 위해 배를 만드는 전 과정을 꼼꼼하게 연구하며 기록을 남겼고, 그렇게 오랜 세월 기술이 축적돼 세계 1등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이 SW 버전 1.0은 잘 만들지만 2.0은 결코 성공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은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창의성도 중요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기록해서 지식과 기술을 축적해 나간다면, 그들을 충분히 따라잡고 추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SW산업 육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정부도 삼성·LG 등과 함께 국가대표 SW 플랫폼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먼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선순환의 SW 생태계의 구축이다.

생태계 먼저 조성해야

“SW를 하는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대형 SI 프로젝트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싹쓸이합니다. 실력이 없어도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들이 프로젝트를 헐값에 따내 하청, 재하청을 줍니다. 돈을 못 버니까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고, 그래서 생태계가 무너진 겁니다.”

그는 SW 생태계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정부가 충격요법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SW기업 인증제와 공공 프로젝트 수·발주 시스템의 혁신을 통해 일정 등급을 받은 사업자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실력 없는 사업자는 가차없이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100대 SW기업 중 80여개가 미국 기업입니다. 미국이 이렇게 SW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SW기업 인증제에서 비롯됐습니다. 우리와 같이 한때 소프트웨어 위기를 겪었던 미국은 IT기업이 일정 레벨 이상을 따야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1년에 500억원씩, 20년 동안 1조원을 쏟아부었어요. 인증을 받으면 경쟁사보다 2~3배 돈을 더 버니 기업들이 안 할 수가 없었죠. 그래서 SW산업이 발전했고, 지금은 미국을 따라올 나라가 없게 됐어요.”

그는 “돈을 벌 수 없는 SW 생태계가 전문인력 부족으로, 그리고 이것이 결국 글로벌 SW의 부재로 이어졌다”고 진단하고 “시장과 인력, 기술 중 어느 하나만 집중해선 안되고, 세 가지를 지속적으로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플과 구글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해 성과를 거두기 전까지 국내에서 SW는 찬밥 신세였어요. SW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편견도 있었고요. 좀 아프긴 하지만 이제라도 SW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런 일이기도 합니다. SW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환경도 조성되고, 역량도 강화될 겁니다.”

김흥남 원장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으로는 드문 소프트웨어 전문가다. 서울대에서 전산학을 공부했고 미국 볼(Ball) 주립대와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전산학 석·박사 학위를 땄다. 1983년 과학기술연구원(KIST) 시스템공학연구소를 거쳐 1998년부터 ETRI에서 일하고 있다. ETRI에서는 내장형SW연구팀장, 임베디드SW기술센터장, 혁신위원장, 임베디드SW연구단장, 기획본부장 등을 거쳤다.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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