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디트로이트 빅3의 몰락은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지각 변동을 촉발하는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르다.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제휴 협상을 계기로 새로운 질서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다. 일부에서는 1998년 독일 다임러와 미국 크라이슬러 간 세기의 합병을 떠올리며 또 다른 인수합병의 물결이 일어 자동차 업계의 지도를 바꿔 놓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트렌드1 - 미국 ‘빅3’몰락과 인수합병 지도

기술력 갖춘 메이커 중심 재편 된다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 국장

자동차 산업은 탄생 이래 합병과 통합의 역사를 계속해 왔다. 합병과 통합이 처음으로 극성을 부렸던 것은 1920년대와 1930년대로 각 나라의 국내 기업들이 서로 뭉치는 형태였다. 그래서 무려 320개가 넘는 자동차 제조회사가 있었던 미국이 오늘날의 빅3로 규모화를 추구한 것도 끝없는 합병과 통합의 결과다. 빅3라고 하지만 브랜드로 따지면 20여 개에 달했다. 그것은 규모의 경제라는 말로 요약되었고 이후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은 서로에게 궁합이 맞는 상대와 짝짓기를 하려고 애를 써왔다. 그런 움직임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었던 것이 1998년 독일 다임러벤츠와 미국 크라이슬러의 인수합병으로 당시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듬해에는 르노와 닛산이 자본제휴를 발표해 세계 자동차 산업이 GM, 도요타, 포드, 폴크스바겐, 다임러크라이슬러, 르노닛산 등 6대 그룹과 혼다, BMW, 현대·기아차 등 자국 자본에 의한 회사라고 하는 형태의 모양새가 갖춰졌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발생한 사건이 있었다. 1994년 독일 BMW가 영국 로버를 인수했다. 하지만 1997년 BMW가 상징적인 액수인 10파운드가량의 ‘푼돈’을 받고 로버를 매각하면서 실패로 귀결됐다. 아이러니하게 BMW가 로버를 포기한 지 바로 1년 후 다임러벤츠는 크라이슬러와 합병을 했다. BMW가 겪고 있던 고초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아서였던지 프리미엄 브랜드와 양산 브랜드의 합병은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뭉쳤다. 하지만 다임러크라이슬러가 2007년 5월14일(현지 시간) 미국 크라이슬러그룹의 주식 80.1% 및 크라이슬러 관련 금융 서비스 회사를 55억유로(74억1000만달러)에 미국 투자회사(국내에서는 사모펀드라고 하고 있다) 서베러스(Cerberus) 캐피탈 매니지먼트(CBS. UL)에 매각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또 하나의 합병이 실패로 끝났다.

그렇게 해서 자동차 산업은 이때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지도를 완성했다. GM과 도요타, 포드, 폴크스바겐, 르노닛산, 혼다, 현대·기아차 등 양산 브랜드와 BMW, 다임러(메르세데스-벤츠) 등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각자의 길을 가는 쪽으로 정리됐다.

미국발 금융위기 빅3 초토화… 망한 피아트가 부활한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디트로이트 빅3가 초토화되면서 새로운 지도를 그리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이탈리아의 피아트를 중심으로 한 인수합병 논의다. 피아트는 1998년 망했던 회사다. 살아남기 위해 당시 피아트를 미국의 GM이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2004년 GM은 위약금 20억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면서 계약을 파기해 버렸다. GM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했을 때의 금액이 5억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금액이다. 합병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고가 싹 트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GM은 르노닛산그룹과의 제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역시 이익보다는 손해가 많다는 결론을 내리고 없었던 일로 했다. 그런 과정에서 20세기 말 많은 전문가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규모의 경제 논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만고의 진리가 모든 경우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BMW는 로버를 떼 낸 이후 일취월장 발전을 거듭해 갔으며 메르세데스-벤츠도 크라이슬러를 분리시킨 후 재정 상태가 오히려 좋아졌다. 그래서 최근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제휴, 오펠 등의 인수합병이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특히 피아트는 기술력에 한계가 있다. GM과 완전 결별 후 개발도상국으로 눈을 돌려 수익성을 찾기는 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갖추고 있지 못하다. 크라이슬러와 제휴하기로 했지만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서로 당장에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은 판매 네트워크 정도다. 개발 생산과정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조건이 갖추어졌다고 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 성공을 확신해 추진되었던 모든 이국 간의 합병은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점이다.

현재의 문제는 인수합병이 아니다. 자동차 산업 본질에 대해 되짚어 볼 때다. 양산 브랜드의 대명사인 미국 디트로이트 빅3가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GM은 GM대우를 제외한 그들이 인수했던 모든 브랜드를 내놓았다.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야 미국 발 금융위기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인한 유가 급등이 도화선이었다. 부시 정부는 석유 산업에는 떼돈을 벌게 했지만 자동차 산업을 무너트리는 잘못을 저지른 것이다. 그로 인해 미국 경제가 뿌리째 흔들렸고 그 여파로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던 도요타마저도 견디지 못하고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들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판매 하락을 겪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자동차의 금융산업화가 ‘화근’

그렇다면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을 보유한 미국의 빅3가 몰락하고 그 여파가 전 세계에 미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제조업의 대명사였던 자동차 산업이 금융산업으로 변질된 데 있다. 자동차 산업은 미국에서 할부금융이라는 것을 도입하면서부터 금융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한 술 더 떠 은행들과 결탁해 돈 장사에 맛을 들이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재테크에 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돼 버린 것이다. 모든 기업에서 CFO(Chief Financial Officer)라는 직책의 비중이 커졌다. 그들이 하는 일은 회사의 재무상태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선물환(헤지) 등의 거래를 통해 문서상의 이익을 만들어 내는 데 혈안이 됐다. GM대우의 예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2008년 GM대우는 26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당초 예상했던 환율이 폭락한 결과 2조원이 넘는 손실을 기록했고 그로 인해 유동성이 흔들리며 부도 직전에 몰리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자동차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서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메이커와 그렇지 못한 메이커로 구분되어 가고 있다. 금융산업화의 대명사 격인 미국 디트로이트 빅3는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제조업은 재테크 산업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다. 대신 ‘자체 자본’과 ‘자체 기술력’으로 자동차를 개발하고 생산할 수 있으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메이커들로 새롭게 정리되어 가고 있다. 현재 이 기준을 충족한 업체로는 독일의 폴크스바겐아우디그룹과 BMW, 메르세데스-벤츠,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기아차그룹 정도다. 르노닛산 연합도 서로 다른 나라 메이커끼리 연합해 생존하고 있지만 자본이 섞여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프랑스의 PSA푸조시트로엥도 자생하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진다.

다만 중국이라는 변수는 새로운 관점에서 조명해야 한다. 현재 미국 빅3가 매물로 내 놓은 브랜드만도 10여 개에 달한다. 이들 모두를 중국 업체들이 인수한다면 과거 일본이나 한국의 자동차 회사들이 해외 업체들로부터 기술을 사들이거나 도용했던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마인드가 부족한 중국 기업들이 자본만을 앞세워 기존 브랜드들을 싹쓸이 한다면 질서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15억 명이라는 시장은 기존 관점의 모든 예측을 무색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불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그 거대한 시장을 어떤 방법으로 공략하느냐가 우선이다. 장기적으로는 ‘Made by China’ 제품이 전 세계를 주름 잡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트렌드2 - 현대·기아차의 급부상

품질 향상·감동 마케팅 본격가동


자동차 본고장 미국 시장 사로잡아

이창희 기자 twin92@chosun.com

현대·기아차는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미국에 28만7302대의 자동차를 팔았다. 작년 동기보다 7.4% 줄었지만 미국 전체 자동차 시장이 36.5% 급감한 것에 비하면 선방한 셈이다. 이에 따라 미국 시장의 점유율도 지난해 4%선에서 7.3%까지 올라갔다. 여기엔 1998년 시작된 ‘10년 & 10만 마일 무상보증 수리제도’(이하 ‘10-10 보증수리’)와 올해 실시된 ‘HMA(현대차미국판매법인)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이 주효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불호령 같은 지시로 시작된  ‘10-10 보증수리’는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당시 내부 반대자들이 걱정했던 무상보증 수리비용의 폭증은 발생하지 않았다. 현대차가 매년 무상보증 수리를 위해 쌓는 판매보증충당부채는 2002~2004년 매년 1조원을 넘어 매출액 대비 4.5~5.7%에 달했지만 2005~2007년엔 1%대(2000억~3000여억원대)로 낮아졌다. 작년엔 환율 상승으로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절반 가까이 떨어져 2.4%(7820억원)로 다소 높아졌을 뿐이다.

이는 품질이 확연하게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정 회장은 ‘10-10 보증수리’실시 후 품질 경영에 박차를 가했다.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서비스(1999년3월 현대차에 합병)를 경영해 자동차 품질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 회장은 무상기간 중 수리하러 들어오는 자동차들의 근본원인을 낱낱이 따져 철저하게 책임을 물었다. 그러자 자동차 개발 및 설계를 담당하는 연구소부터 부품업체, 생산라인 등에 있는 전 직원들이 바짝 긴장, 품질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이다. 실제로 무상기간 중 보증수리비용은 2005년 매출액의 1.4%에서 작년 1.2%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올해 실시된 어슈어런스 및 플러스 프로그램은 미국인들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현대·기아차 구매 후 1년 내 실직 또는 건강 상의 이유로 차를 운영하기 힘들 때 반납이 가능한 것은 물론 3개월 동안 할부금 또는 리스금을 대납해 주는 제도다. 미국인들이 다시 현대·기아차로 몰려들자 당황한 미국의 빅3들은 현대·기아차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품질 향상에다 감성까지 자극한 현대·기아차에게 주도권을 뺏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캔(깡통)’이라며 홀대를 받았던 현대차(당시 포니)로선 눈부신 발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대·기아차의 자동차 판매 대수는 1999년 206만9280대에서 2008년 418만2098대로 100% 이상 늘어났다. 10년간 누적 순익도 10조원을 넘었다.

채영석 글로벌오토뉴스 국장 , 이창희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