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2000년대 초 재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혜성의 과거를 아는 천문학자들은 없다. 마찬가지로 2000년 이전의 강 회장을 잘 아는 이들은 드물다. 그저 열심히 사는 평범한 월급쟁이로만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 회장은 평범한 월급쟁이가 아니었다. 강 회장은 도전(용기)과 야망(비전)의 칼을 갈며 철저히 준비해온 미래의 리더였다. 36년에 걸친 강 회장의 도전과 야망을 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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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야망으로 무장 ‘신화 창조’

1950년 경북 선산에서 출생한 강 회장은 서울 동대문상고와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73년 지금은 해체된 쌍용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은행의 신용등급이 ‘트리플 A(AAA)’였던 회사는 쌍용양회와 삼성전자 두 곳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당시 미래가치가 크게 반영된 반면, 쌍용양회는 당시 현재가치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쌍용양회가 취업생들에게 더 인기를 끌었다. 이런 점에서 강 회장은 명문대 출신 못지않게 실력이 출중했음을 엿볼 수 있다. 강 회장은 상고에서 닦은 주산 및 부기실력을 쌍용양회와 (주)쌍용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강 회장은 숫자에 밝은 것은 물론 주식 등 재테크에도 밝아 그의 도움을 얻어 재미를 본 동료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정도라고 한다. 강 회장을 잘 아는 전 쌍용그룹 인사는 “취업 초반부터 사업 기질이 대단했다”며 “쌍용양회 근무시절 토요일 근무가 끝나면 곧바로 대구로 내려가 조그맣게 운영하던 가게를 챙기고 일요일 밤늦게 서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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