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상식을 완전히 뒤엎곤 한다. 실버산업이 특히 그렇다.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일본의 실버산업은 성장기를 넘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일본 실버산업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향후 시니어 비즈니스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

‘실버 천국’ 일본의 시니어 비즈니스

실버 상품·서비스 ‘경계 없다’

황금알 낳는 산업으로 급성장




장수국가 일본은 고령사회 전형이다. 평균수명은 83세다(2009년). 1억2700만 인구 중 65세 이상이 2900만명(22%)에 달한다. 일본 노인은 돈까지 많다. 일본 가계 금융자산(1453조 엔) 중 62%인 약 900조 엔을 65세 이상이 보유했다(2010년 3월). 고령자 개별세대 평균자산은 5679만 엔이다(2004년). 연금 덕분에 은퇴 후에도 수입은 지속된다. 고령부부·무직세대의 월평균 연금수입은 21만 엔에 육박한다. 시간까지 넘쳐난다. 은퇴 후 8만 시간이 도래한다. 덕분에 실버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산업으로 이해된다. 고령인구가 소비시장의 주력타깃으로 부상할 것이란 기대감이다. 2015년 50세 이상 소비지출이 127조 엔에 달할 것이란 보고서도 나왔다(電通). 최소 100조 엔 이상이 중론이다.



키워드 ‘고령화’는 일종의 블루오션으로 이해된다. 고령인구의 관심사는 3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건강수요다. 다만 내각부 조사(2002년)에서는 60대 이상의 80%가 건강에 자신감을 나타냈다. 개호·복지 등에 한정된 제품·서비스가 수요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의미하며 건강한 소비활동도 얼마든 가능하다는 메시지다. 또 이들의 주머니를 열자면 삶의 보람과 관련된 관심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은 생활불안 해소다. 가령 부동산에 편중된 고령인구의 자산구조는 장수 리스크에 노출됨을 뜻해 적극적인 소비활성화를 가로막는다.  



실버산업은 신조어도 많이 만들어냈다. 일본 재계가 만들어낸 ‘3F’가 대표적이다. 3F란 Fun(여행, 골프, 자동차, 홈시어터, 레저, 식도락, 패션), Family(재건축, 인테리어, 전원주택, 별장, 애완동물), Future(웰빙, 자산운용, 컴퓨터 및 어학 등의 평생학습)다. 향후 성장성이 가장 높은 업종으로 각광받는다.



‘욘토라’란 말도 있다. 이는 다양한 자기계발 사업부문인 Travel, Drive, Drama, Try가 모두 토라(トラ)로 읽히는 데서 유래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욘토라로 요약되는 4대 사업부문은 결국 고령인구의 소비취향과 결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존에 위기감을 느끼는 업체라면 필히 관심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제조부문, 고령고객 눈높이는 생존기반

일본은 고령화 선진국답게 다양한 경험·노하우로 무장한 노인대상 상품·서비스가 가장 빠르고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고령고객의 신체특징을 반영했다면 기본적으로 실버상품·서비스다. 실버시장의 핵심은 ‘경계는 없다’(Barrier Free)로 요약된다. 신체·지능적인 가령(加齡)한계를 커버하는 콘셉트이면 실버시장에 포함된다. 악력저하(스위치·손잡이 등), 근력저하(휠체어, 로봇 등), 시력저하(조명기구 등), 지각능력(가전제품 등) 등이 그렇다. 상장기업(도쿄시장 1부) 중 70%가 관련부서를 설치했을 정도로 실버품목은 필수과제로 정착됐다. 선두주자는 역시 의료·개호(간호)분야지만 광의의 시장개념을 적용할 경우 전체 산업에 실버개념이 반영됐다.





또 하나 중대개념은 ‘접근 가능한 디자인’(AD, Accessible Design)이다. 장애·연령에 무관하게 누구든 사용할 수 있는 공용디자인을 의미하는 사고방식이다. 가령 휠체어가 통과할 수 있는 넓고 큰 출입구라든가 휠체어에 앉은 채로 요리가 가능한 낮은 조리대 등이 대표적이다. 생활주변에선 영상기기·현금인출기·엘리베이터 등에 AD개념이 적용됐다. 일본의 AD 보급비율은 최고수준으로 시장규모는 3조3000억 달러(2007년)에 육박한다. 



실버시장을 노린 주요 제조업체의 행보는 구체적이다. 미쓰비시전기는 2010년 복잡한 가전제품의 사용법을 향상시킨 ‘라쿠라쿠어시스트’라는 기능이 부착된 가전을 내놨다. 액정TV·에어컨·냉장고 등 가전제품에 이 기능을 탑재해 고령자들이 손쉽게 사용하도록 배려했다. 실제 개발단계에서 70세 고령고객에 눈높이를 맞춘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는 향후 전체 제품 하위기종에까지 이를 확대·적용할 계획이다.



자동차업계도 적극적인 행보에 가세했다. 토요타는 일찌감치 고령화 시대에 발맞춘 ‘복지차량’에 주목했다. 토요타는 1970년대부터 복지차량을 개발해 일찍부터 관련기술 및 노하우를 집적했다. 복지차량 전용쇼룸을 연이어 오픈, 고객층의 다양화에 나서고 있다.



게임업체도 고령인구 소비수요를 일찌감치 읽어냈다. 닌텐도가 고령 성인층을 타깃으로 내놓은 게임팩 ‘뇌를 훈련시키는 어른들의 DS트레이닝’이 대표적이다. 두뇌활성화와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돌풍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제품 업그레이드를 통해 액정을 키우고 글자를 확대시켜 고령수요에 부응했다. 



부자노인이 많은 까닭에 금융부문도 고령자를 상대로 한 금융상품·서비스 개발에 한창이다. 선두주자는 역시 연금 쪽이다. 또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 예·적금과 우편저축 등이 가시권에 든다. 동시에 적극적인 자산운용 지향수요도 상당하다.



금융부문, 상속 등 잠재고객 무궁무진

금융시장에서 돋보이는 실버상품은 ‘매월분배형펀드’다. 이 펀드는 저금리·고령화에 부합하고자 1990년대 중후반 출시 이후 필수자산으로 떠올랐다. 개인투자자가 매입가능(추가공모)한 펀드 중 60%까지 매월분배형펀드가 장악했다. 순자산은 2000년 7000억 엔대에서 최근 30조 엔대로 불어났다. 이 펀드는 매달 분배금·원금을 지급해주는 일명 용돈펀드다. 500만 엔 투자 때 매월분배금은 약 2만5000엔 정도다. 크진 않아도 연금보완으론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금융관련 실버산업은 ‘상속시장’이다. 현재 4060세대 자녀는 8090세대의 부모로부터 천문학적인 상속수혜가 예상된다. 그 대표집단이 광의의 단카이(團塊)세대로 1945~54년생까지 포괄하면 2000만명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유산을 포함한 상속시장 타깃은 50대에 집중된다. 상속세의 경감대책과 신고대행 등이 포함된 상속재산 운영대행이 대표적이다. 가업이 있다면 사업승계·양도대책을 조언하는 회사도 많다.



유산분쟁을 막고 효과적인 대물림을 위해 유언장 작성·보관 대행서비스도 성황 중이다. 상속재산의 상당부분이 부동산이란 점에서 이를 활용하는 정보제공업도 인기다. NPO인 ‘상속지원네트’에 따르면 연 4만 건 정도가 상속대상이다. 주요 은행은 유언장 집행 등을 대신하는 유언신탁과 함께 주로 상속에 관한 상품·서비스 강화에 역점을 둔다. 신탁은행의 유언장보관·유산정리 수탁건수는 2009년 9월 현재 4만 건에 육박한다. 6년 전보다 2배나 늘어났다. 현재 상속시장 전체규모는 50조 엔대지만 2020년엔 약 140조 엔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간호서비스, 가장 유망한 분야

간호로 번역되는 개호산업은 가장 현실적인 유망서비스 중 하나다. 직접적인 당면수요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자금지원(개호보험) 대상의 요(要)개호 인정규모는 460만명을 넘어섰다(2008년). 잠재수요도 많다. 노인홈 입주노인을 포함해 65세 이상 단독가구는 남성(130만명)·여성(370만명) 등 500만명에 달한다. 개호보험 세출액은 2000년 3조 엔대 중반에서 이젠(2008년) 7조 엔을 넘겼다. 개호비용은 이미 천문학적이다. 개호수준과 가족상황 등에 따라 개호비용은 천차만별인데 많게는 수억 엔대에 달하기도 한다. 민간운영 개호시설(유료 노인홈)은 최소 월 20만 엔 이상이 일반적이다. 



고령인구의 최대화두는 건강한 노후생활이다. 이를 상품·서비스로 변신시킨 아이디어는 십중팔구 히트상품 반열에 오른다. 건강성 식음료가 매년 히트상품에 꼽히는 게 대표적이다. 건강보조식품(Supplement)도 영원한 스테디셀러다. ‘토쿠호(특정보건식품)’까지 포함해 시장규모만 1조 엔대를 가뿐히 넘긴다. 영양기능식품까지 넣으면 2조~3조 엔대까지 보는 시각도 있다. 노화방지·피로회복 등 아이템도 무궁무진하다.



대기업도 관련시장에 도전 중이다. 식품부터 화학, 약품, 유통업계까지 앞 다퉈 건강보조식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최근 들어선 전혀 무관한 이종업종에서까지 해당업계에 이름을 올리려는 움직임이 꾸준하다. 건강보조식품은 1997년 이후 연평균 9~10%씩 급성장 중이다.



건강한 노인인구가 삶을 즐기려는 건 당연한 욕구다. 게다가 평균적으로 돈까지 많으니 여행수요가 유망모델로 뜨는 건 당연지사다. ‘구루메 투어’로 불리며 지방여행과 현지음식을 엮어 만든 2~3일짜리 여행상품의 인기몰이가 대표적이다. 



과거 핵심고객이던 젊은이들의 수요는 줄어든 대신 여유로운 50대 이상의 여행참가율이 높다. 다이와(大和)종합연구소에 따르면 국내숙박 여행자 중 절반이 50대 이상이다.



하토버스는 고령고객에 발맞춘 상품기획력으로 성공을 거뒀다. ‘쇼와 명가이드와 가는 도쿄반일 코스’는 참신한 기획이 낳은 대표적인 성공작이다. 퇴직한 50대 이상 여성 가이드의 안내로 250엔만 받고 과거향수에 빠지려는 고령고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600명 정원에 5만명 넘게 신청했을 정도다.



여세를 몰아 직후 ‘이 노래 저 노래 도쿄드라이브’라는 상품도 내놓았다. 추억명소를 먼저 고른 뒤 여기에 어울리는 노래를 함께 온 여행자들과 부르도록 한 기획코스였다. 반향은 예상 외였다. 발매 30분 만에 매진됐다. 

소매·유통부문, 고령자 지갑공략 열심

‘구매난민’이란 말이 있다. 원하는 물건을 제때 사지 못하는 경우다. 대형화·교외화로 쇼핑 근접성이 확연히 떨어진 고령고객이 주요 피해자다.

이에 따라 최근 구매난민을 일종의 틈새시장으로 보고 도전장을 던지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택배업체인 야마토(ヤマト)운수의 경우 정보통신단말기를 활용해 지역 슈퍼와 연계해 구매를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했다.



도쿄의 다이신 백화점은 디플레·소비불황으로 유통업체 부진이 이어지자 고령고객을 위해 지역밀착형의 세밀한 서비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쇼핑이 끝나면 남자직원이 짐을 들어주며 택시정류장까지 에스코트를 해준다. 방문이 힘든 고객을 위한 무료송영 버스운영도 명성이 높다.



구매대행도 새로운 창업이슈로 떠올랐다. 건당 수수료를 받고 원하는 물건을 대신 사주거나 집안청소·전구교체 등을 해주고 용역비용을 받는 게 그렇다.



편의점업계도 고령고객에 공을 들인다. 선두주자는 로손이다. 로손은 노인들이 동네편의점을 선호한다는 점에 착안해 노인 친화적인 체인점 숫자를 늘리고 있다. 고령고객을 위한 주문·배달시스템을 완비한 세븐일레븐의 차별화도 먹혀들었다. 특히 세븐일레븐은 고령자를 위한 간호 사업까지 모색 중이다.



일본의 경우 인구구조 변화로 수혜를 입을 최대히트 소비항목은 주택개조로 나타났다. 일본의 주거형태는 단독주택이 일반적이다. 단독주택은 대부분 고령가구가 거주한다. 여기에 주목한 아이디어가 최근 쏟아지는 추세다. 특히 노인이 생활하기에 불편한 문턱을 없애거나 손잡이·난간을 설치하고 개호공간을 마련하는 등이 대표적인 조치다. 이도저도 아니면 아예 노인특성을 고려해 만든 전문주택에 들어가는 경우도 적잖다. 대표적인 게 고령자 전용 임대주택이다.



100조 엔의 거대산업으로 평가된 실버시장의 중간성적은 ‘기대 이하’다. 무엇보다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가계조사(총무성)를 보면 단카이 세대 퇴직 후(2009년) 60대의 세대당 소비지출은 단카이 세대 퇴직 이전(2005년)보다 되레 6% 줄었다. 이유는 은퇴 이후의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취약한 연금제도도 불안감을 키웠다.



기업은 다양한 고객 입맛에 맞는 정밀한 성향분석에 실패했다. 고령고객은 다양·복합적이다. 사회보장과 개호 등이 필요한 약자인식과 해외여행 등 돈과 시간이 넘치는 윤택한 긍정론이 상존한다. 경제력과 관련해선 고령저축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버시장 잠재력은 여전히 파워풀하다. 노인수요는 없는 게 아니라 단지 잠자고 있을 뿐이란 지적이다. 학계는 고령자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상품개발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고령사회에 걸맞은 ‘실버 이노베이션’에 중점적인 방향성이 맞춰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Tip 판단미스에 빠진 실버산업 명암



백화점·방송국, 20대 고객 중시하다 고령고객 놓쳐



실버시장은 의료·개호 등 특정분야에선 소비가 확인됐다. 반면 소매·서비스 등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 공급 차원의 판단 미스 때문이다. 가령 백화점 주요고객은 단카이를 비롯한 고령인구다. 유명·지방백화점일수록 그 비율이 높다. 그런데 핵심고객은 방치하고 고객의 연령 인하를 위한 마케팅에 주력해 스스로 무덤을 팠다. 백화점을 떠나는 ‘돈 없는’ 젊은 고객을 잡으려다 ‘돈 되는’ 고령고객을 놓친 셈이다.



방송(TV업계)사도 마찬가지다. 현재 TV 시청자의 압도적 그룹은 고령세대다. 20대의 일평균 TV 시청시간은 2시간 정도인데 60대는 4시간을 넘긴다는 통계도 있다(NHK방송문화연구소). 인구변화를 보면 앞으로는 고령인구가 절대고객이 될 게 확실시된다. 그런데 TV업계는 20대 여성을 가장 중시한다. 광고주도 젊은 층의 소비욕구 자극을 위해 거액의 광고비를 지출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고령그룹에게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프로그램만이 유행에 둔감해지는 젊은 시청자를 대체할 유력한 방법이란 의견이 많다.



내구재 소비전망은 명암이 갈린다. 고령화시대 소비전망이 가장 밝은 품목은 에어컨·스토브 등 냉난방용 기구다. 고령자의 경우 직장생활을 하는 현역세대와 달리 집안에 장시간 있기에 그만큼 냉난방 관련지출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반면 자동차 관련비용은 감소추세다. 고령화로 운전이 힘든 인구가 그만큼 늘어나서다. 다만 운전면허를 지닌 세대가 고령자로 진입하는 데다 최근 관련비용의 증가항목도 존재하고 있는 것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냉장고 등 가사용 내구재는 감소추세가 완만하지만 TV·컴퓨터 등 교양 오락용 내구재와 침대 등 일반가구 소비지출은 대폭 저하될 걸로 예상된다.

 

고령가구의 경우 전반적으로 식비 지출은 줄이는 경향이 강하다. 세부적으로 보면 식비항목 중 신선과일이 고령사회의 히트상품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건 줄여도 신선과일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아서다. 반찬 중에선 육류부진 속 어류호조가 대조적이다. 다만 육류·어류의 개별선호도는 출생연도·고향·식생활 등에 좌우된다. 다른 실태조사에선 어류 소비도 감소 중인 걸로 확인된다. 쌀과 빵을 비교하면 빵이 유리하다. 학교급식에서 빵을 먹어본 세대가 최근 고령인구에 합류하고 있어서다. 휴대전화·인터넷 요금 등의 지출비중은 확연히 증가세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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