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은 100%에 가깝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보좌관을 지낸 케빈 해셋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경기 침체를 단언했다. 그의 예측은 충격적이지만 새롭지는 않다. 이미 전 세계인이 코로나19로 인한 실물경제의 위축을 충분히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공급망(supply chain)은 붕괴하고 있고 아시아에 이어 미국, 유럽 등지로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계속되면서 소비 시장은 얼어붙었다. 이제 전 세계는 이 같은 실물경제의 충격이 금융시장의 붕괴로 이어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각국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어선 연쇄 통화·재정 정책을 쏟아내며 금융시장으로 튀고 있는 불씨를 잡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우리가 전대미문의 실물·금융 복합 위기에 직면했다고 말한다. 지금 이 시점에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지 못한다면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장기 침체에 들어설 것이란 위기론이 팽배하다.


실물서 시작돼 금융시장으로 전이

코로나19 사태는 아시아 외환 시스템 문제로 빚어진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미국 대형 금융기관의 부실로 촉발된 2008년 금융위기 등 앞서 겪은 두 번의 위기와 비교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이 두 차례의 위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2008년 금융위기의 경우 과잉 투자, 금융기관의 건전성 문제 등 두 가지 환경적 특성이 있었고 이는 금융위기 발발 후 디레버리징(부채 축소) 경기 부양과 회복에 부담을 줬다는 분석이다. 한 차례 풍파를 겪은 후 현재는 금융기관의 위험 자산 투자 규제가 강화돼 자산 건전성이 높아진 상태다.

무엇보다 코로나19발(發) 위기는 실물경제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특히 실물경제의 위기가 ‘부채’라는 뇌관을 타고 금융위기로 전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현금 흐름이 끊긴 자영업자와 기업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며 금융 시스템 붕괴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와 기업의 부채 규모는 3717조577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두 배에 달한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개인 사업자 대출 규모는 2017년 말 371조6000억원에서 2019년 말 474조1000억원으로 2년 새 27.6% 늘었다. 4월 회사채 대란도 우려 요소다. 올해 우리 기업이 갚아야 할 회사채는 총 50조8727억원이다. 4월에 상환해야 할 물량은 6조5495억원, 6월까지는 14조6000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미국 금융 시장의 고위험 부채도 금융시장 붕괴의 도화선으로 부상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2018년 말 미국의 고위험 부채는 2조4000억달러로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두 배 넘게 증가했다. 특히 신규 레버리지론(사모펀드나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할 때 피인수 업체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빌리는 돈)이 큰 폭으로 증가했는데 이 레버리지론 투자자의 대부분은 기관이다. 이들이 투자한 내역 중 레버리지론과 이를 기초자산으로 증권화한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이 68%에 달한다. CLO는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 대출에 직접 참여하기 어려웠던 보험사, 연기금 등이 투자할 수 있다.

미국은 고위험 부채들을 은행을 통해 지원해 정상화하기보다는 구조조정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2008년 금융위기를 넘어서는 충격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기 불씨 조기 진화 관건은 재정

정부가 금융위기 불씨를 조기에 얼마나 잘 진화할지가 관건이다. 미국은 제로금리 정책, 무기한 양적완화, 금융기관 대상 대규모 자금 공급, 가계 및 기업 자금 지원 조치를 발표한 데 이어 3월 25일(현지시각) 2조달러 규모의 슈퍼 경기 부양책을 확정했다.

한국 정책 당국도 이에 못지않은 강한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내놨다. ‘100조원+α 규모의 민생·금융 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이다.

대대적인 시장 안정화 조치에도 코로나19발 금융시장 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부채 위험이 큰 신흥국의 통화 가치가 하락하고 자본 유출로 이어지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최고의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로 돈이 몰리면서 초단기 국채인 3개월 만기 국채 수익률이 한때 마이너스로 돌아서기도 했다(현지시각 3월 25일 기준 -0.038%). 전 세계 증시는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한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한 달 새 2008년 금융위기를 능가하는 수준으로 폭락한 상태다.

각국의 부양책에 증시․환율이 진정되는 듯하지만 약발이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다. 한마디로 금융시장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시계 제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줄도산과 실업 대란을 막기 위해 더 과감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니 라이프지거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와 유동성 공급 정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기지 담보 유예뿐 아니라 식량이나 임대료 등에 대한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 등을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에마뉘엘 새즈 UC 버클리 교수는 미국이 검토 중인 헬리콥터 머니(개인에게 현금을 주는 것)가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적고 그러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회사가 파산한다면 이들이 일자리를 다시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그는 정부가 ‘최종 구매자’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 매출 80%가 줄어든다면 정부는 기업이 감원하지 않는 조건을 제시하며 손실을 보상하는 식이다. 이 같은 조치들은 대규모 재정이 투입돼야 하지만 추후 기업의 대규모 파산과 일자리 감소에 따른 천문학적 비용을 따졌을 때 부차적인 문제라는 분석이 대세다.

케네스 로코프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정부가 건전한 대차대조표를 가져야 하는 핵심 이유는 최근 같은 ‘전쟁 상황’에서 모든 것을 지원하기 위해서다”라며 “이런 정책을 펼 수 없는 나라들은 단기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고통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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