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하철역 내 피아노 계단. 사진은 기사와 무관.
한 지하철역 내 피아노 계단. 사진은 기사와 무관.

‘에너지를 절약합시다.’

길 가다 이런 공익광고 문구를 본 날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과연 평소보다 에너지를 더 절약했을까. 환경 문제의 심각성은 나날이 높아지지만 공익 가치 증진 홍보물에 반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줄리아 코벳 유타대 환경인문학 교수는 “환경 운동 참여율이 낮은 것은 비용과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개인의 안전에 직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게임화) 전략을 더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들이 자신이 공익 가치를 증진시키고 있다는 것을 까먹을 정도로 게임 요소(도전·경쟁·성취·보상·관계)에 빠져들면 캠페인 참여율은 덤으로 따라온다. 물론 게이미피게이션이 잘 설계됐을 경우에다.

사회 문제 해결에 게이미피케이션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사례는 미국 경제전문매체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한 혁신기업 ‘리사이클뱅크(RecycleBank)’ 사업이다. 리사이클뱅크에 회원 가입을 하면, 사용자는 재활용 정도 혹은 재활용 방법 콘텐츠를 시청하는 등의 방식으로 포인트를 쌓는다. 사용자는 포인트로 리사이클뱅크의 재활용 사업에 동참하는 이케아, 코카콜라 등 4000여 개 기업의 물건을 살 수 있다. 포인트를 더 많이 쌓기 위한 경쟁, 포인트를 쌓은 후의 성취감 그리고 이를 통해 물건을 구입하는 보상 원리를 통해 시민의 참여를 이끄는 것이다. 리사이클뱅크가 도입된 지역은 재활용 물량이 10~100% 늘었다고 한다. 리사이클뱅크 측은 “게임 원리를 환경 개선과 결합시켜 소비자 행동 변화를 목표로 한다”고 했다.

남자화장실 소변기 위에 오줌이 튀지 않도록 더 가까이 서서 볼일을 보라는 문구가 종종 써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공항은 남자화장실 소변기 중앙에 파리를 그려놨다. 그 결과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줄었다. 사용자가 소변을 볼 때 마치 게임하는 것처럼 즐기면서 파리를 정조준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사례는 국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폴크스바겐은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제한속도보다 천천히 주행한 운전자에게 속도 표시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들어주는 표지판을 설치한 바 있다. 동시에 추첨을 통해 제한속도를 지킨 운전자에게 상금을 주는 과속 감시 카메라 복권 제도도 시행했다. 반대로 지키지 못한 운전자에게는 벌금을 부과했다. 그 결과 차량의 평균 주행 속도가 22% 감소했다. 같은 지역 오덴플랜역의 ‘피아노 계단’도 일상생활에서 게임 요소를 적용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유발한 게이미피케이션의 예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소리가 나는 게임 요소를 더하니 시민은 계단을 이전보다 세 배 더 많이 이용했다.

서울시도 전기·수도·도시가스 등 에너지를 절약하면 마일리지를 주는 ‘에코 마일리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개인의 경우 6개월마다 직전 2년 같은 기간 평균 사용 대비 5% 이상의 에너지를 절감하면 연 최대 10만원을 받는다. 그런데 지난해 5월 기준 회원은 서울시민의 20% 정도였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게이미피케이션은 사용자가 재미를 느끼며 널리 퍼져야 효과가 있다”며 “제대로 디자인되지 않으면 호응을 얻기 쉽지 않아 기업과 지자체의 협력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plus point

[Interview] 송인혁 유니크굿컴퍼니 대표
“현실과 가상 넘나드는 골목 체험…지역경제 활성화”

안상희 기자

송인혁 유니크굿컴퍼니 대표 카이스트(KAIST) 전산학 석사, 전 삼성전자 개발자, 전 TEDxSamsung 기획자, 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큐레이터, ‘퍼펙트스톰’ ‘유니크굿’ 저자 / 사진 유니크굿컴퍼니
송인혁
유니크굿컴퍼니 대표 카이스트(KAIST) 전산학 석사, 전 삼성전자 개발자, 전 TEDxSamsung 기획자, 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큐레이터, ‘퍼펙트스톰’ ‘유니크굿’ 저자 / 사진 유니크굿컴퍼니

게이미피케이션은 지역경제와 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리얼월드는 실제 관광지를 기반으로 이용자가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들며 과제를 수행해 나가는 체험형 게임 플랫폼이다. 증강현실(AR) 기술을 적용한 포켓몬고 스타일의 게임을 통해 이용자의 반응과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는 인터렉티브(상호작용) 콘텐츠다. 이용자가 해당 지역의 역사 등을 직접 경험하도록 구현했다.

리얼월드를 운영하는 유니크굿컴퍼니는 2017년 10월 창업 직후부터 매년 매출이 두 배가량 성장하고 있다. 현재 웹과 앱을 포함한 누적 이용자는 45만 명이 넘는다. 10만 명 정도가 앱을 통해 100개 가까운 게임을 즐기고 있다. 100개 중 26개가 야외에서 돌아다니면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다. 최근 시리즈A 투자를 완료했다. 송인혁 유니크굿컴퍼니 대표는 3월 31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사업의 흐름이 정보 중심의 디지털 세계에서 사람의 관심이 연결되고 흐르는 현실 세계 경험으로 이동했다”며 “과잉 정보·연결 시대 이용자는 자기 주도 방식의 경험을 요구한다”고 했다.


지역경제에 어떻게 기여하는가.
“리얼월드는 공간과 도시를 탐험하는 ‘도시 여가’를 만들어 간다. 그 지역만이 갖고 있는 역사나 사건 이야기가 많을수록, 신선한 체험을 제공해 이용자 참여율을 높일 수 있다. 스마트 관광 프로그램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가령 ‘라스트콜렉션’ 게임은 동대문의 역사를 소개하는 콘텐츠로 이음피움봉제역사관, 봉제골목 뒷길, 평화시장, DDP 등 사람들이 평소에 몰랐던 숨은 뒷골목을 누비며 즐기도록 만들어졌다. 리얼월드는 2~3시간 정도 실제 이동하면서 즐기는 게임이 많다 보니 지역 상권과 경제 활성화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서울 정동길을 배경으로 한 ‘정동밀서’ 게임은 7주간 5만3000명이 참여해 경제 유발 효과가 12억원이 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로 누가 이용하나.
“MZ 세대(밀레니얼+Z세대·1981~2004년생)가 70%다. 40~50대가 다음으로 많다.”

게이미피케이션을 어떻게 설계했나.
“리얼월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시하고 이야기가 넘어가는 지점에 행동을 요구하는 ‘미션(도전)’을 제시한다. 참여자 반응과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다르게 전개되는 ‘상호작용’이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AR, 스마트폰, 챗봇, GPS 등의 실감 기술로 몰입감을 끌어올려 참여자의 확실한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경험하며 느낀 감정과 생각 자체를 보상으로 생각한다. 향후에 포인트 충전 기능을 도입할 예정이다.”

왜 현실 세계 경험의 수요가 많을까.
“4차 산업은 디지털에서 현실로의 진화, 기록에서 문화로, 정보에서 경험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모든 게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참여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사용자가 주도, 전개, 종료하고 만들어가는 커뮤니티형 비즈니스로 산업이 크게 진화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의 참여와 행동을 수반하는 게이미피케이션 모델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올해 1000명 이상의 크리에이터를 확보해 대한민국 전역에서 리얼월드를 만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2022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안상희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