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가장 많이 화두에 오르는 것은 ‘부자 되기’다. 경제뉴스를 다루는 경제신문을 소수의 금융계나 산업계 종사자들만 보던 시절은 어느덧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돼 버렸다. 이제 종합지 경제면과 경제신문을 꼼꼼히 읽어야만 ‘부자 되기’에서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게다가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에 맞는 재테크 서적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경제교육을 어릴 때부터 시켜야 한다며 어린이용 경제신문이나 경제교육 서적까지 발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부자 되기’는 전 연령층의 ‘목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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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슈퍼리치 되고 싶다

2000년 초 국내를 강타한 것은 ‘백만장자’ 열풍이었다. 신드롬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 곳곳에서 백만장자란 단어가 회자됐다. 백만장자가 되기 위한 재테크 지침서가 봇물처럼 쏟아졌고, 이중 여러 개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는 백만장자와 관련한 재테크 커뮤니티가 속속 생겨났다. 일부 직장인들이 백만장자를 목표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기도 했다.

그 당시 로또 열풍이 우리 사회를 관통한 것은 또 다른 단면인 셈이다. 이러한 ‘부자 되기’ 열풍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지금도 전혀 바뀌지 않았다.

돈 많은 부자를 표현할 때 흔히 쓰이는 백만장자는 금융자산을 100만 달러 가진 경우다. 백만장자, ‘millionaire’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1920년쯤 미국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존 록펠러가 사상 최초로 100만 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하면서 언론에서 그의 부를 칭하는 말로 millionaire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 그 당시만 하더라도 100만 달러는 어마어마한 가치였으나 이제는 인플레이션으로 그 가치가 현저히 떨어졌음은 물론이다.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부자의 기준이 백만장자였다면, 이제는 백만장자의 수가 많아져 ‘대단한’ 부자 축에 끼질 못한다. 미국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백만장자의 수는 2002년 말 기준 5만5000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9년 말에는 12만7000명 정도로 늘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사람은 13만명가량이었다.

이 같은 부자의 인플레이션 현상은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가격 급등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버블 세븐 지역의 부동산은 지난 10년과 비교해 2~3배 폭등했다.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부자를 표현할 때, 최근 들어 백만장자란 표현보다는 ‘슈퍼리치’를 더 많이 쓰는 추세다. 슈퍼리치는 수십억~수백억원대 자산가를 말한다. 100억원 안팎의 재산을 가진 셈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인 슈퍼리치를 2만명 정도로 추산했다. 백만장자의 6분의 1가량에 불과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사람을 대상으로 재산이 얼마여야 부자라고 생각하느냐를 물었더니, 50억원 이상이 31.4%, 100억원 이상이 42.5%로 각각 집계됐다. 재산이 100억원 안팎인 슈퍼리치 수준이 돼야 부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에 의해 이제 사회가 크게 바뀐 셈이다. 이제 ‘부자=백만장자’보다는 ‘부자=슈퍼리치’가 더 가슴에 와 닿게 됐다.

이렇게 경제 상황이 바뀌면서 금융계의 VVIP 마케팅 대상도 이제는 백만장자에서 슈퍼리치로 바뀌고 있다. 이미 은행권은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인 고객에게 타깃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증권사들도 이들에게 주안점을 두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해 6월 예탁자산이 30억원 이상인 고객을 대상으로 삼성 앤드 인베스트먼트(SNI) 브랜드를 내놨다. 우리투자증권이 프리미어블루라는 브랜드로 강남센터를 개점했고, 한국투자증권이 V프리빌리지, SK증권도 강남PIB센터를 각각 열었다. 부자들은 자산을 여러 곳에 나눠 관리하는 편이어서 금융사 한 곳에 맡긴 돈이 10억~30억원이면 금융계에선 슈퍼리치로 분류된다. 김홍배 삼성증권 SNI 코엑스인터컨티넨탈 지점장은 “10억원을 위탁했더라도, 다른 금융기관에 나눠 맡기는 경우가 일반적이어서 실제로 금융자산은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우리나라에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의 슈퍼리치를 2만명으로 추산했다. 사진은 강남의 고급아파트 중 하나인 도곡 렉슬 아파트.



그렇다면, 슈퍼리치는 어떤 사람들일까. 성공DNA를 가진 아주 특별한 사람일까. 의외로 슈퍼리치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슈퍼리치와 많이 만나는 금융투자업체의 A대표는 “샐러리맨 출신의 대기업 CEO들, 의사·변호사·펀드매니저 등 전문직 종사자들, 수입상을 하는 무역업자들, 남대문 등에서 장사를 하는 자영업자, 제조업자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슈퍼리치들은 100억원가량의 재산을 어떻게 모았을까. PB센터의 B센터장은 “고객 대부분은 50, 60대로 일정 부분 재산을 상속받은 뒤 이를 부동산에 투자해 재산을 100억원대로 만들었거나 벤처기업을 하다가 운이 좋아서 재산을 불린 것”이라고 했다.

반면 또 다른 PB센터의 C팀장은 “남대문시장 등에서 장사하면서 매장을 여러 개 갖고 있는 사람 중에는 재산이 100억원이 넘는 사람이 많다”면서 장사나 사업을 해 재산을 모았다고 했다. A대표는 “슈퍼리치 중 대부분은 빌딩을 샀다거나 사놓은 땅이 가격이 올라 돈을 많이 벌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한 사람도 많다”고 했다.

슈퍼리치 45%, “부동산 투자로 재산 모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조사한 것도 이들의 분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조사에 따르면 종잣돈을 마련한 뒤 현재와 같은 자산을 축적하게 된 원동력은 부동산 투자가 45.8%로 가장 높았다. 이어 개인 사업이 28.4%, 부모지원·상속이 13.7%, 금융투자가 8.2% 순이었으며 근로소득이 3.9%로 가장 낮았다.

다만, 앞으로는 부동산 투자와 같은 방법으로 손쉽게(?) 재산을 모으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B센터장은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부동산 가격 급등은 어렵다”면서 “상속으로 웬만큼 재산을 갖고 있지 않으면 슈퍼리치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A대표도 “상속이나 부동산 투기가 아닌 것으로 슈퍼리치가 되는 것은 어렵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20~30년을 내다보면 부동산이 아닌 주식, 펀드 등으로도 얼마든지 재산을 10배 이상 불릴 수 있다”고 했다.

누구나 되기를 열망하는 슈퍼리치의 소비생활은 어떨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부자가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백화점이나 유흥업소에서 흥청망청 돈을 쓰는 모습이 간간이 비친다. 실제로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루이뷔통·구찌 등 명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것이 슈퍼리치의 한 단면일까. 슈퍼리치인 김복덕 소룩스 사장은 “나나 내 주변의 슈퍼리치를 보면 사업상 간간이 고급 호텔에서 값비싼 음식을 먹는 경우도 있지만, 비오는 날 빈대떡에 막걸리를 마시거나, 칼국수·김치찌개 등 맛집으로 소문난 음식점에 일부러 찾아가 한 끼를 때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슈퍼리치인 이호정 서울순치과 원장은 “과거 아버지는 돈을 귀하게 여겨 흥청망청 쓰는 일은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벤처기업을 해서 재산을 불린 박모씨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외제차를 굴리며, 돈 쓰고 싶을 때 부담 없이 쓴다”며 슈퍼리치의 생활이 일반인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 있다고 털어놨다.

 

조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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