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그룹은 출범 후 지금까지는 잘 해왔다. 그러나 조선·해운 분야가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지금은 ‘생존’이 업계 구성원들 모두의 화두가 됐다. STX그룹은 지금 어떤 현실에 직면해 있고,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선제적’ 유동성 확보로 위기 대비

포트폴리오 다변화 위해 혼신 노력

“지난 1분기 조선 해운 경기 불황 속에서도 시장 예상을 넘어서는 양호한 경영실적을 거두긴 했지만, 지금은 STX 창사 이래 가장 어려운 경영환경임에 틀림없습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지난 5월 경북 문경 STX리조트에서 열린 ‘2009년 상반기 경영전략 회의’에서 그룹의 임원들 앞에서 이 같이 말했다.

강 회장의 말에서 보듯 STX그룹은 현재 창사 이래 가장 힘든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STX그룹은 97년 외환위기 영향권 막바지였던 2000년에 쌍용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쌍용중공업을 모태로 태어났다. 새벽이 오기 바로 직전 가장 어두울 때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후 대동조선과 범양상선을 인수한 뒤 ‘글로벌 조선·해운 대호황’이라는 찬란한 태양이 뜨면서 그룹은 이에 힘입어 비교적 안착에 성공하는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지금이다. 시간이 흐르면 태양이 지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듯, 조선·해양업종의 경기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침체되며 캄캄한 밤을 헤매고 있다.

해운업종은 불황기에 생산을 위한 물자의 수요 감소로 운송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조선업종은 그런 해운사들을 고객, 즉 선주(船主)로 두는 산업이다. 운송 수요가 줄면 신규 선박 발주도 감소해 역시 불황에 허약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조선업종은 수주산업인 만큼 신규 수주를 계속 하지 못하면 그 동안 받았던 선수금(선주들이 선박건조용으로 미리 내는 돈)이 다 떨어질 경우 위기에 닥칠 수 있다.

전재천 대신증권 애널리스트(조선업종)는 “지금은 개별 기업의 경쟁력은 둘째치고, 생존 자체가 관건”이라며 “대형 조선사라 해도 선주들이 완성된 선박의 인도를 지연시키거나, 최악의 경우 발주 취소까지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수주 잔고의 안정성도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통장 잔고로 본 현실은?

자본시장에서 STX그룹을 비롯한 조선업체들에 대해 유동성 부족에 대해 우려감을 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STX그룹의 주력사인 STX조선해양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과 비교해 현금성 자산이 가장 적어 그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더욱 높다. 작년 말을 기준으로 주요 조선사들의 현금보유액은 현대중공업 6700억원, 삼성중공업 3400억원, 대우조선해양 2700억원, STX조선해양 2000억원이었다.

STX조선해양도 이 같은 문제를 잘 인식하고 있다. 올 들어 단기 자금 조달을 늘리는 것은 혹시 모를 유동성 부족에 대한 대비다. 지난 5월 3000억원 규모의 회사채(CP)를 발행하는 등 5월18일까지 STX조선해양의 1년 이하 단기 차입금 규모는 1조572억원 가량으로 늘었다. 자본금의 76.9%에 이르는 규모다. 이어 7월에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3년 후 만기로 1500억원 규모의 자금도 추가로 조달했다.

계속되는 단기자금 조달은 결국 빚을 늘린다는 뜻. 당연히 우려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채권 쪽을 중심으로 하는 신용평가 시장에서는 현 시점의 생존력을 키운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점수를 주고 있다.

이종명 한화증권 크레디트 애널리스트는 “STX조선해양의 최근 자금 조달은 당장 쓸 곳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진짜 위기를 맞기 전에 미리 유동성을 확보하자는 차원의 조치”라며 “오히려 이 같은 선제적인 조치는 잘 대응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 하반기에는 굵직한 해외 해양 프로젝트가 몇 건 예상되고 있다. STX그룹을 비롯해 전체 조선업계가 사활을 걸고 수주전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드릴십 프로젝트 추진

STX그룹은 올 상반기에 브라질의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에서 심해 유전개발을 위해 발주 예정인 대규모 드릴십(Drill Ship) 프로젝트와 관련해 조선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발주를 준비하던 페트로브라스 관계자들은 6월 말 한국을 찾아와 국내 주요 조선업체들을 방문해서 “한국의 조선사들이 수주할 경우 브라질에 조선소를 지어 현지에서 생산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주에 조선소 건설이라는 ‘거대한 옵션’을 붙인 것이었다.

그때 STX는 당시 STX유럽 소유의 브라질 소재 조선소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부각됐다. 드릴십 분야의 기존 강자인 삼성중공업이나 현대중공업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점쳐질 정도였다.

드릴십은 원유나 가스를 시추하는 선박 형태의 설비로, 대당 가격이 1조원이 넘는 고부가 상품이다. STX조선해양은 현재 포트폴리오 다변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아직 드릴십을 만들어 본 일이 없다. 만일 이번에 수주를 하게 되면 처음으로 드릴십을 설계하고 건조하는 새 역사를 쓸 수 있게 된다. 프로젝트 규모도 큰 데다, 새 시장 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STX로서는 구미가 당기는 프로젝트였다.

이와 관련해 STX그룹은 “만일 조선소 건설이 수주의 전제조건이라면 STX의 브라질 조선소를 확장하거나, 페트로브라스와 합작으로 새 조선소를 짓는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조선업체들에게 생존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부상한 시점. 페트로브라스의 요구사항대로 조선소 건설이라는 ‘옵션’을 전제로 수주전에 참가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생각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한화증권의 이종명 애널리스트는 “조선소를 짓는 비용이 1조원은 들어간다”며 “만일 합작 조선소를 전제로 수주를 한다면 수주에 따른 득실을 생각해 볼 문제”라고 지적했다.

드릴십 프로젝트 참여를 모색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STX그룹은 현재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그룹의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조선해양과 팬오션, 변신 모색 중

현재 STX조선해양의 영업이익률은 다른 주요 조선사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주력 생산선종은 DWT(재화중량톤수) 4만~8만톤급 중형선박, 특히 벌크선 위주다. 선박 중에서도 저렴한 상품이다 보니 마진이 적다. 그래서 꾸준히 고부가선 위주의 영업을 하면서 대형선박 제조사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중이다.

지난 2006년 말 11만5000DWT급의 탱커선(유조선) 6척을 수주한 데 이어, 2007년 초에는 17만3600CBM LNG선을 최초로 계약하는 성과도 거뒀다.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전재천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한동안 철강 가격이 많이 오른 시점에 들여놓은 조선용 강재로 배를 건조해야 하기 때문에 대형선박 제조사로 변신하는 데에도 수업료가 꽤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STX팬오션도 벌크선 운송 전문인 현재의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벌크선 시황이 흔들리면 위험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STX팬오션은 보유선박의 90%가 벌크선이고, 나머지 10%가 컨테이너선과 탱커(유조선), 자동차 운반선이다.

최근 몇 년 간 중국에서 경제성장에 따른 원자재 수요가 급증하면서 이를 실어 나르는 STX팬오션 같은 벌크선사들은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이에 너도나도 벌크선 운송업에 뛰어들며 공급이 늘어나 벌크선은 현재 공급과잉 상태에서 불황을 만났다.

STX팬오션도 벌크선 외의 다른 해운사업 비중을 확대하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러나 벌크선 호황이라는 달콤함에 취해 불황이 오기 전 재빨리 사업구조 재편을 해내지 못한 것이다.

STX팬오션은 갑작스런 해운시황 위축으로 경영환경이 어렵긴 하지만 LNG선·자동차운반선·컨테이너선 등으로 사업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년 12월에 LNG운송사업에 진출한 STX팬오션은 한국가스공사가 예멘에서 연간 약 70만톤씩 20년 간 수입하는 LNG를 운송하는 계약을 맺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STX팬오션은 대형 화주를 대상으로 한 COA(장기운송계약) 추진에 역량을 집중하고, 선박의 효과적인 재배치를 통해 매출액을 확대한다는 전략과, 화물 위주의 글로벌 영업을 확대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나간다는 방침이다.

에너지사업부문 강화

STX그룹은 그룹 4대 비즈니스 축의 하나인 ‘에너지’ 부문에 대한 기대치를 점점 높이는 분위기다.

올해 3월에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STX에너지 회장으로, 7월 초에 이병호 전 한국가스공사 부사장을 STX의 무역·사업 부문 사장으로 영입한 것은 이 같은 기대에 대한 상징적인 인사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에너지 사업은 STX그룹 내 계열사 간 시너지를 내는 데 효과적인 사업”이라고 강조하며 에너지 사업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

강덕수 회장은 그동안 산단에너지(현 STX에너지) 인수와 더불어, 인천정유와 오일뱅크 등 정유업체 인수전에 나서며 에너지 사업에 대해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왔다. 그러나 정유업체 인수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된 후에는 방향을 다소 수정하고 있다.

기존에 STX에너지가 해왔던 열병합 발전사업과 함께, 해외 에너지 및 자원 개발, 그리고 태양광·풍력·수소에너지 등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눈을 돌리는 모습이다.

해외 에너지 및 자원 개발은 이른바 ‘개발형 사업’ 혹은 ‘패키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조선/기계, 해운/무역, 에너지/건설 등으로 연계된 그룹의 장점을 극대화하자는 전략으로 접근 중이다. 에너지 부문의 주도로 해외에서 자원을 개발하게 되면, 이를 STX팬오션이 운송하는데, 그 선박은 STX조선해양이 만들고, 개발한 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발전 설비 공급과 플랜트 건설 등은 STX중공업이나 엔진 등이 제공하는 식으로 연계한다는 것이다. 

STX그룹은 이미 마다가스카르, 아제르바이잔, 인도네시아 등에서 관련 성과를 올린 적이 있다. 기술력이 부족한 중동, 동남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등에서 효과가 큰 사업 방식이라는 판단에 해당 지역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강 회장은 “개별 기업으로서는 수행하기 어려운 해운-조선기계-부품소재, 그리고 에너지, 건설/플랜트에 이르는 토털 솔루션(Total Solution)을 제공할 수 있는 STX만의 탁월한 능력은 우리 STX그룹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다”며 “에너지와 연계한 육·해상 플랜트 건설 및 운송서비스 제공, 관련 조선 기자재 공급 등 해외 패키지 프로젝트(Package PJT) 개발 및 수주에 역량을 집중하자”고 임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또 하나의 에너지, ‘그린 비즈니스’

STX그룹은 기존 4대 비즈니스 축에 이어 신성장 동력의 핵심 축으로 녹색 산업(그린 비즈니스) 부문을 선정, 그룹의 5대 축으로 키워가고 있다. 풍력, 태양광, 수처리, 저탄소 등의 4대 사업분야가 중심에 있다. ‘녹색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제5의 비즈니스 축으로 꼽았지만 ‘녹색 비즈니스’란 또 다른 이름의 에너지 사업이다. 결국 STX그룹은 ‘에너지’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는 얘기다.

풍력발전, 수처리, 탈황·탈질, 수소연료전지, 바이오 에너지는 STX중공업과 STX엔진에서 주도하는 것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풍력발전 분야에서는 2015년까지 자체기술을 보유한 주요 풍력발전기 생산 그룹으로 자리잡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STX솔라는 현재 경상북도 구미에 태양전지 공장을 짓고 있다. 5만7949㎡(약 1만7529평) 규모의 공장부지에 연간 1만5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50MW급 태양전지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다. 올해 1차 준공할 예정이며, 향후 5년 간 총 2000억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이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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