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문을 연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만큼, 디지털 헬스케어를 통한 향상된 의료 서비스 제공이 필수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고령화 속도가 의료 인력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른 데다 여전히 성행 중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현 의료 시스템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세계 주요국은 일찍부터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육성 정책을 펼쳐왔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각종 의료 정보가 집적된 빅데이터가 필수적인 분야인 만큼 민간의 힘만으로는 성장이 불가능한 탓이다. 앞서나가는 해외 주요 정부의 디지털 헬스케어 육성 사례를 살펴봤다.


케이스 1│덴마크
ICT 인프라 완비된 ‘슈퍼 병원’ 구축

덴마크는 세계적으로 보건·의료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활용을 자랑하는 나라다. 원격 의료를 포함해 국민 복지 증진을 위한 ‘커넥티드 케어(사람과 기술·의료 데이터를 연결하는 것)’의 표준화를 최초로 제안한 국가다.

현재 유럽의 원격 의료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덴마크 정부는 2012년 9월 국가 차원의 ‘원격 의료 실천 계획(telemedicine action plan)’을 발표하고 원격 의료 솔루션을 전국에 보급했다. 이 계획은 덴마크 정부가 강조하는 디지털 복지 개혁안의 주요 구성 요소다. 1100만유로(약 1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진료 과정 일부에 원격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 확립 △만성질환 환자 원격 관리 △원격 정신과 치료 시연 및 보급 등을 시행하고 있다.

원격 의료가 전부는 아니다. 덴마크는 2029년까지 16개 병원을 신축할 계획인데 이 중 8곳을 ICT 스마트 헬스케어 인프라를 완비한 ‘슈퍼 병원(super hospital)’으로 짓는다. 병원 신축과 동시에 낙후한 공공 보건 시설을 40개에서 20개로 대폭 축소하는 대신 스마트 헬스케어 기술을 중심으로 한 차세대 의료 복지 시설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환자의 평균 입원 일수를 5일에서 3일로 줄인다. 일례로 최초의 ‘슈퍼 병원’으로 올해 개원할 예정인 오덴세대학병원은 23만4000㎡(약 7만 평) 부지에 조성되는 약 1조2000억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다.


핀란드 헬싱키대의 ‘가상 병원’에서 원격 진료 간호사가 환자의 상황을 듣고 있다. 사진 헬싱키대
핀란드 헬싱키대의 ‘가상 병원’에서 원격 진료 간호사가 환자의 상황을 듣고 있다. 사진 헬싱키대

케이스 2│핀란드
국가 바이오뱅크 바탕으로 ‘가상 병원’ 운영

핀란드는 1950년대부터 전 세계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환자 의료 기록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해 온 국가다. 1970년대부터 암 정보를 보관하는 기록소도 설립·관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 주도의 환자 의료 기록 통합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현재 전 세계 최고 수준의 ‘환자 의료 기록 전자 문서화(electronic medical record)’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의료 데이터 관리에서 앞서나가는 것이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핀란드 정부는 2013년 인체 시료(humanbiological sample)를 활용한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바이오뱅크법’을 제정·시행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국가 차원의 바이오뱅크를 구축했다. 구축된 바이오뱅크는 의료기관뿐 아니라 법에서 정한 규정에 따라 민간 기업도 비식별화한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2018년에는 전 국민의 유전자 정보를 관리하는 기구인 ‘국립유전자센터’를 개소했다.

특히 핀란드는 그간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해 온 많은 양의 국민 보건·의료 데이터를 활용해 국가 주도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인 ‘가상 병원(virtual hospital)’을 도입했다. 이는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 향상 및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의료 서비스 품질의 제고를 목표로 하는 원격 의료 전문 병원이다. 2012년 정신과 진료 부문에서 시범적으로 처음 도입한 ‘가상 병원’은 2014년부터 헬싱키대학병원을 포함한 5곳의 대학병원 내 20개 진료 부문(부인과·소아과·심장내과·종양내과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케이스 3│영국
정부 보건부 산하에 전담 조직 운영

영국은 보건부 산하에 디지털 헬스케어 추진을 위한 전략 수립, 프로그램 운영 및 감사 전문 조직인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두고 있다. NHS는 디지털 혁신 기술을 활용해 영국의 공공 보건과 의료 서비스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뚜렷한 방향성 아래 구글 라이프 사이언스의 자회사 베릴리(Verily), IBM, 필립스 등 다수의 글로벌 기업과 함께 수많은 디지털 헬스케어 테스트베드(시험장) 사업을 하고 있다.

NHS의 주요 디지털 헬스케어 계획은 △가전제품 센서를 활용한 환자 모니터링 △데이터 분석을 통한 만성질환 예측 △웨어러블 기반 모바일 셀프 건강 관리 △원격 교육 및 의료를 통한 셀프 건강 관리 지원 등이다. 실증을 통해 공공 의료 시스템에 다양한 기술이 있는 기업이 참여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장경국 딜로이트 컨설팅 이사는 “영국은 정책적인 지원자 관점이 아닌 사용자 관점에서 국가 차원의 디지털 헬스케어 도입 영역을 정의하고, 국가 기관이 검증된 제품 또는 서비스 도입까지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식품의약국 (FDA) 본부. 사진 블룸버그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식품의약국 (FDA) 본부. 사진 블룸버그

케이스 4│미국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 최소화 나서

미국은 유럽보다는 늦은 2017년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가장 보수적인 규제 기관이자, 의약품 및 의료 기기 승인에 가장 엄격하고 신중한 기관으로 꼽힌다. 그러나 FDA는 2017년 7월 ‘디지털 헬스 이노베이션 액션 플랜’을 발표한 후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 위주로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규제를 최소화하고 기술 발전을 수용하고 있다.

일례로 2018년 4월 FDA는 최초로 인공지능(AI)을 적용한 당뇨병성 망막증을 진단하는 기기인 ‘IDx-DR’을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이 기기는 망막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IDx-DR’ 서버에 올리면 AI 알고리즘으로 영상을 분석해 당뇨병성 망막증을 진단한다. 안과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한 경우와 12개월 내 재검사가 필요한 증상 등을 진단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스스로 영상을 분석하기 때문에 안과 전문의의 별도 해석 없이 일반 의사도 사용할 수 있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IBM과 구글 등 미국에 기반을 둔 글로벌 대기업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상용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데다 정부 차원의 규제 완화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앞으로 미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를 것”이라고 했다.


plus point

미국과 다른 한국, 높은 규제의 벽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규제다. 미국은 2017년 이후 규제 혁신을 통해 민간 중심의 디지털 헬스케어 연구·개발(R&D) 및 활성화를 유도하고, 동시에 의료 데이터 통합처럼 정부 차원의 정책 추진이 불가피한 영역의 경우 정부 주도로 정책을 추진하는 병행 전략을 취하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해외 디지털 헬스케어 규제 개선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기관이 미국 73개 기업을 중심으로 최근 10년간 원격 의료, 의료 정보 활용, 기기 인증 등의 규제 개선 추이를 파악한 결과, 2010년에는 약 26%에서만 원격 의료 등 완전한 서비스가 가능했지만, 지난해부터 모든 서비스가 가능한 것으로 개선됐다.

반면 한국은 의료법, 개인정보 보호법 등에 따라 대부분의 서비스가 반쪽짜리에 머물거나 구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 관계자는 “한국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이 추진되고 있기는 하지만, 글로벌 규제 개선 추세와 비교하면 여전히 매우 미흡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김문관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