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콜마는 화장품 ODM(제조업자 개발생산) 기업으로 유명하다. 아모레퍼시픽, LG생활건강 등 유명 화장품 업체들의 상당수 제품을 한국콜마가 개발해 공급한다. 한국콜마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거치면서도 연평균 20%씩 성장했다. 콜마파마, 씨앤아이개발, 한국콜마경인, HNG, 콜마비앤에이치 등 자회사를 둔 한국콜마그룹은 2015년 매출 ‘1조원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정관 무역협회 부회장은 6월 27일 열린 ‘이달의 무역인상’ 수상식에서 “정부는 대기업 중심 정책 대신 한국콜마와 같은 중견기업을 육성해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를 다시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한국기업 매출의 17% 담당

한국의 중견기업은 국가 전체 기업 수의 0.1%인 3558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견기업 매출액은 620조4000억원으로 국내 기업 총매출액의 17.3%를 차지한다. 또 115만3000명을 고용해 전체 고용 인력의 5.5%(2015년 기준)를 담당한다. 한국 경제에서 중견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하지만 중견기업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중견기업의 가업승계 지원과 장수 기업 육성을 위해 가업상속공제, 명문 장수 기업 등의 정책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세율과 엄격한 사전·사후 요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결과 기업을 계속 성장시키는 데 한계를 느끼는 기업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덩치가 커질수록 규제가 심해져 굳이 덩치를 키울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지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100년이 넘은 장수 기업은 7개에 불과하다. 독일 히든 챔피언(1300개 기업)의 평균 업력이 60년 이상이며, 30% 정도가 100년 이상 된 장수 기업인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성장세가 둔화하면서 주요 국가들이 산업구조 강화를 위해 중견기업 육성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기업 집중이 심하고 중소기업의 성장세가 미약한 한국에서 중견기업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청년 실업난이 지속되면서 중견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11%대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을 고려하면 중견기업이 미래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전반적인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국 중견기업의 연평균 고용 증가율은 12.7%로 전체 기업의 고용 증가율(3.4%)보다 9%포인트나 높다.



한국콜마의 자동화 된 화장품 제조라인. <사진 : 한국콜마>

인지도 낮아 신규·전문인력 확보에 어려움

미국의 경우에서 중견기업이 실업 해소에 크게 기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전후해 미국에서 창출된 일자리 수를 기업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에서는 10%쯤 줄었고 중소기업은 유지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중견기업에서는 3~6%가량 일자리가 증가했다.

국내 중견기업의 경우에도 연봉과 복지 프로그램 등 일자리의 질이 중소기업보다 훨씬 우수하다. 대기업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다. 취업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연봉의 경우 중견기업에 취업한 대졸 초임은 2500만~3000만원이 36.7%, 3000만원 이상이 46.9%를 차지할 정도로 높다.

중견기업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중견기업은 여전히 구직자들의 대기업 선호 현상 및 중견기업에 대한 인식·정보 부족으로 전문 인력 확보난, 신규 인력 채용난, 인력 이탈 등 삼중고를 겪고 있다. 2013년 실태 조사 결과 중견기업의 인지도는 대기업의 31.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업계는 정부가 나서 청년 실업 문제와 중견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우수 중견기업 채용 정보 제공,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한 직원 복지 및 인력 양성 프로그램, 관련 조세제도 지원 정책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빈프리트 베버 독일 만하임대 교수는 7월 20일 조선비즈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주관하는 ‘2017 중견기업 혁신 국제 컨퍼런스’에 기조연설자로 나서 독일 인재들이 중견기업(미텔슈탄트)에 취직하는 이유와 한국의 중견기업 육성 방안 등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대다수 중견기업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체 기술 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중소기업청이 실시한 ‘2016년 중견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의 자체 기술 개발 비율은 75.5%에 달했다. 외부 기관과 공동 개발하는 비율은 15.8%였고, 위탁을 통한 개발은 5.2%에 불과했다.

중견기업은 이런 노력을 통해 다양한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중견기업들은 평균 39.2건의 국내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7.3건의 해외 지식재산권을 확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지식재산권의 경우 상표권(21.4건), 특허권(12.8건), 다자인권(3.6건), 실용신안권(1.4건)순이었다. 해외 지식재산권은 상표권(4.9건), 특허권(1.9건), 디자인권(0.4건), 실용신안권(0.1건)의 순으로 나타났다.

중견기업의 지식재산권 확보 노력은 해외 진출 과정에서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중견기업의 약 40%가 해외 수출 실적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 지역은 중국 57.1%, 미국 40.6%, 일본 36.0%, 베트남 20.8%, 대만 13.0%였다.


중견기업 7%가 중소기업 회귀 검토

중견기업은 한국 경제에 기여하는 부분이 크지만 내수 부진, 동종 업계의 과당 경쟁, 인건비 부담, 해외 수요 부진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어려움은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난관으로 작용한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발전하지 못하면서 한국에는 100년 이상된 장수 기업이 7개에 불과하다. 상당수 중견기업이 규제가 적은 중소기업으로 회귀를 검토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중견기업의 중소기업 회귀 검토 비중은 2013년 14.7%에서 2014년 8.9%, 2015년 6.9%, 2016년 6.9%를 기록했다.

중견기업연합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으로 회귀를 검토하는 요인은 조세 혜택(50.0%), 금융 지원(24.8%), 판로 규제(15.0%), 기술 개발 지원(5.6%)순으로 나타났다.

2013년 설립된 중견기업연합회는 정부, 국회와 수없이 만나 중견기업 육성과 발전 필요성을 피력했고 많은 공무원과 국회의원이 공감했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구체적인 데이터와 기존의 성장 전략을 재검토해 중견기업의 가치와 비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약 산업 지원에 대한 목소리도 크다. 섬유·의복·가죽·신발 등 과거 한국 경제를 이끈 전통 제조 중견기업에는 우수 인재 및 금융 지원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과학기술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영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도 전통 제조업을 대상으로 우수 기술력 유지 및 강화 지원 정책과 신산업 분야 지원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해외의 중견기업 육성 전략을 참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관련 업계는 2017년 1월 영국 정부가 발표한 ‘포스트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를 향한 산업 전략 및 정책 제안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영국 정부는 건강 및 의학, 바이오 과학 및 바이오 기술 분야를 연구·개발(R&D) 집중 지원 8대 업종으로 선정했다. 4차 산업혁명이 세계적인 트렌드로 부상했지만 이에 대한 한국의 준비 수준은 전 세계 139개국 중 25위, 4차 산업 관련 법률 시스템은 62위에 불과하다.



한 제조기업 근로자가 최첨단 it기술을 활용해 제품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 r&d 투자 늘려야”

일각에서는 중견기업이 세계 시장의 변화에 대한 민첩한 적응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국내 중견기업의 R&D 투자는 매우 저조한 수준이다. 중소기업청과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올 초 발표한 ‘2016년 중견기업 실태 조사’에 따르면 100개 기업 중 80개 기업은 R&D 투자에서 손을 뗀 것이나 마찬가지다. 구체적으로 중견기업 3558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1876개(52%)가 R&D 투자(2015년 기준)를 전혀 하지 않았다.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이 1% 미만인 곳도 977개(27.5%)에 달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부가 대통령 직속으로 4차 산업혁명 위원회를 설치키로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정책적 결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련 업계는 부처 간 칸막이를 걷어내고 핵심지능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개발 및 선진화, 신산업 분야의 연결·융합·지능화는 물론 경제·사회·고용·교육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친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해외 국가들이 중견기업 육성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펼친다는 점을 고려해 한국 실정에 맞는 산업 분야 간 융·복합을 통한 생산·소비 과정은 물론 사회 전반의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독일 ‘인더스트리 4.0’, 일본 ‘7대 추진 전략’, 중국 ‘중국제조 2025’ 등 각국은 4차 산업혁명 선도 전략을 펼치고 있다.

유병규 산업연구원 원장은 “적극적인 기술 개발과 산학연, 국가 간 협력을 통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에 이르는 성장 경로를 내실화하고, 정부·국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해 산업 전반의 성장 패러다임 변화를 견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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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중소기업·대기업
중견기업특별법상 중견기업은 ‘자산 10조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이 아니면서,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을 졸업한 기업을 뜻한다. 업종별로 3년 평균 매출액이 400억원(숙박 및 음식업)에서 1500억원(1차금속 제조업 등)을 초과하는 기업 또는 자산 총계 5000억원 이상인 기업이 해당된다. 중소기업은 대체로 종업원 300명 이하, 매출은 최대 300억원 이하의 기업을 가리킨다. 대기업은 계열사 자산 합계가 10조원 이상인 기업 중 공정거래위원회가 ‘상호출자제한·채무보증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한 기업이다.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
매출이 40억달러 이하인 기업 가운데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3위 또는 소속 대륙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업을 뜻한다.

plus point

중견기업 성장 걸림돌 가업승계 문제

승계 문제는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로 지적된다. 지나친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에 회사 키우기를 꺼리는 것이다. 중견기업들은 가업승계 걸림돌로 상속증여세 부담, 복잡한 지분구조, 업격한 가업승계 요건 등을 꼽는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가업승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강하다. 재벌 대기업의 경영권이 경영 능력과 관계없이 2·3세로 세습되고, 상속받은 후계자들의 불법·탈법 경영이 반복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이나 롯데그룹의 최고경영자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경영권 승계 다툼이 대표적이다.

이동기 중견기업연구원장은 6월 29일 서울 쉐라톤서울팔래스호텔에서 열린 ‘명문장수 기업 만들기 전략포럼’에서 “미국처럼 경영과 소유가 분리된 체계가 일반화하는 만큼 가업승계라는 용어 대신 ‘기업승계’라는 표현을 사용해 부정적인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경영의 차원에서 기업승계는 별도로 관리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80%, 많게는 90%가 기업승계를 통해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고 있다.

박지환 조선비즈 성장기업센터 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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