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구소(SERI)는 2010년 12월3일 ‘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진로-향후 10년의 도전과 과제’라는 주제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불확실성 속에 갇혀 있는 가운데 한국 경제가 슬기롭게 미래로 나아갈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다.

 SERI가 제시한 ‘향후 10년의 도전과 과제’

“글로벌 불확실성, 내수확대로 돌파하자” 



한밤 중에도 수출차량 선적 작업이 한창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 경제가 대외 환경에 내성을 기르려면 수출 의존증을 벗어나 내수확대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왼쪽). 백화점 세일기간을 맞아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민간소비 증대가 내수확대의 근본 동력이다.

“향후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지금은 대침체기에서 새로운 균형으로 가는 과도기다.” 첫 번째 발제를 한 김용기 연구전문위원의 진단이다. 금융위기로 경제성장률 급락을 경험한 선진국들은 저성장 고착화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 금융 우위 경제 등 기존 컨센서스가 붕괴했지만 신(新) 질서는 형성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면 향후 다가올 ‘새로운 균형(New Equilibrium)’은 어떤 모습일까? 김 위원은 ‘저성장의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봤다. 선진국의 성장동력이었던 금융산업이 위축됐고, 각국이 국가부채 조정을 위해 재정긴축을 실시할 것이며, 국제통화질서 교란 및 보호주의 확산으로 교역량 감소가 우려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한국 경제는 금융위기 국면에서 빠른 회복세를 보였지만 대규모 재정투입 정책 덕을 본 게 사실이다. 게다가 위기 발생 초기에는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주식·환율시장이 타격을 받는 등 허약 체질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향후 한국 경제는 안정성과 성장성을 함께 강화하는 ‘안정성장’ 모델을 지향해야 한다는 게 김 위원의 제안이다. 특히 부문별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안정성장’을 위한 핵심 조건들은 무엇일까. 우선 신흥시장 중심의 수출주도형 성장 모델을 보완하고 내수확대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불확실한 수출환경 속에서도 지속성장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저성장의 시대 맞아 ‘안정성장’ 추구해야



국내 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은 외환위기 직전 60% 수준에서 2009년 53%까지 하락했다. 1997년 이후 민간소비 증가율은 연평균 3.30%로 GDP 증가율 4.22%보다 1%포인트 가까이 낮다. 1인당 GDP 2만달러 무렵의 다른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한국 민간소비 비율은 4~8%나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민간소비가 위축된 것은 가계 재무구조 악화로 가처분소득이 감소한 데다, 소득 불안정성 증대로 소비심리가 좀체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잠재수요를 충족할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크게 세 갈래로 해결책을 제시했다. 우선 신산업 육성을 통해 새로운 소비수요를 창출하자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에 비해 매우 취약한 서비스업을 육성하자고 강조했다. 의료, 교육, 관광 등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면 해외 소비 상당 부분을 국내로 돌리는 게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두 번째로 재정(財政)의 적극적인 역할이 매우 긴요하다는 주장이다. 소비심리를 증진하려면 소득감소, 실업 등 가계의 미래 불안감을 해소해줘야 한다. 가령 실업급여제도 등을 한층 강화한다면 소득흐름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 중장기적인 재정 건전성도 확보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소득기반의 강화다. 일자리 창출은 최우선 과제다. 청년실업, 여성의 경력단절, 인구 고령화 등은 소비확대를 막는 근본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자산유동화의 활성화도 필요하다.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과도하게 묶여 있는 유동성을 금융자산으로 전환시켜 민간소비 여력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의 산업구조도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반도체, 자동차, TV 등 주력 수출산업은 경제위기에도 세계 시장점유율을 오히려 늘리는 등 휘파람을 불고 있다. 일본이 한국 기업들을 부러워할 정도다. 하지만 한국 산업은 IT산업과 전통 주력산업에 집중된 구조인 데다, 중국 등 특정 신흥시장을 고집하는 모양새다. 또한 산업 및 기업 간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신성장동력 발굴과 고용창출이 미흡하다는 문제도 있다.

‘산업 입체화’로 신성장 기반 갖추자



따라서 한국 산업의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구조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그 방향은 ‘산업의 입체화’로 제시됐다. 복득규 연구전문위원은 “장기 안정성장을 이어가는 OECD 국가의 산업구조를 분석한 결과 한국은 산업 포트폴리오, 시장다변화, 전방(최종수요부문) 연관효과 측면에서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세 가지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입체적인 산업구조 개편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복 위원은 몇 가지 구체적인 전략도 내놓았다. 먼저 음식료, 제지, 의류 등 비주력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역발상이 눈길을 끈다. 기존 산업의 경쟁력 제고 역시 포트폴리오 강화에 보탬이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글로벌 트렌드에 부응하는 신산업 육성은 기본이다. 그는 또 한국 경제와의 적합성이 높은 ‘핵심신흥시장(KEM·Key Emerging Market)’ 30개국을 집중 공략해 수출다변화를 꾀하자고 제안했다.

단일제품(단품) 제조에 치중한 산업구조를 시스템 및 융·복합 제품 개발로 바꿔나가자는 주장도 귀담아들을 대목이다. 가령 휴대전화 제조·판매에 그치지 말고 이동통신시스템을 개발해 판매하면 훨씬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저(低)고용 및 이중구조(정규·비정규직 및 대·중소기업 간 근로여건 격차)가 심화된 노동시장을 개편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이른바 ‘한국형 유연·안정(Flexicurity) 고용시스템’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요지는 임금과 근로시간을 유연화시키는 한편 구직자 맞춤형 고용안전망을 구축하고 직무능력교육 제도를 강화하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한국 금융시장의 고질적인 불안정성을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한국은 금융시장 개방도와 외국인 의존도가 높아 대외적 충격에 취약성을 자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핫머니 규제, 외환건전성 감독, 외환·자본시장 개선, 금융기관 경쟁력 제고 등이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됐다.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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