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자산시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상승세를 보이리라 기대됐던 주가가 맥없이 약세를 기록한 데다 남유럽 위기 등 외생변수도 투자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막판 스퍼트를 내 하반기 산뜻한 출발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투자 시계(視界)가 좋아진 건 아니다. 이 때문에 공격적 투자전략을 취해온 40대 슈퍼리치들도 어디에 돈을 묻어두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단 전문가들은 하반기에는 위험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채권, 부동산보다는 주식이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부동산을 통한 이익실현은 당분간 힘들다는 게 요즘 슈퍼리치들의 생각이다. 사진은 대치동 은마아파트.

하반기 슈퍼리치들이 돈 묻어두는 곳은?

노후대비 월 지급형 ‘보험·부동산’ 인기

헤지펀드·자문형 랩 “소문만 요란했다”

얼마 전 모 증권사 VIP PB센터가 주최한 고액자산가 모임에서는 열띤 격론이 있었다. 유명 투자자문사 대표를 강사로 초빙해 마련한 이날의 해프닝은 강연 마지막 10분 질의응답 시간에 벌어졌다. 한 고객이 궁금한 것이 있다며 불쑥 손을 들더니 “유명 자문사가 운영한다고 해 믿고 맡겼는데 왜 이렇게 수익률이 낮으냐”며 항의를 한 것. 이렇게 시작된 논쟁은 하반기 주식시장에 대한 전망을 놓고 설전으로 이어졌다. 이날 행사를 기획한 해당 증권사 PB는 “믿었던 자문형 랩의 수익률이 저조한 데다 하반기 재테크 시장이 불확실해지면서 고객들의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다”며 달라진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자산시장은 돌파구가 없는 형국이다. 주식, 채권, 부동산 어느 한 곳도 돈이 흐를 만큼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슈퍼리치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요즘 40대 슈퍼리치들의 최대 관심사는 분산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정반대 개념인 이 두 단어가 재테크 시장에서 키워드로 부상하는 이유 역시 자산시장의 불확실성에서 출발한다. 분산부터 살펴보면 일단 자산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졌다. 일반적으로 고액자산가들은 부동산과 금융 자산 비중이 7대 3으로 부동산 비중이 많으나 시장 불황이 계속되면서 부동산은 줄이고 대신 주식, 채권이 추가되고 있다. 특히 40대 슈퍼리치들은 상당수가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자산에서 차지하는 부동산의 비중이 50~60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

7월 초 KB경영연구소가 펴낸 ‘한국 부자 연구: 자산 형성과 투자행태, 라이프스타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자들은 본인의 금융상품 지식수준에 대해 66.4%가 ‘높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이번 조사를 기획 정리한 KB경영연구소 노현곤 팀장은 “금융상품 지식은 본인이 판단한 투자성향과 연관성이 있다”면서 “공격적 투자성향이 강할수록 금융상품 지식 정도가 높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40대 슈퍼리치들은 금융상품 투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블루칩 위주 투자, 일부는 현금화시키기도

그렇다면 슈퍼리치들은 하반기 주식시장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모 은행 VIP회원을 담당하는 프라이빗뱅커(PB)는 “목표수익을 달성하기 위한 무리한 투자보다는 블루칩 위주의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PB도 “40대 슈퍼리치들은 대다수가 고학력자여서 주식,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높으며 투자패턴도 가치주 중심의 장기 투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당장 자금을 뺄 가능성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다만 주식으로 지난해와 같은 수익을 거두기는 힘들다는 게 전체적인 분위기다. 때문에 일부 고객들은 자금을 현금화시켜 조정장 이후 다시 투자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고 자산관리 전문가들은 말한다. 남유럽 사태로 유로존에 다시 빨간불이 들어온 상황인 데다 아직은 소수 의견이지만 더블 딥 우려가 제기되는 현 시점은 분명 돈을 뺄 때라는 것이다.

올 초 열풍을 기록했던 자문형 랩에 대한 반응은 시들해졌다. 자문형 랩은 대세장에서는 코스피 평균지수 이상의 수익을 기록했지만 하락장에서는 오히려 급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다수 자문형 랩이 자동차, 화학, IT 등으로 포트폴리오가 구성됐는데 이들 주가가 상반기 큰 폭으로 조정을 받으면서 수익률이 힘없이 주저앉은 것이다. 서울 강남에 있는 한 하나은행 골드센터에서 만난 40대 고액자산가는 “신문과 방송에서 하도 투자수익이 좋게 나온다고 해 1억원가량을 넣어봤는데 지금 와서 보면 수익률이 3~4% 수준에 이르고 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그는 “자문형 랩은 자금이 계속 들어와야 수익률이 좋아지는 구조다보니 상승장에서만 반짝 수익을 내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브이(V) 프리빌리지 강남센터 김영주 차장은 “자문형 랩에 대한 고객들 불신이 커지면서 요사이 수익률이 좋은 5~6개 자문사만 추려내 상품을 구성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금리가 상승기여서 채권투자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낮다. 다만 물가인상 수혜를 기대할 수 있는 물가연동채는 상황이 정반대다. 물가연동채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분을 원금에 반영하고, 이자를 더해주는 채권으로, 보통 채권 만기는 10년이다. 물가채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물가인상이 우려될 때 투자 헤징(위험회피)용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해외표시채권은 상반기만큼 수익을 내기는 힘들겠지만 여전히 포트폴리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올 초 많은 투자자들이 가입한 브라질 헤알화통화표시채권은 핫 머니에 대한 브라질 정부 규제와 긴축에 대한 우려가 맞물려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위안화표시채권도 마찬가지다. 대신 터키와 인도 등 신흥국 통화표시채권이 이들의 빈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이동률 상무는 “95%가량 원금을 보장하면서 연 6~7%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품을 권하면 대부분의 고객들이 만족해하고 위안화 절상에 대비한 구조화상품 DLS도 인기를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후대비 연금형 상품에 거액 예치



연금형 상품 시장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금보험으로 고액자산가일수록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본인 자산 중 40억원을 연금보험에 집어넣었다. 담당 PB가 권한 연금보험은 10년 비과세여서 절세효과도 기대되기 때문이다. A씨는 현재 보험 이자만 월 1400만원씩 받고 있다. 하나은행 웰스매니지먼트 강남WM센터 조성호 부장은 “40대 중에서도 보수적인 투자성향을 가진 고객들은 월 고정적으로 지급받는 연금형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교보생명 교보노블리에센터 김경석 총괄센터장도 “요즘 40대 슈퍼리치들은 자녀에게 자산을 모두 물려주고 은퇴하는 것이 아니라 젊어서부터 고액의 연금보험 상품을 여러 개 가입하는 등 자신의 은퇴설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연금형 상품에 대한 인기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예로 든 A씨는 현재 금융자산만 100억원대에 이르는 고액자산가로 그가 연금보험을 선택한 이유는 언제든지 현금화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주가가 조정을 받거나 강남권 부동산 값이 하락할 때를 대비해 현금 유동화가 쉬운 보험을 선택했다는 게 A씨의 재산을 관리하는 조 부장의 설명이다. 이 고객은 5억원짜리 연금보험 상품을 8개 가입했다. 보험 상품 하나도 분산투자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월 지급식으로 운영되는 펀드도 늘어나고 있는데 운용방식은 주식형, 주식혼합형, 채권혼합형, 해외채권형 등 다양하다. 최근 와선 ELS(주가연계증권)도 월지급식으로 출시되고 있다. 현재 출시되고 있는 월지급식 ELS는 일정조건을 충족할 경우 매월 0.8% 정도의 월 분배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다만 이 상품은 수익률은 높지만 원금을 보장받을 수 없고 코스피200, S&P500지수와 같은 기초자산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 손실이 커질 수 있다. 동양종합금융증권 조병준 연구원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로 월 지급식 상품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헤지펀드 예상보다 수익률 저조

또 하나의 자산 전략 키워드 ‘집중’은 압축펀드 인기가 잘 보여주고 있다. 상반기 펀드 시장에서 최대 히트 상품을 꼽으라면 단연 압축펀드다. 압축펀드란 70~80여개에 달하는 일반 주식형 펀드와 달리 편입종목을 20~30개로 줄여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펀드로 상반기 최고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는 하나같이 이들 압축펀드였다. 대표 압축펀드인 JP모간코리아트러스트 펀드는 6월24일 현재 연초대비 1조2287억원의 자금 유입이 있었고 수익률은 12.13%를 기록했다. 연초 1조원에 불과했던 압축펀드의 설정액은 반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문제는 매달 일정한 수익을 낼 수 없다는 데 있다. 지난 3~4월에는 평균 수익률 편차가 10% 이상씩을 기록했다. 펀드 간 우열도 확실히 구분된다. 수익률도 높지만 위험률도 크기 때문에 상품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면 압축펀드 선택 시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우리투자증권 김보나 연구원은 “압축펀드 투자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운용사의 리서치 역량”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소수 종목으로 구성돼 있다고 해 변동성이 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몇몇 펀드는 오히려 국내 주식형펀드보다도 변동성이 작다. 대신 전체 압축펀드의 76%는 국내 주식형펀드 수익률을 상회했다. 김 연구원은 “시장상황에 따라 주도주에 잘 투자하는 펀드(젠센 알파지수가 높은 펀드), 장기간 일정한 변동성을 유지함으로써 위험을 잘 관리하고 있는 펀드, 위험대비 수익률 수준이 높은 펀드(샤프지수 높은 펀드) 등에 투자하는 것이 현재로선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재간접 헤지펀드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가 반반이다. 신한금융지주 웰스매니지먼트본부 조원철 팀장은 “40대 슈퍼리치들은 헤지펀드 상품에 대해서 이해도가 높아 하반기에도 보다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사모형 펀드에 대한 전망도 비슷하다. 한국투자증권 김 차장은 “목표전환형 사모펀드는 연간 10%, 매수-매도(롱숏) 펀드는 7~10% 정도의 수익률을 거둘 수 있어 하반기에도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했다. 일부 증권사에서는 최근 해외 주식시장에 직접 투자하고자 하는 고객들에게 해외자문형 랩 상품을 판매 중이다.

그렇다면 슈퍼리치들의 오랜 투자도우미였던 부동산은 어떻게 될까. 서울 강남권 등 주요 지역이 침체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투자 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다만 중소형 오피스텔과 같은 수익형 부동산 상품은 예외다. 대한생명 FP센터 최영두 팀장은 “일부 고객은 현 상황에서 수익률 10%를 얻기보다는 연 5~6%씩 수익을 매달 안정적으로 받고 싶어한다”면서 “강남권 이면도로에 있는 50억~80억원짜리 중소형 빌딩을 구해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KB경영연구소 부자 설문 조사에서도 건물, 상가를 더 구입하겠다는 의견이 그렇지 않은 의견보다 24.5%포인트나 높았고 토지, 아파트, 오피스텔 등도 평균치보다 높게 나타났다. 슈퍼리치들이 부동산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수급요인보다는 유동성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 더 설득력이 있다. 시중에 떠도는 돈이 많으면 부동산과 같은 실물형 투자상품의 매력은 한층 더 부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부동산 회복으로 보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강남 WM센터 조 부장은 “장기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계속될 경우 부동산 시장의 대세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보다 고객들이 더 잘 안다”고 말했다. 부동산 투자로 기대하는 최저 수익률 5%대 물건을 유망지역인 강남권에서 50억원대 수준에서 찾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 대다수의 PB들은 동의했다. 

송창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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