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국내 최대 기업집단의 위상에 걸맞게 종업원 수가 무려 20만5000여 명에 이른다. 2, 3위인 현대자동차그룹(12만2000여 명), LG그룹(10만3000여 명)의 거의 2배나 된다. 일등기업에 일급인재들이 몰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히 삼성은 국내 최대의 ‘인재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 방대한 인재풀은 삼성을 이끌어가는 견인차이면서 동시에 한국 경제의 든든한 저변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삼성의 울타리를 벗어난 수많은 삼성맨들이 다른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 특유의 자질과 능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최고경영자(CEO)의 자리에 올라 ‘제2, 제3의 삼성’의 씨앗을 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삼성을 떠나 다른 기업에서 CEO로 활약하는 옛 삼성맨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런 궁금증에 착안, <이코노미플러스>는 국내 주식시장(유가증권시장, 코스닥시장)에 이름을 올린 상장법인을 대상으로 삼성 출신 CEO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해봤다. 그 결과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CEO의 약 3.8%, 코스닥시장 상장법인 CEO의 약 9.7%가 삼성을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시장을 합쳐 전체 상장법인 CEO로 살펴보면 약 7.0%가 삼성 출신 CEO인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상장법인 CEO 100명 중 7명은 옛 삼성맨이라는 계산이다. 이번 조사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상장법인 대표이사 입체분석

CEO 100명 중 7명이 삼성맨…코스닥은 10명 중 1명꼴

전문경영인형

삼성 출신 CEO가 경영하는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가운데 매출 규모 상위권에는 금융회사들이 다수 포진했다. 대한생명, 대우증권, 메리츠화재, 한화손해보험, 메리츠종금증권 등이 모두 매출액 10위 안에 들어갔다.

첫머리에 이름을 올린 신은철 대한생명 대표이사 부회장은 삼성생명 인사부장, 영업국장, 인사담당이사, 영업본부장, 영업총괄담당사장을 역임한 인사·영업 전문가다. 삼성에 입사해 수십 년간 잔뼈를 키운 정통 삼성맨 출신이다. 그는 삼성인력개발원 종합연수원 부원장도 역임했다. 2002년 대한생명 고문으로 자리를 옮겨 2005년 대표이사 부회장에 올랐다. 삼성을 떠나서도 다른 회사에 성공적으로 착근한 경우다. 권처신 한화손해보험 대표이사도 삼성으로 입사해 30년간 삼성생명, 삼성화재에서 경력을 쌓은 삼성 적통 출신이다.

이와 달리 대우증권 임기영 대표이사 사장은 삼성을 잠시 거쳐간 케이스다. 그는 도이치증권, 도이치은행에서 경력을 쌓아 삼성증권 IB사업본부장으로 옮겼다가 이후 살로먼브라더스 한국대표, IBK투자증권 사장을 거쳐 대우증권 사장으로 부임했다. 원명수 메리츠화재 대표이사 부회장도 삼성을 중간 기착지로 삼은 경우다. 그는 한빛은행(현 우리은행) 전산정보부장, 서울은행(현 하나은행) 전산담당부행장을 역임한 후 삼성화재 전무로 발탁됐다. 그 후 PCA생명, 동양화재를 거쳐 메리츠화재에 자리를 잡았다.

이현봉 넥센타이어 대표이사 부회장은 삼성전자 생활가전총괄사장, 서남아총괄사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인사팀 상무·전무·팀장(부사장)을 거쳤으며 한국인사관리학회 부회장을 맡은 적도 있는 인사통이다. 그는 올 초 넥센타이어에 영입됐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넥센타이어가 삼성맨을 유독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현봉 부회장 부임 전에는 홍종만 전 부회장(올 초 회장 승진)이 오너인 강병중 회장, 강호찬 사장 부자와 함께 공동 대표이사를 맡았다. 홍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부사장, 삼성화재 부사장, 삼성자동차 사장,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 등을 두루 거쳤을 만큼 ‘직업이 CEO’인 중량급 인사다. 그는 2006년 넥센타이어에 영입됐다.

유가증권시장 전문경영인 ‘주류’

코스닥시장은 창업 오너 ‘강세’

삼성전자 출신이 전체의 절반 육박…‘인재의 보고’ 입증

삼성은 국내 재계에서 ‘인재사관학교’로 불린다. 외국의 일류기업 못지않은 인재양성 시스템을 갖춘 삼성에서 일을 배웠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보증수표 구실을 한다. 이번 조사에서 국내 상장법인 CEO로 재임 중인 삼성 출신 인사들은 대체로 전문경영인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들이 주로 그러했다. 많은 기업들이 삼성맨 특유의 조직관리 역량을 중시해 CEO로 기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코스닥시장 상장법인 CEO 중에는 직접 기업을 일군 창업자형 오너경영인이 다수 눈에 띄었다. 또 가업을 물려받은 2세 오너경영인도 간혹 있었지만 그리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넥센타이어가 삼성맨을 유독 선호한다는 점이다. 이현봉 부회장 부임 전에는 홍종만 전 부회장(올초 회장 승진)이 오너인 강병중 회장, 강호찬 사장 부자와 함께 공동 대표이사를 맡았다. 홍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부사장, 삼성화재 부사장, 삼성자동차 사장,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 등을 두루 거쳤을 만큼 '직업이 CEO'인 중량급 인사다. 그는 2006년 넥센타이어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뛰어난 경영성과를 낳았다는 평가다.

삼성 출신 전문경영인들은 삼성을 떠나 범 삼성가 기업에 둥지를 튼 경우도 많다. 김치우 한솔LCD 대표이사 사장, 김성욱 한솔CSN 대표이사, 이상현 신세계I&C 대표이사 등이 그런 사례다. 김치우 사장은 삼성전자 영국생산법인장, 시스템가전사업부장(상무)를 역임했고, 김성욱 대표이사는 삼성물산 중국담당임원, 신규사업담당임원을 거쳐 한솔그룹에 합류했다. 또 이상현 대표이사는 회장비서실 감사팀장, 삼성카드 경영지원실장(전무)을 지낸 뒤 신세계그룹으로 옮겼다. 범 삼성가의 좌장 격인 삼성그룹 인재들이 형제그룹의 경영에 일조하는 셈이다.

창업자형

삼성 출신으로서 직접 창업해 큰 기업을 일군 대표적인 사례를 들자면 대번에 이해진 NHN 이사회의장 겸 최고전략책임자(CSO)를 떠올릴 수 있다. 그는 삼성SDS에서 사내벤처 ‘네이버’로 독립한 후 닷컴열풍을 타고 대박 신화를 쓴 신데렐라 같은 인물이다. 비록 이해진 의장만큼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코스닥시장에서는 삼성맨의 창업 도전기가 제법 눈에 많이 띈다.

삼성 출신 CEO가 경영하는 코스닥 상장법인 중 매출 규모가 각각 1, 2위인 디에스엘시디, 태산엘시디는 나란히 창업자형에 해당하는 경우다. 이승규 디에스엘시디 대표이사 회장은 삼성전자 부사장을 역임하고 1998년 창업의 길에 나섰다. 이 회사에는 삼성전자 출신 임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최태현 태산엘시디 대표이사는 삼성반도체(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문) 기술개발실장을 지낸 엔지니어 출신이다. 두 회사는 LCD, LED의 핵심부품인 백라이트유닛(BLU)을 주로 제조하는 업체다.

김철영 미래나노텍 대표이사는 삼성SDI 중앙연구소 출신이다. 그는 2002년 30대 후반에 회사를 창업해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미래나노텍은 LCD BLU에 들어가는 광학필름 전문 제조업체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 2680억원에 달했다. 삼성전기 기획실장 출신의 한완수 한성엘컴텍 대표이사 회장은 벌써 업력이 30년 가까이 된다. 그는 1983년 일찌감치 창업에 도전해 매출액 2000억원대의 기업을 일궈냈다. 한성엘컴텍은 LED 조명제품 전문 제조업체다.

매출액 1000억원 클럽에도 삼성 출신 창업자형 CEO가 경영하는 코스닥 기업들이 제법 많다. 파트론(김종구·삼성전기), 경남스틸(최충경·삼성전자), 에스에너지(홍성민·삼성전자), 가온미디어(임화섭·삼성전자), 신텍(조용수·삼성중공업), 에이테크솔루션(유영목·삼성전자), 한양이엔지(김형육·삼성반도체), 알티전자(김문영·삼성자동차) 등이 그런 사례들이다.

유달리 코스닥시장에 삼성 출신 창업자들이 많은 것은 왜일까? 코스닥시장은 벤처기업에서 출발한 신생기업들이 많다. 이들 중 다수는 1990년대 후반 이후 불어 닥친 외환위기와 벤처열풍의 격동기에 탄생했다. 그 무렵 많은 직장인들은 자의 혹은 타의로 회사를 나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삼성 출신들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때마침 IT산업 급팽창 등에 힘입어 새로운 산업질서가 만들어지면서 삼성 출신 창업자들은 기회의 땅에 깃발을 꽂는 데 성공한 셈이다.

 

가업승계형

아주 드물지만 가업을 물려받아 오너경영인이 된 사례도 눈길을 끈다. 이들은 대학 졸업 후 바로 부친의 회사에 입사하지 않고 먼저 사회생활 경험을 한 경우다. 그 수업 무대가 삼성이었던 것이다. 이진방 대한해운 대표이사 회장, 이창규 현진소재 대표이사가 그런 예다.

이진방 회장은 대학 졸업 후 삼성물산으로 입사해 오랫동안 ‘상사맨’ 경험을 쌓았고, 나중에는 삼성코닝으로 자리를 옮겨 이사까지 지냈다. 선친으로부터 가업을 승계한 것은 50대 후반에 이른 지난 2003년이었다. 말하자면 삼성에서 웬만한 경영수업은 다 끝마치고 가업을 승계한 셈이다. 그는 2007년부터 제25대, 제26대 한국선주협회 회장에 연속 선임될 만큼 해운업계에서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반면 이창규 대표이사는 30대 초반에 잠시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한 후 곧바로 경영에 참여한 경우다. 현진소재는 선박엔진, 풍력발전부품 등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부산 지역 단조업체다. 부산에서는 꽤 비중 있는 향토 기업이다. 특히 현진소재는 이 대표이사가 경영을 맡은 후 기업 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의 파워

삼성 출신 CEO들이 근무했던 계열사를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159명 중 69명이 삼성전자(옛 삼성반도체 포함) 재직 경력을 갖고 있었다. 비율로는 43.4%다.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 CEO 중 삼성전자 출신은 40명 중 11명으로 27.5%에 그쳤지만, 코스닥시장 상장법인 CEO의 경우는 119명 중 58명으로 거의 절반에 가까운 48.7%에 달했다. 삼성 출신 코스닥 기업 CEO 두 명 중 한 명이 삼성전자 출신인 셈이다.

삼성전자 출신 CEO가 타 계열사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삼성=삼성전자’라고 할 만큼 삼성전자가 삼성그룹의 핵심계열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삼성전자에는 뛰어난 인재가 많다는 뜻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삼성전자가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막대한 영향력도 중요한 이유가 된다. 즉 삼성전자 퇴사 후 ‘삼성전자 협력업체’를 운영할 수만 있다면 비교적 손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삼성전자가 협력업체를 선정하는 기준은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출신들은 그런 눈높이를 이미 잘 알고 있는 터다. 딱히 ‘전관예우’ 같은 게 없더라도 삼성전자가 요구하는 ‘스펙’을 맞추기가 다른 경쟁업체들보다는 수월할 수밖에 없다. 실제 삼성전자 출신 CEO들이 경영하는 다수의 기업들이 삼성전자 협력업체로 활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전자 외에는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SDS 등 여타 전자·IT 계열사 출신 CEO들이 비교적 눈에 띄었다. 또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와 회장비서실 출신 인사들도 적잖이 CEO로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Tip - 이렇게 조사했다

이번 조사는 삼성그룹 계열사 재직 경력이 있는 전체 상장법인 대표이사들을 대상으로 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가 각각 경영인명록이 수록된 전산정보를 바탕으로 1차 데이터를 추출했다. 전산정보를 가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삼성그룹 재직 경력이다.

삼성그룹 계열사는 2010년 4월 기준 총 67개사에 이른다. 이 중 ‘삼성’이라는 호칭이 안 붙은 기업들도 상당수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규모가 작거나 주요 변수가 되지 못하는 것으로 판단해 데이터 추출 대상에서 배제했다. 다만 제일모직, 제일기획, 호텔신라, 에스원, 서울통신기술 등 5개 주요 기업은 포함했다. 요약하자면 경영인명록 전산정보에 ‘삼성, 제일모직, 제일기획, 호텔신라, 에스원, 서울통신기술’ 등 6개의 키워드를 조건으로 걸어 CEO들의 삼성 재직 경력을 파악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추출된 1차 데이터를 다시 면밀히 살펴 ‘삼성’이라는 호칭이 들어갔으나 삼성그룹과는 관련이 없는 기업의 CEO들은 모두 배제했다. 또 현재 삼성그룹 계열사 CEO들도 제외했으며, 이재현 CJ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등 범 삼성가 일원들 역시 셈에서 뺐다. 단, 한 명의 CEO가 복수의 기업 대표이사를 맡고 있거나 하나의 기업에 복수의 대표이사가 있는 경우는 모두 중복 계산했다. 이런 경우는 크게 많지 않아서 전체 그림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매출액 기준으로 전체 법인의 순서를 재배열해 보았다. 어떤 CEO가 외형이 큰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물론 기업 외형이 CEO의 역량과 반드시 비례관계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하나의 기준을 세워 순서를 매긴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 조사 기준 시점

·유가증권시장 2010년 6월 말 기준

   (전체 대표이사 1050명)

·코스닥시장 2010년 7월초 기준(전체 대표이사 1227명)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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