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찬 카이스트 바이오헬스케어 혁신정책센터장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전 카이스트 대외부총장, 전 미국 라이스대 교수, 전 서울대 초빙교수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채수찬
카이스트 바이오헬스케어 혁신정책센터장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전 카이스트 대외부총장, 전 미국 라이스대 교수, 전 서울대 초빙교수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미국, 유럽 등 제약·바이오 선진국과 비교해 한참 뒤처져 있다.” 채수찬 카이스트(KAIST) 바이오헬스케어 혁신정책센터장은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 경쟁력을 묻는 질문에 냉정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성장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차분하게 성장 전략을 풀어갔다.

채 센터장이 강조한 전략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과 협업 네트워크 구축이다. 그는 “한국 기업이 홀로 연구개발하기에는 기술, 인력, 자본 등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다”며 “세계 1등 기업과 함께 연구하고 일하면서 기술력을 높이고, 투자를 늘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기적인 성과가 아닌, 최소 10년을 바라보고 산업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채 센터장을 3월 16일 카이스트 서울 도곡동 캠퍼스에서 만났다.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경쟁력을 해외와 비교하면.
“미국, 유럽 등 제약·바이오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참 뒤처져 있다. 글로벌 제약사의 경우 연 매출이 60조원에 달하고 연구비는 10조원 수준인데, 한국의 제약 회사는 매출이 많아야 1조원이고 연구비는 1500억원에 불과하다. 1년 연구비로 10조원을 쓰는 회사와 1500억원을 쓰는 회사가 과연 경쟁이 될 거라고 생각하나? 경험도 부족하다. 국내에는 신약을 개발해 사업화하는 단계까지 제대로 도달한 기업이 없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한 번에 성장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오랜 기간 축적된 데이터에 많은 노하우와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화학·약학·생물학·의학 등 다학제 간 협업이 필수다.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정부의 강력한 규제도 있다.”

한국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는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가 많다.
“바이오시밀러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는 과학 기반 기술이 아니라 일종의 매뉴팩처링(대량 생산 기술)이다. 특허가 만료된 제품으로 복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한국이 그동안 잘했던 제조 분야라는 것이다.”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거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난 한국의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을 가장 먼저 바이오엔테크와 공동 개발한 화이자의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연구소. 사진 블룸버그
코로나19 백신을 가장 먼저 바이오엔테크와 공동 개발한 화이자의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연구소. 사진 블룸버그

그렇다면 성장 방법은 무엇인가.
“미국을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유럽과 함께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을 이끌고 있는데, 한순간에 이룬 게 아니다. 제약 산업의 기반이 되는 화학 산업은 원래 유럽에서 나왔고, 아스피린으로 대표되듯 유럽은 제약 산업 최강자였다. 미국은 유럽의 화학 산업을 따라잡기 위해 수많은 인력을 독일에 연수 보냈고, 유럽의 인재와 기술을 끌어들이고, 자국의 고등교육을 강화해 화학 산업의 기반을 만들었다. 후발 주자였던 미국은 이를 기반으로 1970년대 이후 신기술 분야였던 유전공학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고, 이를 통해 화학 기반의 제약 산업을 바이오 기반으로 변모시켜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한국도 1980~90년대 해외 유학생들을 통해 바이오 신기술을 흡수했다.
“이제 인력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 제약·바이오 시장을 이끌고 있는 인물들, 특히 기업 CEO들은 바이오 벤처 1세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해외 대학 그리고 연구소, 기업에서 바이오 신기술을 익혔고, 귀국해 국내 기업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 가거나 회사를 창업했다. 아직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또 젊은 인재들이 세포 치료제 등 바이오 시장의 성장성을 보고 뛰어들고 있는 모습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도전해야 성공할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려면.
“아직은 한국 기업 홀로 오랜 기간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아, 글로벌 제약사와 협력 네트워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함께 연구하고 일하면서 실력을 쌓고, 그 과정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투자도 유치할 수 있다. 이런 활동이 늘어야 투자(자본), 연구개발(인력), 생산(사업화) 등이 선순환하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단기적인 성과가 아닌, 최소 10년을 바라보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미약품이 2015년 글로벌 제약사로 기술 수출에 성공한 사례는 굉장히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단계의 임상시험을 수행하고 시장에 진입할 때까지 투자할 여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신약후보물질의 권리를 기업에 넘겨 이미 투자된 비용을 회수하고 임상시험과 시장 진입 성공 시 발생하는 수익을 나누기로 한 기술 이전 계약이다.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현 단계에서 연구개발, 사업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줬다.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은 반환됐지만 그래도 의미가 크다.”

바이오 기업의 증시 상장이 투자 생태계를 망친다는 주장도 있는데.
“바이오 기업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이 회수를 위한 목적으로 그 기업의 상장을 추진할 때 상장 재료를 만들기 위한 임상시험이 진행되곤 한다. 이런 식으로 상장된 뒤에는 회사 가치가 오히려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옥석이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투자되는 생태계에선 계속 투자받아야 할 능력 있는 기업이 투자를 받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바이오 산업 투자의 거품이 빠지면서 큰 조정이 이뤄질 것이다.”

제약·바이오 산업에도 4차 산업혁명 바람이 불고 있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이 제약·바이오 산업에 접목되고 있다. 환자들에게서 얻은 데이터를 통합한 빅데이터와 AI 기술을 이용해 각각의 환자에게 나타나는 질병 진행의 패턴, 원인 그리고 특정 치료법에 대한 반응 등을 분석하는 형태다.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개인 맞춤형 진단 및 예방 관리와 새로운 신약 개발 방식이 등장할 것이다. 한국도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사업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다. 법적인 제약이 너무 많다. 데이터 활용, 원격진료 등에 대해서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당분간 이 분야 사업과 창업은 해외로 나가서 하는 게 나을 것이다.”

박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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