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유명 바이오 상장기업이 임상 실패한 항암제 약물을 되살리기 위해 플랫바이오를 찾았다. 2018년 플랫바이오를 창업한 김선진 대표가 세계 1위 암병원 ‘미국 텍사스대 MD앤더슨 암센터’에서 19년간 임상이행연구를 해온 권위자여서다. 임상이행연구는 다른 회사의 신약후보물질을 위탁받아 개발 과정을 컨설팅하고 맞춤형 임상시험 계획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임상시험 성공 및 신약 상용화 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김 대표는 “임상이행연구로 국내 바이오 기업의 신약 개발을 돕고 싶어 플랫바이오를 창업했다”며 “편법, 요행이 아닌 교과서적인 신약 개발 방법을 전수하고, 신약 개발을 선도할 젊은 과학자를 육성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원다이애그노믹스(EDGC)는 국내 최초로 유전자 조상 찾기 서비스를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타액을 진단키트에 담아 보내면 한국, 몽골, 일본계 등 유전자 혈통을 분석해 알려주는 ‘유후(Youwho)’다. 이 서비스 뒤에는 해외에서 한평생을 유전자 분석에 바친 이민섭 대표가 있다. 그는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한 뒤 미국 유전자 분석 전문회사 제네상스제약, 시쿼놈 등에서 근무했다. 2011년 미국에서 다이애그노믹을 창업했고, 2013년에는 한·미 합작법인 EDGC를 설립했다.

제약·바이오 업계에 글로벌 전문가들이 속속 포진하고 있다. 2015년 한미약품 기술 수출 이후, 글로벌 임상과 기술 수출이 활발해지면서 글로벌 역량과 네트워크가 필수 요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경력을 쌓은 전문가가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사례가 있는 반면, 대기업들도 전문가 모시기에 나섰다.

삼성그룹 바이오 계열사는 글로벌 전문가를 모시는 데 가장 적극적인 편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12월 존림 대표이사 사장을 선임했다. 존림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 화학공학 석사, 노스웨스턴대 MBA 출신으로 글로벌 제약사인 로슈, 제넨테크에서 생산·영업·개발총괄 및 CFO(최고재무책임자) 등을 역임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이끄는 고한승 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하고 노스웨스턴대에서 분자유전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0년대 미국 바이오 기업 다이액스, 타깃퀘스트 등에서 연구개발(R&D) 업무를 맡았고, 다이액스의 미국 나스닥 상장에 기여했다. 2012년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에 오른 그는 전 세계 바이오 학회·세미나를 다니며 실력 있는 의사·연구자·외국인을 영입하고, 경쟁력 있는 바이오시밀러 파이프라인(신약후보물질)을 구축했다. 지난해 네 번째 연임에 성공했으며, 삼성그룹 최장수 CEO에 도전한다.

SK그룹의 SK바이오팜도 2017년 글로벌 경력이 있는 조정우 대표를 선임했다. 조 대표는 미국 텍사스A&M대 대학원에서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일했다. 그는 2019년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세노바메이트는 후보물질 발굴부터 글로벌 임상, 인허가·시판까지 국내 기업이 독자 수행한 최초의 신약이다.


plus point

[Interview] 김성진 메드팩토 대표
“오픈마인드 가져야 신약 개발 가속”

안소영 기자

김성진 메드팩토 대표 일본 쓰쿠바대 응용생물 석·박사, 전 미국 국립보건원 암세포신호전달연구실 종신수석연구원, 전 서울대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 정밀의학연구센터장 / 사진 메드팩토
김성진
메드팩토 대표 일본 쓰쿠바대 응용생물 석·박사, 전 미국 국립보건원 암세포신호전달연구실 종신수석연구원, 전 서울대 차세대 융합기술연구원 정밀의학연구센터장 / 사진 메드팩토

전 세계가 ‘게놈 산업’ 주도권을 잡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개인 유전체 분석 사업은 빅데이터의 핵심으로, 맞춤 치료부터 화장품·식품까지 활용 분야가 많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유전체 분석을 바탕으로 항암신약을 개발하는 기업까지 등장했다. 바로 글로벌 제약사의 러브콜을 받는 ‘메드팩토’다. 메드팩토는 아스트라제네카, MSD 두 곳과 면역항암제 병용 투여 공동개발을 하고 있고, 미국 프레드 허친슨 암연구센터와 임상시험도 공동으로 진행한다.

메드팩토의 성과에는 김성진 대표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한몫한다. 그는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종신수석연구원을 지낸 바 있다. 2007년 귀국해서도 미국에서부터 연구한 ‘TGF-β(암의 성장·전이를 촉진하는 물질)’에 대한 연구를 놓지 않고 국내외 인재들과 교류를 이어 갔다. 한국인 최초, 세계에서 5번째로 개인 유전체를 해독하는 성과를 냈고, TGF-β를 억제하는 백토서팁 기반 항암제를 개발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바이오 기업에 네트워크가 왜 중요한가.
“연구도 논문도 제일 먼저 낸 사람이 가장 주목받는다. ‘스피드’가 굉장히 중요하다. 만약 기초연구를 하는데 유전자 조작 쥐가 필요하다고 치자. 우리나라에서 하려고 하면 해당 사업을 하는 기업이 많지 않아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데 교류가 있는 일본 연구소에 요청하면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FDA 임상도 미국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전문가를 소개받거나 아이디어가 괜찮은지 여부를 확인받는 것도 가능하다. 다양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수준 높은 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는 해외에서 온 바이오 전문가를 보면 경쟁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서로 공동연구하거나 협력하는 오픈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한인들의 해외 네트워크는 없나.
“물론 있다. 재미한인제약인협회, 펩스(FEBPS) 등의 모임이 활발하다. 미국 국립보건원에도 한국계 미국인 모임이 있고, 뉴잉글랜드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바이오 연구자들의 학술교류 단체인 뉴잉글랜드생명과학협회(NEBS)도 있다. 많은 제약인과 생명과학 연구원이 모이기 때문에 인재를 발굴하고 채용하는 역할도 한다.”

미국에 있던 바이오 인재들의 귀국행이 늘고 있는데, 왜 그런가. 국내 바이오 인력은 충분한가.
“국내 바이오 기업의 자금력이 커지면서 글로벌 인재를 데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외국인의 비자를 쉽게 발급해 주지 않은 것도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바이오 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기초과학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의사, 약사로 빠지는 경우가 많고 계속 해외에 있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중국은 해외에 기초과학을 공부하러 나가더라도 다시 돌아가는 사람이 많다. 중앙정부, 기업, 지방정부, 규제기관까지 모두 힘을 합쳐 인재를 모셔오는 데 애를 쓰기 때문이다.”

국내 바이오 시장에 대해 어떻게 보나.
“우리 바이오산업이 많이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세계적인 시장을 사로잡을 만한 혁신 신약은 많지 않다. 이제는 우리도 한 분야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부, 학계 모두 우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

안소영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