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는 어떤 사람들일까. 어떻게 해서 막대한 부를 형성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자가 되는 지름길은 없었다. 정도를 걸어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부자들은 창업이나 주식 및 채권·부동산 투자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돈을 벌었다. 무모한 투자는 없었다. 오랫동안 정석대로 기업을 경영하고, 투자를 했다. 다만 기회가 있을 때는 과감했다. 부자들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줄 알았고,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패가 있었지만 포기는 없었다. 창업 부자도 그렇고 강남 빌딩 부자도 그랬다. 부자들을 인터뷰하기는 쉽지 않았다. “돈 번 게 무슨 자랑거리냐”라는 이유에서였다. 실명 공개를 꺼린 부자들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슈퍼리치, 그들은 누구인가?

리스크 두려워 않고 과감히 베팅…

실패에 굴하지 않는 ‘오뚝이형’ 많아

창업형 부자

죽기 살기로 하지 않으면 성공 없다

창업에 성공하면 엄청난 부자가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기업하기란 여전히 위험하고 성공할 확률이 낮다. 하지만 창업을 통해 슈퍼리치 반열에 올라선 사례는 부지기수다.

40대 초반에 이미 슈퍼리치가 된 김복덕(47) 소룩스 사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이다. 국내 3~4위권 조명기구 업체인 소룩스는 경기 부천 도당동 대우테크노파크에 본사가 있고, 생산 공장은 강원도 원주에 있다.

재산이 100억원을 훌쩍 넘지만 김 사장은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은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는 맨주먹에서 시작해 슈퍼리치에 올랐다.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먼 친척이 하는 전자회사에 취직했다. 이 전자회사는 형광등에 전원을 공급하는 ‘전자식 안정기’ 제조업체였다. 김 사장은 이 회사에서 생산은 물론이고, 안 해본 일이 없다. 많은 것을 이곳에서 배웠다. 밑바닥부터 시작한 셈이다.

그러다가 독립해서 공장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하다가 ‘전자식 안정기’를 납품받아 완제품인 조명기구를 만들기로 했다. 조명기구는 형광등과 같은 광원기구를 끼워넣는 주변 기기이다. 갓처럼 매달기도 하고, 아파트처럼 붙박이식으로 돼 있기도 하다. ‘전자식 안정기’ 같은 부품은 조명기구 완제품을 만드는 하청업체여서 사업이 불안정하다고 봤다. 그는 조명기구가 좀 더 안정적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이때가 1994년이다. 소룩스의 전신인 중앙전기공업을 직원 5명과 함께 시작했다. 그가 불과 30살 때였다. 남들이 한창 직장에 들어가 신입사원이나 주임(대리) 정도일 때 그는 창업을 한 것이다.

조명기구는 그 당시 ‘중소기업 고유 업종’으로 묶여 있었다. 그래서 후발주자임에도 어렵지 않게 사업이 궤도에 오를 수 있었다. 특히 IMF 외환위기 때에는 일부 중소 조명기구업체들이 자금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오히려 기회가 됐다. 중앙전기공업(2003년에 소룩스로 사명 변경)이 창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워낙 작은 회사다보니,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지 못했고, 어음을 돌릴 만큼 수준도 되지 못했던 것. 그러다보니 외환위기로 인한 자금난을 전혀 겪지 않았다. 일부 조명기구업체의 부도로 생산량이 적어지자, 소룩스의 주문량이 계속 늘어나 고성장을 구가할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아파트에 턴키로 들어가는 조명기구를 수주해 매출이 더욱 증가하기 시작했고, 3년 전부터 LED 조명기구 풀세트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또 부동산시행사업도 하고 있다. 부천 공장부지를 팔고 새로운 부지를 물색하던 중 현재 부천 본사 자리를 알게 됐던 것. 김 사장은 일반 공장을 짓기 아까운 땅이란 생각에 중앙소룩스개발이라는 부동산시행회사를 설립하고, 아파트형공장을 지어 재산을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소룩스의 매출액은 335억원, 경상이익은 24억원가량이다. 웬만한 코스닥의 중견기업보다 나은 수준이다.

하지만 김 사장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전혀 없다. 어느 정도 부를 쌓았지만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는 “인생은 도전이라고 생각한다”며 “소룩스를 더욱 크게 키우고 싶다”고 했다.

외식 프랜차이즈로 대박 터뜨리기도

외식업으로 30대에 슈퍼리치 반열에 오른 이도 있다. 바로 2004년부터 프리미엄 수제버거 브랜드인 크라제버거를 이끌고 있는 민병식(37) 대표다. 그의 재산은 50억원을 웃돈다. 그가 젊은 나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열정과 입지를 보는 탁월한 안목 때문이다.

프리미엄버거를 슬로건으로 내건 민 대표는 지점을 확장할 때 미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타워팰리스점은 2002년 타워팰리스가 미분양 됐을 때 계약을 했고, 청계점은 청계광장이 오픈하기 전 입점했다.

열정도 대단하다. 메뉴 네이밍의 절반은 그가 한다. 그의 경영원칙은 ‘발로 뛰라’다. 그는 하루에 5개의 매장을, 일주일에 20개 매장을 다닌다. 한 달에 한두 번은 당일치기로 지방 매장도 찾는다.

지난해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장차관, 교섭대표, 취재기자단에게 크라제버거 3000개를 제공한 일화에서도 그의 열정이 엿보인다. 그는 크라제버거 20개를 들고 무작정 G20 기획단을 찾아가, 외국인들에게 익숙한 음식이니 야식이나 간식으로라도 제공하고 싶다고 했다. G20기획단측이 한국 브랜드라는 것을 알고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고.

크라제버거는 현재 전국 80개, 국외 2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미국, 중국, 동남아 등 10여개국에 40여개의 지점을 열 계획이다. 특히 올해에는 햄버거 본토인 미국 시장에 진출을 앞두고 있다. 매장은 백악관 바로 맞은편에 들어선다. 맥도널드나 KFC와 같은 세계적인 버거 브랜드와 견줄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꿈이다.

이동통신 대리점도 부자 제조기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이동통신 대리점도 신흥부자들의 제조기였다. 김모씨(51)는 최근 급성장한 이동통신 붐을 타고 막대한 부를 일궜다. 수도권에서 15개의 이동통신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는 그의 재산은 500억원가량이다.

건설업체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던 김씨가 1990년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시작한 사업은 보험대리점이었다. 하지만 보험영업은 큰돈이 되지 못했다. 그럭저럭 굴러가는 수준에 불과했다. 1994년 컴퓨터 바람이 불자 그는 컴퓨터 대리점을 오픈했다. 수익이 쏠쏠했다.

그러던 그에게 이동통신 시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눈에 휴대전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는 1996년 컴퓨터 사업으로 번 돈과 대출을 받은 2억원으로 이동통신 대리점 한 곳을 인수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1990년대 말부터 불기 시작한 휴대전화의 인기를 타고 그의 사업은 급성장했다.

그는 점포면적은 작아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택해 대리점을 확대했다. 대리점은 가입자를 유치하면 가입 장려금과 함께 가입자가 매월 납부하는 요금의 일정액을 4~5년 동안 수수료로 받게 된다. 통신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입자당 마진은 20만원에 달했다. 하나의 대리점에서 올리는 매출만 월 2억~3억원에 달했다. 2004년에는 대리점을 열었던 5층 빌딩을 아예 매입했다.

금융투자형 부자

한탕주의 버리면 실적 보인다

주식고수는 수백만원 혹은 수천만원으로 주식투자를 시작해 수십억원까지 자산을 불린 개인투자자들이다. 누구나 주식투자를 한다고 해서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외로 우리 주위에는 주식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꾼 사람들이 꽤 있다.



6년 만에 36배 불린 김태석씨

김태석씨(41)는 이른바 주식고수다. 2005년 2억5000만원으로 전업투자에 나선 김씨의 원금은 현재 90억원으로 불어났다. 6년 만에 36배가 늘어난 것이다.

그는 가치투자자다. 가치투자란 기업이 가진 실제 값어치(가치)가 가격(시가총액)보다 싸게 거래되는 경우에 매수하는 투자법이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결국 가치투자가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기업이 가진 자산과 벌어들이는 수익, 그리고 배당 등이 가장 기본적인 투자요소죠. 물론 회사의 미래가치도 중요하게 여깁니다.”

김씨가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은 대기업 계열 IT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1999년. 코스닥 바람이 한창 불면서 주변에서 주식투자로 돈을 벌었다는 얘기에 그도 솔깃했다.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았어요. 운이 좋았는지 처음엔 약간의 수익을 냈어요.

2000년 벤처거품이 꺼지면서 그는 큰 손실을 입었다. “몇백원짜리 관리종목으로 한방에 만회하려고 했어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투자였는데, 돈에 눈이 멀었던 거죠. 그 회사는 결국 상장폐지 됐어요.”

2002년 초 그는 또 한 번의 참담한 실패를 경험했다. 어느 증권 관련 사이트의 전문가가 추천한 종목에 남아 있던 투자금을 모두 쏟아 부은 것이다. 그가 매입한 지 30분 만에 그 기업이 부도처리 됐다는 공시가 떴다.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된 것이다.

실패가 그에게 깨달음을 줬다. 다른 방식의 투자법이 필요했다. 그는 그때그때의 주가보다는 기업의 현재, 미래를 보는 안목을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찬찬히 뜯어보니 좋은 기업이 널려 있었다.

“일반 투자자들은 기업이 제시하는 장밋빛 미래만 보고 투자를 하는데, 전 상식적으로 접근했어요. 자산이 많고 이익을 내는 기업을 타깃으로 한 거죠.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고, IR담당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가 선택한 종목은 휴스틸이었다. 유산으로 받은 작은 땅을 판 1억원 전부로 휴스틸 주식을 샀다. 하지만 두 차례의 상장폐지를 경험한 그는 불안했다. 어떤 날은 월차를 내고 그 회사의 공장에서 제품을 싣고 나가는 차량을 세보기도 했다. 2005년 이 회사의 영업이익 등이 시가총액을 넘어서면서 5000원도 안됐던 주가가 1만5000원까지 올랐다. 그는 상당량을 매도했다. 5년치 연봉에 맞먹는 금액이었다.

2005년 320%라는 큰 수익을 내면서 그는 전업투자를 결심했다. “기업을 공부하는 게 즐거웠어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기업탐방도 가고 싶고, 투자한 회사에 맘껏 전화도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자신감도 어느 정도 있었고요. 불안해하는 가족들 때문에 집을 사고 남은 돈 2억5000만으로 전업투자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소위 주식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을 맹신하지 말고 스스로 판단해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전체 시장에 휘둘리기보다는 투자기업에 대한 꼼꼼한 리서치도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기대 이상의 수익률을 바라면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부동산을 살 때 현장을 찾아보고, 등기부등본을 떼보듯이 주식투자를 위해서도 사업보고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기업관계자와 소통하고,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그가 현재 보유 중인 종목은 20여개. 하지만 5~6개 중소형 가치주에 자금의 80% 이상이 집중돼 있다. 애널리스트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종목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싸게 살 수 있다고 한다.

“주식을 산다는 건 기업의 지분을 사는 행위이고 주가 상승의 기본요소는 투자한 기업이 보유한 자산과 현재 벌고 있는 돈, 그리고 앞으로 벌어들일 돈으로 인한 기업가치의 상승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주식투자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과 자세를 바꾸는 것, 투자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죠. 주식시장은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게임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절대 수익을 낼 수 없는 곳입니다.”

그는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는 투자하고 있는 회사나 지인들에게 전화를 한다. 때론 직접 기업탐방을 가기도 한다. “가끔 주위사람들이 이제 주식투자보다 작은 건물이나 매입해 임대료 받으며 편히 살라고 하지만 저는 제 일을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제 직업을 버릴 순 없잖습니까."

채권도 매력적인 투자 수단



박모씨(40)는 주식투자와 채권투자를 병행하고 있는 전업투자자다. 그는 최근 3년간 채권투자를 통해 코스피지수 대비 50% 이상 수익을 냈다. 주식투자 역시 첫해를 빼곤 손실을 본 적이 없다.

그가 주식투자에 관심을 가진 것은 2000년.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무렵이었다. 닷컴열풍의 절정에 대개의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단기투자, 차트분석에 근거한 투자로 시작했지만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주식을 더 깊이 연구하게 됐고, 100% 이상의 수익을 거두는 투자가 많아졌다.

주식이 아닌 다른 투자 수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2008년 금융위기가 계기였다. 주식시장이 약세장에 접어들자 그는 약세장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고심하게 됐다. 워런 버핏이 미국 주식시장이 약세장일 때 차익거래를 통해 수익을 낸 것을 알게 됐다. 차익거래에 관심을 갖다 보니 관심은 자연스레 채권으로 옮겨졌다. 채권에 투자하면 안정적으로 표면금리를 받을 수 있고, 주가 상승 시 차익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채권 투자 수익률이 저축은행 금리보다 높으면 채권에 투자한다. 최근 경기가 회복되면서 고수익을 보장하는 채권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투자에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화장품 유통업을 하는 이모씨(여, 47)는 은행 예금과 채권에만 투자한다. 오로지 현금으로만 투자하고 빚도 지지 않는다. 이씨는 항상 현금을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주변에선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라는 조언을 많이 하지만 이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자신도 없어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부자

그래도 역시 부동산이 최고

부동산이 돈 불리기에는 최고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슈퍼리치가 될 수 있는 기반은 부동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동산 부자들은 아파트·토지·상가·빌딩 등 다양한 투자를 통해 돈을 벌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2개의 빌딩을, 경기 파주지역에 수천 평의 부동산을 소유한 김모씨(54)의 직업은 중소기업 사장이다. 그의 재산은 2000억원에 달한다.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금융 관련 박사 학위를 획득한 그는 금융투자가 아닌 부동산 투자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1990년대 초 상가를 매입한 것이 그의 첫 부동산 투자였다. 초기에는 상가에만 투자했다. 그의 상가 투자에는 원칙이 있었다. 바로 건물 코너에 있는 상가만 집중 매입한 것이다. 그는 코너에 있는 상가가 수익률이 높았고, 사고파는 것이 쉬웠다고 한다.

이후 그는 상가와 재건축 아파트를 오갔다. 2000년대 초에는 강남구 등에 있는 재건축 아파트를 매입했는데, 이 아파트 값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돈을 많이 모았다. 투자 이익으로 여유자금이 생기면 수도권에 있는 땅도 샀다. 이것이 다시 높은 수익률을 올리면서 강남권에 있는 중소형 빌딩을 매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상가와 아파트를 오가며 투자한 것이 강남 빌딩 부자로 클 수 있는 기반이 된 셈이다.

부동산으로 큰돈을 번 김씨는 여전히 부동산을 최고의 ‘안전자산’이라고 믿는다. 주식이나 펀드에는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는다. 그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를 걷고 있지만 앞으로 상당 기간 계속 오를 것이고 특히 빌딩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요즘 해외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에는 캄보디아에 200억원가량을 쏟아 부었다.

그가 부동산으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정보에서 비롯된다. 미국에서 유학한 그의 커뮤니티는 대부분 ‘잘나가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금융회사의 CEO나 정책결정에 관여하는 인사도 여럿이다. 그는 커뮤니티를 통해 외부 노출에 대한 부담 없이 비즈니스나 각종 정보를 얻고 공유한다. 회원들끼리 자연스럽게 친목을 도모하기 때문에 내부 결속은 대단히 공고하다. 돈의 흐름을 파악하려면 꾸준하게 정보 수집을 해야 하는데 ‘그들만의 리그’에서 나오는 정보만 한 것이 없다.

종잣돈 모으기가 우선



부자들은 부동산 투자 시 기본적인 원칙을 가지고 있다. 우선 본격적인 부동산 투자에 앞서 종잣돈 모으기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종잣돈을 모으면 부동산이 부자가 될 수 있게 해준다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목표했던 부동산에 체계적으로 재테크를 했다는 점이다.

송모씨(49)는 남편의 월급을 모아 1995년에 잠실에 집을 마련하고 외환위기 이후 모은 종잣돈 7000만원을 토지에 투자해 지금은 시세 25억원 규모의 상가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송씨는 종잣돈을 1999년 용인 수지에서 4m도로에 접한 임야 2644㎡를 3.3㎡당 12만원에 구입하는 데 투자했다. 이 토지는 4년 만에 아파트 시행회사가 아파트를 개발하겠다고 나서면서 3.3㎡당 150만원에 팔렸다. 10배가 넘는 높은 시세차익을 얻었다. 2004년 구리와 수원에서 2억원씩 투자한 토지를 2009년에 팔아 무려 12억원을 모았다. 7000만원의 토지 투자가 높은 수익을 안겨준 것이다.

송씨의 투자원칙은 토지에 투자할 때 절대 3305㎡ 이상은 투자하지 않으며, 2억원 이상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토지 투자는 환금성이 낮으므로 종잣돈이 장기로 묶여 있으면 현금회전이 되지 않아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벤처기업 사장이었던 김씨는 적절한 투자타이밍을 통해 강남 빌딩 부자로 변신했다. 1990년대 중반 벤처회사를 창업한 그는 2001년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300억원대 주식 갑부가 됐다. 그는 2002년 M&A를 통해 돈을 더 모은 뒤 2004년부터 부동산 투자에 나섰다. 벤처기업인이었지만 부동산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평소 눈여겨봐둔 강남권에 있는 빌딩을 구입했다. 강남역 인근에 있는 빌딩 2개를 3.3㎡당 3000만원대에 매입한 것. 이 빌딩들은 현재 3.3㎡당 1억원을 호가하면서 그를 강남 빌딩 부자 반열에 올려놓았다.

2000년대 온라인게임인 라그나로크 등을 히트시켜 4000억원을 번 김정률(57) 싸이칸홀딩스 회장은 최근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주거, 업무, 상업 및 복합상업시설을 개발하는 부동산 개발회사인 싸이칸홀딩스는 지난해 강남역 아이파크(I’PARK) 오피스텔 1, 2차 사업을 분양 개시 하루 만에 100% 계약 완료해 부동산개발업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온라인게임에서 부동산으로 전업

최근에는 서해안 최대 규모의 송도 관광단지 조성사업과 일본의 관광과 레저사업 등 국내외를 아우르는 문화, 관광 개발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송도유원지에 호텔과 골프장, 최신 위락시설을 조성해 외국인들을 유치하는 한국형 디즈니랜드를 건설하는 게 그의 꿈이다. 강남역 아이파크 오피스텔이 김 회장의 데뷔작이라면 개발 준비 중인 송도유원지는 그의 부동산개발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김 회장은 2000년 온라인게임회사인 그라비티를 설립, 히트게임인 ‘라그나로크’를 전 세계 47개국에 수출했다. 2005년 2월 그라비티는 국내 최초로 미국 나스닥에 직상장됐다. 국내 주식시장을 거치지 않고 미국 나스닥시장 상장에 성공한 최초 사례다.

김 회장은 2005년 9월에는 4000억원을 받고 그라비티 소유 지분을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에 매각했다. 50대 초반에 슈퍼리치가 된 것이다.

조완제 기자 / 장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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