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섭 포항공대 컴퓨터공학·생명과학 학사, 동 대학원 전산생물학 박사, 스탠퍼드대 방문연구원, KT종합기술원 컨버전스 연구소 팀장, 성균관대 디지털헬스학과 겸임교수, ‘의료 인공지능’ ‘디지털 헬스케어 - 의료의 미래’ 등 저서 / 사진 최윤섭
최윤섭
포항공대 컴퓨터공학·생명과학 학사, 동 대학원 전산생물학 박사, 스탠퍼드대 방문연구원, KT종합기술원 컨버전스 연구소 팀장, 성균관대 디지털헬스학과 겸임교수, ‘의료 인공지능’ ‘디지털 헬스케어 - 의료의 미래’ 등 저서 / 사진 최윤섭

‘규제’는 한국 디지털 헬스케어를 가로막는 주범으로 지목된다. 대표적으로 원격 의료는 20년간 여러 차례의 시범 사업에도, 아직도 ‘한국에서 불가능한 사업’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긴급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규제 샌드박스’로 임시 허가를 받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나마도 ‘재외국민 대상 비대면 의료 서비스’에 국한되고, 국내 비대면 의료 서비스 허용은 여전히 넘어야 할 난제가 많다.

‘이코노미조선’은 7월 8일 서울 태평로 한 카페에서 최윤섭 디지털 헬스케어 파트너스 대표를 만나 “어떤 규제를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최 대표는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무작정 규제 완화를 외치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의료는 다른 산업과 달리 사람의 목숨과 건강이 달린 문제입니다. 다만 불필요한 규제는 축소하고, 불확실성이 낮은 합리적인 규제를 만들어야죠.”

미래 의료학자이자 스타트업 투자가인 최 대표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가다. 그가 집필한 700쪽 분량의 ‘디지털 헬스케어- 의료의 미래’는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바이블로 통한다. 이번 커버 스토리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읽은 것도 최 대표의 책이었다.

최 대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전문가 협의체 자문위원으로서 규제 혁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날도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에서 열리는 식약처의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최 대표에게, 질문을 바꿔 ‘바람직한 규제’에 대해 물었다.


규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의료는 국민 건강과 국가 재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다. 사업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규제 완화가 옳겠지만, 전체를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규제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강화해야 한다. 다만 산업 발전을 불합리하게 저해하는 규제는 축소할 필요가 있다. 혁신의 성과가 환자들에게 적시에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규제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요즘 ‘규제 과학’에 대해 많이 강조한다. 새롭게 나타난 기술의 속성이 과거의 규제와 맞지 않을 때, 단순히 ‘규제를 푼다’는 접근 방식을 취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어떤 과정을 거쳐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가’와 ‘어떤 규제가 합리적인가’ 등을 과학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또한 불확실성이 낮은 규제가 좋은 규제다. 새로운 의료 기기에 대한 허가를 신청한다면, 심사 기준이 명확해서 허가 여부나, 등급 부여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야 한다는 얘기다. 국제적인 규제 기준과 동조화도 중요하다. 한국에서 사업하는 데 필요한 인허가 요건과 미국에서 필요한 요건이 다르면 시장 확대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과학적인 규제’의 예시에는 어떤 것이 있나.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2017년에 내놓은 ‘‘Pre-Cert(Pre-Certification)’ 프로그램이다. 직역하면 ‘사전 승인’인데, 제품이 아닌 기업을 심사한다는 개념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에 따라, 의료기기는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로 확장되고 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특성상 업데이트할 때마다 인허가를 새로 받기도 곤란하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의 특성에 맞게, 제품이 아니라 이를 개발하는 기업의 자격요건을 심사하기로 한 것이다. 대한상의에서 열리는 회의도 ‘한국형 Pre-Cert’를 올해 내에 도입하기 위한 것이다.”

DTC 유전자 검사 서비스 관련 규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관련 업계에서는 ‘포지티브’ 방식이 아닌 ‘네거티브 방식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분야에서 미국은 한국에 비해 훨씬 규제 강도가 약하다. 한국은 특정 항목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검사를 허용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를 빼고 보면, 현재 DTC 유전자 검사가 가능한 항목 중 질병과 직접 관련된 것은 없다. 위험성 때문에 시범 사업을 통해 순차적으로 풀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 동조화를 위해서라도 더 전향적으로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장 오랫동안, 가장 첨예하게 규제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됐던 비대면 의료도 물꼬가 트이는 것 같다. 최근 4차산업혁명위원회에서 해커톤을 통해 국내 비대면 의료 범위를 선정하기도 했는데.
“변화가 일어나면 수혜받는 곳이 있는 반면, 피해입는 곳도 생긴다. 그런 쪽에는 일방적인 피해를 받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하고, 어떤 식으로든 보상해 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좀 더 수렴해야 하는데, 아직까진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원격 의료에 반대하는 이해 관계자는 주로 의료계, 그중에서도 1차 의료기관 관계자들이다. 이들이 반대를 굽히지 않는 이유 중 합당한 부분이 있다. 원격의료의 전면 허용 시 대형 병원 환자 쏠림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의료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이슈도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의료 전달 체계, 저수가 문제 등이 있다. 정부에서 제안하는 안들이 있기는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코로나19로 대구에 내려갔던 간호사 수당도 제대로 지급이 안 된 상태이지 않은가. 원격 의료의 책임 소재 문제도 있다. 결국 정부와 의료계 간 신뢰의 문제다. 신뢰 관계가 없으면 원격 의료에 대해 어떤 보완책을 제시해도 믿지 못할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개인의 데이터를 중심으로 지금껏 없었던 의료를 제공한다. 이에 대해, 기업 등이 ‘나를 감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데.
“그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비식별화’, ‘가명화’ 등의 원칙이 필요하다. 최근 개정된 ‘데이터 3법’의 핵심이기도 하다. 쉽게 설명하면,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사이에 제삼자가 암실을 만들어, 개인 신상을 식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내 데이터가 유출될까 봐 불안하다면, 데이터 제공에 동의하지 않거나,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개인이 동의하지 않은 데이터는 어떤 경우에도 가져갈 수 없다.”

규제 발전이 더디다면, 규제를 피해서 산업이 성장하는 방법은 없을까.
“디지털 헬스케어와 의료는 그 영역이 완전히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의료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 디지털 헬스케어도 많다. 예를 들면, 명상 애플리케이션(앱) ‘마보’, 다이어트 앱 ‘눔’, 수면 관리 앱 ‘슬립 사이클’ 등은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의료에 해당하지 않아 인허가가 필요 없고, 보험 급여와도 관계가 없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전은 규제의 발전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디지털 헬스케어 발전을 위해 제언을 한다면.
“식약처나 심평원 같은 규제 기관에 지원을 늘려야 한다. 좋은 규제가 나오려면 조직과 인력,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식약처는 지난 몇 년간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여, 합리적인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서 업계의 호평을 받아왔다. AI 의료 기기, 3D 프린터 등의 영역에서는 FDA보다도 먼저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문제는 시스템의 부재다. 식약처에는 여전히 디지털 헬스케어 전담 조직도 없다. 현재까지 임시 조직인 ‘태스크 포스(TF)’로 성과를 내왔지만, 정식 직제화가 필요하다. 심평원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일찍부터 디지털 헬스케어 전담 조직을 만든 FDA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전문 인력 확충도 필요하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규제 전문성의 양과 질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산도 필요하다. 이건 보건복지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고,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조직 구성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가 나서야 하는 과제다.”

최상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