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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출시 12년이 지나도록 정상적인 화폐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사실상 다단계 사기와 같다.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사이비 종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5월 21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칼럼에서 암호화폐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투기 수단 외에 암호화폐가 쓰이는 곳은 돈세탁이나 해커의 금품 요구와 같은 불법적인 분야뿐”이라고도 했다.

이보다 이틀 전에는 거품 논란에 휩싸였던 암호화폐 시장이 하루아침에 대규모 폭락장을 만났다. 암호화폐 채굴·거래를 막겠다는 중국 당국의 경고가 “비트코인을 통한 테슬라 구매를 중단하겠다”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트위터 발언과 함께 암호화폐 폭락을 야기한 것이다. 4월 14일 8100만원(업비트 기준)을 돌파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5월 27일 오후 2시 현재 4600만원 선까지 40% 이상 주저앉았다.

미 경제방송 CNBC는 “처음부터 매우 불안정했던 암호화폐 시장에 중국 정부의 새로운 규제가 강력하게 작용해 충격적인 하락장을 가져왔다”라며 세계적으로 암호화폐 광풍이 극에 달했다고 평가했다. 부정적 평가는 이뿐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암호화폐는 가격의 안정성이 낮고 급등락 가능성이 있다”라며 “가계 손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도박과 같다는 비판과 쉽게 흔들리는 롤러코스터 시세에도, 암호화폐 시장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특히 국내에서는 암호화폐 투자로 거액의 시세 차익을 거둔 뒤 직장을 그만두는 ‘파이어족(조기은퇴족)’의 존재가 회자되면서 ‘한탕주의’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의 기회 상실이 젊은이들에게 박탈감을 주고, 근로 소득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면서 암호화폐 광풍에 뛰어드는 이가 점점 늘고 있다. 4월에는 삼성전자의 한 직원이 약 2억원을 비트코인에 투자해 6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벌고 퇴사했다는 소문이 직장인 사이에 화제가 됐다.

이는 비단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세계적인 통화 전문가인 배리 아이켄그린 UC 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위험한 투자로 큰 금액을 잃어본 적 없는 젊은이들이 암호화폐 열풍에 올라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비트코인 광풍이 불었던 2017년과 2021년의 열기는 조금 다르다. 올해는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금융 시장에 유입된 넘치는 유동성이 일반인뿐 아니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나 대형 금융기관까지 암호화폐 시장에 참가시키는 분위기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테슬라 같은 회사가 비트코인을 매입하기 시작하면서 기대감이 높아졌다는 점, 주식시장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크게 상승했던 언택트 관련주가 최근 한계를 보인다는 점, 헤지펀드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위험 회피) 수단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점 등을 특징으로 꼽았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비트코인의 화폐 기능이 떨어진다며 투자에 부정적이었던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가 5월 6일 녹화된 한 국제 행사에서 “채권보다는 비트코인을 갖고 있는 것이 낫다”고 언급한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제도권에서 암호화폐를 받아들이려는 움직임도 최근 암호화폐 열기에 반영됐다. 미국 경제지 ‘포천’에 따르면 올해 4월 14일 비트코인이 6만5000달러까지 급등했던 배경에는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기업공개(IPO)가 있었다.


민간 코인 규제 확산

암호화폐가 투자자와 금융 제도권에 가까이 다가올수록 각국 정부의 견제 움직임은 빨라진다. 전 세계 암호화폐 채굴장의 65%를 차지하는 중국은 채굴·거래 금지 조치를 단행했다. 모든 금융사에 암호화폐 거래 금지령도 내렸다. 미국은 1만달러(약 1140만원) 이상의 암호화폐 거래를 국세청(IRS)에 신고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국내에서도 오는 9월부터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이 시행됨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소는 은행으로부터 실명 입출금 계좌를 받아야 한다. 200여 곳의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가 폐쇄 위기에 직면했다. 내년부터는 연간 250만원이 넘는 암호화폐 양도·대여 소득에 세금이 부과될 예정이다.

암호화폐 규제 배경에는 통화주도권을 민간에 넘기지 않겠다는 각국 정부의 속내가 있다. 민간에서 발행하는 암호화폐에 대항하기 위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를 도입하려는 통화 당국이 50곳을 넘는다고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전했다. 중국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디지털 위안화를 도입하기 위해 작년부터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며, 미국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원에서 올여름 디지털 달러화 도입 검토보고서를 내놓는다. 한국은행 역시 CBDC 모의실험 절차에 착수했다.

‘이코노미조선’은 혼란스러운 암호화폐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냉철하게 들여다보기로 했다. 국내외 암호화폐 규제 동향과 산업계 움직임을 취재하고, 해외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눴다. 배리 아이켄그린 미국 UC 버클리대 경제학과 교수와 마우로 기옌 케임브리지대 비즈니스스쿨 학장이 전문가 시선에서 암호화폐 시장에 관한 통찰을 제시했다. 또 ‘이코노미조선’은 실제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있는 국내 젊은이들의 목소리도 이번 기획에 담았다. 암호화폐는 희망일까 절망일까. 미래일까 함정일까. 독자 여러분께 도움이 되길 바란다.


plus point

머스크 한마디에 출렁 암호화폐 시장 신뢰 추락

“일론 머스크, 비트코인의 최고 인플루언서가 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월 23일(현지시각) 내보낸 기사의 제목이다. 올해 초만 해도 자신을 비트코인 지지자라고 천명했던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5월 12일 비트코인 채굴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비트코인 결제 중단을 돌연 선언했다. 이어 16일에는 다음 분기에 테슬라가 비트코인 보유분을 팔아치울 것이라는 트윗에 “정말이다(Indeed)”라는 모호한 답글을 달았다. 직후 비트코인 시세는 8% 이상 급락해 3개월 만에 처음으로 4만5000달러 아래로 내려갔다.

뉴욕타임스(NYT)는 “머스크는 믿을 수 없는 내레이터”라며 자신의 입장을 끊임없이 바꾸며 암호화폐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머스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일탈 문제가 아니라 머스크의 말로 가격이 좌지우지되는 암호화폐 시장에 본질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마우로 기옌 케임브리지대 비즈니스스쿨 학장은 ‘이코노미조선’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최근 몇 주간 비트코인 가격은 ‘일론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샀다’ ‘테슬라가 비트코인으로 결제를 받는다’ 등 그의 말에 따라 급등했다가, 그가 입장을 바꾸자마자 폭락했다”라고 비판했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역시 “국내에서 아무리 많은 규제 조치를 해도, 암호화폐 시장은 머스크 말 한마디에 휘둘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소연·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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