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LG화학 마곡R&D캠퍼스. 생명과학사업본부의 신약연구센터와 임상개발센터가 들어서 있다. 사진 LG화학
서울 강서구 LG화학 마곡R&D캠퍼스. 생명과학사업본부의 신약연구센터와 임상개발센터가 들어서 있다. 사진 LG화학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을 이끄는 인물들을 보면 LG화학(옛 LG생명과학) 출신이 많다.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 김용주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 대표, 박순재 알테오젠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조중명 대표와 김용주 대표는 LG생명과학 연구소장 출신이다. 조 대표는 2000년 크리스탈지노믹스를 설립했고, 국내 바이오 벤처 1호 신약 ‘아셀렉스’를 개발했다. 골관절염의 증상이나 징후를 완화해주는 의약품으로, 2015년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산 신약 22호로 허가받았고 현재 국내 시판 중이다. 터키·중동 등 19개국을 대상으로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김용주 대표가 창업한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여러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항체-약물 접합체(ADC)’로, 약물에 특정 암세포의 항원 단백질을 공격하는 항체를 붙이면 암세포만 찾아가 약물을 전달해 제거한다.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는 지난해 총 4건, 1조5000억원 규모의 DAC 기술을 수출했다. 박순재 대표가 이끄는 알테오젠은 정맥주사를 피하주사 형태로 바꿔주는 기술 수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기술 수출 규모만 4조원이 넘는다.

벤처 창업만이 아니다. LG생명과학 출신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 곳곳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삼수 보령제약 대표, 이정진 종근당바이오 대표이사 부사장 등이다.

LG생명과학 출신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배경은 LG그룹이 국내 다른 기업보다 빠르게 제약·바이오 연구개발에 나서면서 우수 인력을 대거 확보한 데 있다.


LG그룹은 1980년대 초반 국내 최초의 민간 유전공학연구소를 세웠고 신약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이 분야 연구개발은 대규모 투자와 오랜 시간이 걸린다. LG그룹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자, 제약·바이오 사업에 소홀했고 이 과정에서 인력이 빠져나갔다. LG생명과학을 나간 인력들은 ‘OB(올드보이) 모임’을 만들어 연구개발은 물론 해외 진출, 투자 유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돕고 있다.

녹십자 출신도 눈에 띈다. 단백질 항체·신약 연구개발 전문가인 녹십자 목암생명공학연구소 출신 임형권 박사는 지난해 8월 제넥신 단백질생산기술연구소 부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3월에는 최종성 GC녹십자셀 개발본부장이 세포 치료제 개발 기업 스템랩의 임상개발총괄 대표이사 및 최고의학전문가(CMO)로 자리를 옮겼다. 최 대표는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로 GC녹십자셀에서 항암 면역세포 치료제 ‘이뮨셀-엘씨’의 임상시험을 총괄했고, 차바이오랩과 차바이오텍 대표를 역임했다.

한화솔루션(옛 한화케미칼) 출신으로는 항체치료제 개발업체 에이비엘바이오 이상훈 대표가 있다. 제약·바이오 산업과 전혀 관계없는 삼성전기, 대우자동차 출신으로 셀트리온의 성장을 이끈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plus point

[Interview] 이병건 SCM생명과학 대표
“바이오 분야 대기업·벤처 협력해야”

박용선 기자

이병건 SCM생명과학 대표 서울대 화공과 학사·석사, 미국 라이스대 화공·의료공학 박사, 전 LG화학 초대 안전성센터장, 전 삼양사 초대 의약사업본부장, 전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 전 종근당 부회장 / 사진 SCM생명과학
이병건
SCM생명과학 대표 서울대 화공과 학사·석사, 미국 라이스대 화공·의료공학 박사, 전 LG화학 초대 안전성센터장, 전 삼양사 초대 의약사업본부장, 전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 전 종근당 부회장 / 사진 SCM생명과학

이병건 SCM생명과학 대표는 제약·바이오 업력(業力)이 30년이 넘는다. 그는 LG화학(옛 LG생명과학) 초대 안전성센터장, 삼양사 초대 의약사업본부장,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 종근당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2018년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업체 SCM생명과학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표는 3월 22일 ‘이코노미조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국내 바이오 분야 중 세계 경쟁력을 가장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것은 세포 치료제”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줄기세포를 이용한 아토피피부염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10조원에 달하는 세계 아토피피부염 시장을 잡을 계획이다. 2017년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가 개발한 단일항체 치료제 듀피젠트가 있는데 투여 간격도 짧고 가격이 너무 비싸다. 이 두 가지를 보완한 아토피피부염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효력과 안전성을 임상 1상에서 입증했고,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창업자와 역할 분담은.
“창업자인 송순욱 부사장은 연구개발과 제조에만 전념하고 있다. 경영 효율 차원에서다. 연구개발과 경영 및 자금 조달은 업무 성격이 달라 분리해 운영하면 훨씬 효과적이다. 내가 경영을 총괄하면서 자금 조달, 사업 개발, 인수합병 등을 맡고 있다. 바이오 벤처 중 창업자가 모든 걸 다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영 구조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SCM생명과학은 지난해 2월 제넥신과 함께 미국 바이오 기업 ‘아르고스 테라퓨틱스’를 인수하며 면역세포 치료제 시장에 진출했다. 이 대표의 공이 컸다. 아르고스 테라퓨틱스는 이 대표가 과거 해외 콘퍼런스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후 꾸준히 관계를 유지한 회사다.

아르고스 테라퓨틱스 인수 배경은.
“세포 치료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줄기세포 치료제이고, 다른 하나는 면역세포 치료제다. 줄기세포 치료제는 아직 시장이 초창기인 반면 면역세포 치료제는 최근 항암 시장에서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SCM생명과학이 줄기세포 치료제 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했지만, 면역세포 치료제를 병행해야 보다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015년 첨단재생의료산업협의회를 설립, 회장을 맡았다. 대기업과 바이오 벤처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데.
“반도체와 자동차 분야는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협력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바이오 헬스 분야는 아직 대기업과 바이오 벤처의 협력 모델이 보이지 않는다. 한 분야 산업이 세계 경쟁력을 갖추려면 기술, 인력, 자본이 필요하다. 바이오 벤처의 혁신 기술, 지난 20년간 의대, 약대, 생명과학 분야에 진출해 있는 우수 인력, 대기업의 자본이 합쳐지면 한국의 바이오 산업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LG생명과학 출신들이 만든 ‘OB(올드보이) 모임’이 굉장히 활발하다고 들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에는 OB 모임을 1년에 두 번 정도는 했다. 서로 도울 수 있고 함께 일하며 시너지를 낼 방안을 찾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연구개발, 사업화 지원은 물론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까지, 협력 내용은 다양하다. LG생명과학 OB만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있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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