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그룹은 전 세계에 크게 세 곳의 생산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의 진해와 부산, 유럽, 그리고 중국 다롄 등이 그것이다. <이코노미플러스>는 이 가운데 STX가 해외에 처음으로 건설하는 조선 생산거점인 STX다롄의 조선해양 생산기지를 둘러봤다. 이곳은 STX가 M&A뿐만 아니라 스스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가는 역량을 지닌 조선그룹임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글로벌 조선왕국’ 향한 전초기지…

 공장 증설 속 선박 건조 ‘속도전’

7월13일 오전 10시경, 기자는 중국 동북부 랴오닝 성(遼寧省)의 다롄(大蓮) 공항을 나서고 있었다. 국내 진해·부산 조선소, 유럽과 함께 STX그룹의 글로벌 3대 생산거점 중 하나인 STX다롄 조선해양 생산기지에 가는 참이었다.

공항에서 기지가 있는 창싱다오(長興島) 섬으로 향하는 두 시간 동안 차창 밖에서는 한가로운 농촌과 건물을 짓는 공사 현장이 번갈아 나타났다. 창싱다오에 들어서서 STX조선해양 생산기지에 가까워질수록 제법 높은 빌딩들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났다. 창싱다오 대로변에 한글 간판을 단 식당들도 간간이 보였다.

다롄과 센양을 잇는 센다 고속도로에서 창싱다오로 들어가는 6차선 주도로는 중국 정부가 STX를 위해서 만들어 준 것이다. 허허벌판이던 창싱다오는 STX가 들어오면서 개발이 시작됐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상권이 형성되고, 빌딩도 들어섰다. 조선소로 가는 길목에는 STX 진출 이후에 중국 현지인들이 지은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들과 아직 공사에 한창인 현장이 자주 눈에 띄었다.

“창싱다오에서는 차가 다가와도 사람들이 잘 비키지 않아요. 워낙 시골이라 STX가 오기 전에는 도로가 없었기 때문에 차를 잘 모르는 거죠. STX 진출 후에 새로 닦인 길이 많지요.” 조선족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창싱다오 곳곳에서는 ‘STX’ 로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STX그룹 로고와 함께 ‘꿈을 찾아 세계로’, ‘안전발전(安全發展), 국태민안(國泰民安)’ 등의 표어가 적힌 깃발들이 가로등에 부착되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는 STX 로고가 부착된 작업복을 입은 엔지니어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조선해양 생산기지를 출퇴근하는 STX 현지 직원용 통근버스 행렬은 이 지역 명물이 됐다. STX는 창싱다오에 일자리와 경제 효과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아침저녁으로 흥미로운 볼거리까지 제공한 셈이다. 200여 대 가량의 STX 통근버스들이 줄지어 달리는 모습은 이 지역 경제에 든든한 힘이자, 매년 쭉쭉 뻗어나가는 STX의 성장가도와도 닮아 보였다.

창밖의 풍경들을 보는 사이 어느덧 기지에 도착했다. STX다롄 기지에는 1300여 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한국인 500여 명과 중국인 1200여 명이 어울려 일하고 있다. 한국인 직원들은 대부분 중국어가 유창했다.

2단계 공사, 공정률 75%

선박 제작 및 블록, 엔진, 부품 및 기자재 등 조선 관련 전 부문을 보유한 조선그룹답게 기지는 하나의 거대한 컨베이어벨트처럼 설계되어 있다. 선박용 강재를 실은 선박이 들어오면 이를 받아 강재 하역장 양쪽에 자리 잡은 선박·블록 제조 공간과 해양 구조물 생산 공간으로 강재를 나눠 보내게 된다. 그 뒤로 기초 소재, 조선 기자재, 엔진 조립 및 시운전을 하는 공장을 배치했다.

아직 기지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얼추 완공이 된 모습이었다. STX다롄 기지는 7월 현재 선박 제조에 필요한 기본 1단계 공사를 마치고, 해양 구조물 등 오프쇼어(Off Shore) 부문에 필요한 2단계 공사가 75% 정도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올 연말에 2단계 공사를 완료하는 게 목표다.

STX는 2007년 3월에 다롄 기지 착공 후 공장 건설과 선박 건조를 함께 진행하며 ‘싸우며 건설하기’ 방식의 속도전을 펼쳤다. 착공 다음해인 2008년 4월에 스틸 커팅(선박용 강재 절단)에 들어갔고, 그 해 12월, 드디어 ‘메이드 인 다롄’의 첫 선박을 진수하고 올해 4월에 선주에게 인도했다.

550만㎡에 이르는 거대한 조선소 곳곳에는 골리앗 크레인들 사이에서 몇몇 선박들이 형태를 갖춰가는 중이었다. 2~3주 후에 진수할 18만 톤급 선박도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다. 절반을 여기서 만들어 진해로 보낼 예정이라 했다. 아직은 국내와 다롄의 협업만 이뤄지고 있지만 STX그룹은 언젠가 기술이 쌓이면 유럽의 조선소와도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STX그룹은 다롄 기지를 벌크선, 자동차 운반선, 중형 컨테이너선, 탱커(유조선) 등의 생산 중심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국내 진해 조선소는 LNG선, VLCC(초대형 유조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 대형 선박 건조와 연구개발(R&D)센터로, 8개국 18개 조선소를 보유 중인 STX유럽은 크루즈선, 특수선, 해양플랜트, 페리선 등 고부가 선박 생산 중심지로 역할을 나눴다.

수주 가뭄이지만 기존 일감에 현장은 바빠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선박 발주가 줄어들면서 지금 조선업계는 수주 가뭄을 겪고 있다. 게다가 금융위기 이후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진 선주들이 선박의 최종 인수시기를 자꾸 늦추려는 추세라 조선업계는 속앓이 중이다. 제조사에서 주문 받은 물건을 다 만들었는데도 사갈 사람이 물건 값이 모자란다며 가져갈 날짜를 차일피일 미루는 셈. STX그룹은 물론 전 세계 모든 조선업체들의 공통된 근심거리다.

전문가들은 선주들이 이미 발주한 선박을 취소하는 최악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정광석 STX다롄 사장은 “중소형 조선사들의 경우 발주 취소 우려가 없는 건 아니지만, STX를 비롯한 대형사들은 자금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은 상위급 선주들이 많아 인도 지연 정도에 그칠 것”이라며 외부의 지나친 우려를 경계했다.

시황 자체는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은 뚝딱뚝딱 활기찼다. STX는 현재 2년6개월~3년가량의 일감을 보유하고 있는 터, 선박 발주는 뜸해졌어도 거대한 기계와 강재 등이 어우러진 현장에서 직원들은 연신 구슬땀을 훔쳐 내며 배 만들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여기서는 용접기만 빼놓고, 배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기지에서 생산할 수 있어요. 전 세계를 통틀어서도 조선과, 조선에 필요한 엔진, 부품 등 관련 공장들이 이렇게 한 데 모여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곳은 STX다롄 기지뿐일 겁니다.”

이상훈 STX다롄 협력지원팀장은 뿌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맨 벌판에 조그만 가건물로 시작했는데, 이렇게 완성한 선박도 내보낼 정도로 기지가 자리를 잡아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STX 다롄 기지는 사실 STX그룹만이 아니라 세계 조선사에서도 의미 있는 현장이다. 이곳은 세계 최대 규모인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660만㎡·약 200만 평) 못지않은 550만㎡(약 170만 평)의 당당한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조선 분야에서 수직계열을 이룬 STX그룹의 특성을 살린 일관 생산 조선소라는 것이 특징이다. 주조, 단조 등 기초 소재 가공에서 엔진 조립, 블록 제작 등 선박 건조를 위한 모든 공정을 STX그룹 계열사들의 힘으로 해낸다.

STX 직원들은 역사의 현장을 만드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스트레스성 장염에, 위궤양, 위염을 호소했던 이들도 적지 않았단다. 그렇게 고생하며 이룩한 결과물이 어느새 이렇게 거대한 위용을 뽐내고 있으니, 기지에 대한 그들의 애정 표현은 결코 빈말로 들리지 않았다.

속도전 궁합이 잘 맞은 STX와 다롄

기지가 자리 잡은 창싱다오는 서울 여의도의 약 30배 크기로 발해만 동북부 연안에 있다. 이곳은 천혜의 항구이자 발해만 연안 도시를 연결하는 중심지이지만, 동시에 해삼으로도 이름난 곳이다. 다롄 조선소 앞바다도 원래 해삼 양식장이었다. 그러나 STX가 투자를 결정한 후 다롄 시와 랴오닝 성은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이곳의 조선해양 생산기지로의 변신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2006년 9월에 다롄 투자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3주 후인 10월부터 다롄 시는 매일 200여 대의 덤프트럭을 동원해 흙을 실어 나르며 부지를 매립해줬다. 대개는 투자를 하는 기업이 부지 매립까지 다 해야 하지만, 다롄 시는 STX의 투자에 대한 답례로 매립이라는 ‘특별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STX그룹은 원래 다롄의 창싱다오와 함께 산둥 반도에 있는 칭타오를 조선해양 생산기지 후보로 놓고 저울질을 했다. 칭타오도 괜찮긴 했지만 중국 정부가 적극적인 육성의지를 갖고 있는 동북3성의 미래를 생각할 때 다롄이 더 나을 것으로 보고 STX는 다롄 행을 결정했다. 다롄이 속한 랴오닝 성이 STX 유치에 팔을 걷어붙인 적극성도 늘 속도전으로 달리는 STX그룹과 잘 맞는 궁합이었다.

샤더런(夏德仁) 다롄 시장은 “STX의 다롄 진출로 STX와 다롄 시가 윈윈의 결과를 얻었다”며 “STX의 유치로 다롄이 중국 최대 조선기지로 거듭난다는 목표 달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STX 다롄 기지 인근에는 벌써 중국의 다른 조선소들이 하나둘 터를 잡고 있다. 기지 근처에는 중국의 다롄 조선, 싱가포르 IMC 등의 조선업체들이 조선소 건설에 착수했고, 중국의 조선기자재업체들도 중국 조선업체들을 따라 입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tip  STX가 중국 다롄의 창싱다오로 간 까닭은?

STX그룹은 창싱다오에 기지를 건설한 이유로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깝고, 인건비, 부지 활용성, 생산 효율성 등에서 이점이 있다’는 점을 든다. 중국 현지 생산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을 활용하면 국내 조선소와 유무형의 시너지가 막대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놓는다.

기후도 조선소 입지로는 좋다고 한다. 창싱다오는 사실 바람이 꽤나 강하다. 이곳의 강한 겨울바람 앞에서는 웬만한 성인여자가 걷다가 날아갈 정도. 국내에서 겪은 수준의 강풍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강점은 이 같은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설명이다.

“배를 만들려면 강수량이 적은 곳이 유리한데, 이곳은 건조하고, 여름철에 우리나라 같은 태풍이나 장마도 없다”며 “겨울에 바람이 강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조선소 입지로 여기만한 곳이 없다”고 정광석 STX다롄 사장은 설명했다.

무엇보다 다롄은 조선소에 꼭 필요한 기술 인력도 풍부하다. 정 사장은 “다롄 이공대, 하얼빈 공대 등 중국에서 이름난 공대들이 가까이 있어 조선 관련 엔지니어 구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라고 했다.

정광석 STX다롄 사장 인터뷰  “중국 조선, 과소평가해선 안 돼”

“우리나라에서는 중국 조선을 엄청나게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중국 조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합니다.”

정광석 STX다롄 사장은 우리나라 조선업계가 중국을 너무 얕보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중국 현지에서 노련한 조선 기업 CEO가 한국의 조선 산업 관계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중국은 ‘2015년까지 세계 제일의 조선 국가가 되겠다’는 목표로 조선 산업을 집중육성하고 있다. 그런 중국이 지난 6월에 세계 1위가 되는 시점을 2011년으로 4년이나 단축해서 수정 발표를 했는데, 이는 무시할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 조선은 태동기에 정부가 지원을 해서 육성한 ‘계획 조선’의 수혜를 입었습니다. 우리가 세계 1위의 조선 국가가 된 지금은 정부의 지원이 끊겼지요. 하지만 중국은 조선 산업의 초창기를 넘어서 어느 정도 성장기에 이른 지금도 정부가 지원의 손길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정 사장이 우려하는 이유는 또 있다.

“중국에서는 해마다 쏟아지는 조선 관련 기술 인력들이 많고, 이들이 조선 산업에 속속 합류하고 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벌써 조선업체에 젊은이들이 잘 가려 하지 않아요. 조선소들이 대부분 해안이 있는 지방에 위치하고 있고, 현장 업무가 많다는 거죠.”

중국 다롄 = 이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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