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우 멜파스 사장

풍부한 무선사업·국제 경험 ‘소중한 자산’

멜파스는 터치스크린 업계의 대표주자다. 기술력과 외형 모두 업계 톱 수준이다. 특히 정전압식 터치스크린 부문에선 업계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휴대전화 등 단말기 업계가 정전압식 터치스크린을 본격적으로 적용하면서 매출은 그야말로 수직상승 중이다. 2008년 349억원이던 것이 지난해 1514억원으로 3배 가까이 불어났고 올해는 2500억원 달성이 유력시된다. 3분기 누적 매출이 1700억원에 이른다.

멜파스의 기록적인 성장에는 이봉우 사장의 공이 컸다. 2005년 부임하면서 멜파스의 실적이 급격히 개선됐다. 학내 벤처로 출발, 기술 개발에 역점을 두던 회사에 기획과 비즈니스라는 옷을 입혔다. 매출이 본격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것도 그의 부임과 함께였다.

이 사장은 1984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전자에서 근무했다. 퇴직 시 직위는 상무. 무선사업부의 상품기획팀과 경영기획팀 등에서 기획 업무를 담당한 기획통이었다. 무선사업에 눈이 밝은 덕에 멜파스의 기술력을 한 눈에 알아보고 당시만 해도 작은 벤처에 불과한 멜파스에 합류했다. 재정적으로 불안했던 멜파스의 지분을 인수한 것도 멜파스의 잠재력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 사장은 멜파스의 2대 주주다.

이 사장이 대표로 부임한 2005년 멜파스는 시장의 선두 자리를 ‘터치’하기 시작했다. 터치스크린의 전 단계인 휴대전화용 ‘터치키’를 내놓으면서다. 당시 회사의 핵심기술력인 지문인식 센서 기술을 십분 활용한 제품이었다.

삼성에서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된 것은 불문가지다. 무선사업에서의 풍부한 경험과 넓은 시야, 기술에 대한 이해력과 상품기획력이 멜파스의 기술력과 만나 이 사장의 핵심 슬로건인 ‘작지만 강한 멜파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회사 측 관계자는 이 사장의 경영 스타일은 중층적이라고 말한다. 일과 기술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고 혁신을 추구하지만 조직관리에선 소탈한 인간미가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출신이지만 멜파스의 벤처정신을 존중한다. 직원들과 소통도 중요시한다. 회사에 대한 비판도 허심탄회하게 듣는 편이다. 익명의 메일을 보낼 수 있도록 해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회사 측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주제를 주고 다양한 의견을 취합, 의사결정을 할 때가 적잖다”며 “직원과 적극적인 소통은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만족도와 충성도를 높이는 등 선순환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엔 ‘펀 경영’, ‘일과 생활의 균형’을 강조하는 등 직원 배려 경영이 한층 진화하고 있다. 이 사장의 모토 중 하나는 ‘즐겁게 바쁘자’다.

삼성에서 쌓은 경험은 멜파스의 해외진출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등으로 영토를 확장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2011년엔 노키아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지는 등 경영의 안정성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김철영 미래나노텍 사장

창의력 중시하는 ‘따뜻한 카리스마’

 

서른일곱 살 되던 2000년 청년 김철영은 기업을 일으키기로 결심했다. 아이템은 광학필름이라는 낯선 제품이었다. 이 시장은 당시 3M이 장악하고 있었다. 제품도 낯설고 시장도 선점된 상태에서 창업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직장은 튼튼했다. 삼성SDI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 95년부터 중앙일보의 기획 파트에서 적을 옮긴 상태였다. 주위의 만류가 없지 않았지만 그는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어려서부터 꿈인 ‘기업가’의 길에 들어섰다.

미래나노텍의 설립은 2002년. 직장을 나오고 2년은 창업을 위한 사전 준비 기간이었다. 삼성 시절 눈여겨 본 광학필름 기술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화학 전문가인 직장 후배도 합류했다. 첫 둥지는 서울대 창업보육센터에 틀었다. 오래 있지는 않았다. 미래나노텍의 혁신적인 광학필름인 UTE가 빠르게 시장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성장의 속도는 가팔랐다. 창업 6년 만인 2008년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고 이듬해에는 2684억원을 달성했다. 매출 60%가 수출에서 발생하는 등 매출 다변화와 글로벌화에도 성공한 상태다. 2012년 1조원, 2015년 2조원이 매출 목표다.

미래나노텍의 사훈은 ‘고민하는 사람만이 미래를 열 수 있다’이다. 이는 김 사장의 좌우명이며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관행대로 할 것이 아니라 고민을 거듭해 ‘창의력’을 발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 방침은 인사에서도 관철된다. 철저한 ‘성과주의’가 모토다. 고민은 창의력으로 이어지고 이는 성과라는 결실을 맺는다는 논리다.

성과를 중시하는 인사방침은 이른바 ‘스펙’ 중심의 관행에서 벗어나게 한다. 일단 입사를 하면 학력과 성별, 경력은 ‘초기화’된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건, 여자든 남자든 중요한 것은 성과이므로 창의력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일한 사람에겐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겠다는 방침이다.

성과주의를 원칙으로 한다고 해서 김 사장이 ‘메마른’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따뜻한 사람이다. 직원들과 소통을 몸으로 실천한다. 매주 직원들과 축구를 하고 여성 직원들이 중심이 된 볼링 동호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회식도 자주 갖는다. 노래방에선 아이돌 그룹의 최신곡을 불러 분위기도 띄운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의 중요성도 강조 사항이다. 먼저 마음을 열고 받기보다 먼저 주어야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제조업계에서 드문 ‘따뜻한 카리스마’를 가졌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창의력과 꿈을 향한 도전정신은 다양한 신제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필름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신규사업을 일으키고 있다. LED 기술을 활용한 조명과 가로등, 터치패널, 2차전지, 태양전지 등이 그것이다. 창의적인 도전으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발전하는 ‘전범’이 되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임화섭 가온미디어 사장

삼성 ‘시스템경영’ 도입 승승장구



가온미디어는 디지털 셋톱박스 전문 업체다. 삼성전자 종합연구소의 정통 엔지니어였던 임화섭 사장이 회사를 설립한 것은 2001년. 연구원 시절 방송 수신기에서부터 디지털TV에 이르는 멀티미디어 기술을 접한 것이 창업의 계기였다. 임 사장은 삼성전자에 입사한지 13년 만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사표를 썼고, 주변의 선후배와 힘을 합쳐 회사를 창업했다.

가온미디어는 창업 후 큰 굴곡 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창립 이듬해인 2002년 118억원에 머물렀던 매출액은 지난해 1424억원으로 증가했다.

가온미디어가 이렇게 꾸준히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임화섭 사장의 ‘시스템 경영’이 꼽힌다. 외형적인 규모는 중소기업에 불과하지만 조직 시스템과 프로세스는 ‘삼성’처럼 만들어 놨다는 얘기다.

우선 임 사장은 우수 인재 확보에 각별하다. 기술과 제품을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인재 확보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핵심인재라면 외국을 마다않고 달려가 직접 스카우트해 온다. 현재 이 회사의 전체 임직원 230여명 중 60% 정도가 엔지니어와 기술진이며, 10여명의 해외인력이 근무 중이다. 지난 2008년 경기도 성남시의 한 공단에서 경기도 분당으로 새 사옥을 지어 이전한 것도 우수인재 유치를 위해서였다.

성과는 직원들과 함께 나눈다. 해마다 연봉의 30~5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 적절한 보상이 직원들의 로열티를 높이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PS(초과이익배분제도)와 PI(생산성격려제도) 제도를 접목시킨 것이다.

글로벌 경영도 성공의 요인이다. 초기부터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걸었던 그는 지금도 틈만 나면 해외로 나간다. 1년의 3분의 1은 해외에서 보낼 정도다. 이 회사의 제품은 모두 60여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수출비중은 95%에 달한다.

최근에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기업 문화 정착에 나서고 있다.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주도적으로 사업 기회를 발굴하는 혁신 지향적 문화로의 탈바꿈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가온미디어는 지난 9년 동안 매출규모가 10배 이상 늘어난 것에서 드러나듯 압축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최근의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2007년 1202억원, 2008년 1643억원으로 증가하던 매출이 2009년 1424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올해 3분기까지의 매출이 1700억원을 돌파하며 지난해 위기는 일시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지만 단순히 눈앞의 위기를 모면하기 보다는 내실경영의 근간이 되는 고유한 조직문화 정립이 시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임화섭 사장은 중소기업으로서는 드물게 외부 컨설팅을 통해 문제점 및 이에 대한 개선점을 찾아가면서 새로운 조직문화를 정립해 나가고 있다.

홍성민 에스에너지 사장

저돌적 뚝심’의 태양광발전 견인차



가젤형 기업’이라는 말이 있다. 3년 연속 20% 이상 고속 성장하는 기업을 ‘가젤(gazelle)’이라는 동물의 점프력에 비유한 용어다. 에스에너지는 가젤에서도 특급에 속한다. 지난해까지 직전 3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은 70%가량. 올해도 지난해 1450억원보다 크게 늘어난 2300억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90억원에서 120억원으로 30%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에스에너지는 국내 1호 태양광발전 전문기업이다. 태양전지 모듈 생산과 태양광발전 시스템 구축이 주요 사업 분야다. 모듈 생산량의 경우 연간 230MW 분량으로 330MW의 현대중공업에 이어 국내 2위 규모다. 이러한 초고속 성장을 이끈 홍성민(51) 사장은 삼성전자 종합연구소 출신이다. 태양전지 분야의 1세대 개척자로 통하는 그는 1983년 연구원으로 입사한  이래 27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 보통 뚝심이 아니다.

홍 사장이 18년간 근무한 삼성전자를 벗어나 에스에너지를 설립한 것은 2001년. 그가 이끌던 태양광발전개발팀이 분사되면서다. 말이 분사지 사실상 구조조정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설명이다. 홍 사장의 말이다.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돈이 안 되는 사업 부문을 떼어낼 필요가 있었죠. 당시 국내 태양광발전 수요가 워낙 적었던 데다 해외에서도 대체로 시장이 미성숙한 상황이었습니다.” 

홍 사장은 자본금 3억원, 직원 6명의 단출한 규모로 창업했다. 초반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매출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낙도지역의 발전설비 공사나 정부의 시범보급사업에 모듈을 납품하며 근근이 버텼다. 2005~2006년, 드디어 흐름이 왔다. 태양전지가 차세대 녹색에너지원으로 급부상한 것. 삼성물산의 3MW급 진도 태양광발전소 등 대규모 사업이 수주되기 시작했다.

급성장 국면은 2008년, 해외 진출에 성공하면서 나타났다. 현재 에스에너지의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90%다. 특히 녹색에너지 분야의 강국들이 버티는 유럽이 주무대다. 유럽 제품에 비해 15~20% 싸면서도 저가의 중국산보다 훨씬 튼튼한 점이 먹혔다. 그뿐 아니다. 고객들의 요구에 대한 홍 사장의 기민한 대처도 한몫했다. 바로 친정인 삼성전자의 특기다. “2008년 초 독일에서 품질에 대한 불만이 접수되자마자 당일 직원들을 파견했습니다. 시공사의 실수 때문에 생긴 사소한 문제였지만 무상으로 수리했죠. 사후관리가 철저하다며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홍 사장은 저돌적인 경영스타일을 구사한다. 결코 에둘러 가지 않는다. 일례로 해외시장 첫 타깃이 독일이었다. 태양전지를 비롯한 녹색에너지의 본고장이다. “우선 적진에서도 본진을 쳤습니다. 독일 같은 나라에서 성능이 검증되면 해외에 어느 곳에서라도 통할 것으로 봤죠. 2015년까지 에스에너지를 매출 1조원, 영업이익 1200억원의 글로벌 브랜드로 키울 계획입니다.”

이창규 현진소재 사장

금융통에서 제조업 달인으로 변신

현진소재는 1978년부터 부산을 중심으로 금속단조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금속부품 생산업체다. 선박엔진을 주력으로 항공우주, 석유화학, 전력 분야의 핵심 부품을 생산해 왔다. 최근에는 금속단조 분야의 노하우를 풍력과 원자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접목하면서 재도약하고 있다. 30여년간 쌓아온 자유단조의 기술력을 적용해 생산하고 있는 풍력발전용 메인샤프트는 GE, 클리퍼 등 해외 대형 풍력업체 7곳에 판매되고 있다.

이 회사의 캐시 카우였던 선박엔진 자리는 이제 풍력발전용 제품이 대신하고 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선박엔진의 비중은 30% 수준으로 낮춰졌다. 반면 지난해 537억원이었던 풍력발전용 제품의 매출은 올해 900억원대로 성장하면서 안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에는 두산중공업으로부터 원자력발전 부품공급업체로 승인받아 원전 분야로도 본격적인 진출을 꾀하고 있다. 지난 2년간 풍력발전 사업과 함께 원자력 부문을 신성장동력으로 정하고 기술 개발에 주력한 결과다.

현진소재의 이러한 성장과 재도약의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이 바로 이 회사의 이창규 사장이다. 2세 경영인인 이 사장이 대표로 취임한 것은 1998년. 미국 보스턴대학 경영학 박사 출신인 이 사장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일하다 30대 초반에 회사를 맡게 됐다. 이는 세대교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단순 제조업이라도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분야로의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 또한 적지 않았다.

이 사장은 부친과 달리 경영을 체계적으로 배운 드문 엘리트였다. 그는 삼성경제연구소 재직 당시 금융파트를 담당하면서 국내 금융시장과 관련된 보고서를 여러 차례 내놓은 금융 전문가였다. 또 현진소재의 대표를 지내면서도 부산 동아대학교의 경영학부에서 재무관련 강의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금융통’이라는 그의 이력은 오히려 전통 제조분야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기반이 됐다. 기업의 투명성과 리스크 관리를 중시한 그의 경영철학이 재무적 투자자와 협력사간 상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시장의 변화에 맞춰 협력사나 사모펀드 등 직접금융과 손잡고 새로운 성장모델을 키운 것이 원가 경쟁력을 높여 효율성을 제고시켰다는 얘기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회사를 이어받은 그는 과감한 투자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취임 초기에는 조선업 호황에 맞춰 과감한 설비투자를 단행했으며, 조선업이 부진해지자 부즈앨런해밀턴의 컨설팅을 받아 그룹 로드맵을 세우기도 했다. 현진소재가 중소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투자였다.

이러한 그의 경영 능력은 실적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 사장이 대표로 취임한 이듬해인 1999년 189억원에 머물렀던 매출액은 초호황기인 2008년 4808억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0년 동안 25배 이상 성장한 셈이다.

현진소재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급성장에 힘입어 2012년까지 매출 1조원의 차세대 에너지부문 전문업체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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