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호 카이스트 석좌교수 겸 레인보우로보틱스 CTO가 사족 보행 로봇 ‘RBQ-3’와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전준범 기자
오준호 카이스트 석좌교수 겸 레인보우로보틱스 CTO가 사족 보행 로봇 ‘RBQ-3’와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전준범 기자

‘탁, 탁, 탁, 탁, 탁…’

6월 14일 오후 대전광역시 유성구 문지동에 있는 로봇 개발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사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들려온 소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바닥을 두드리는 듯한 마찰음이었다. 이 회사 공동 창업자이자 현재 CTO(최고기술책임자)를 맡은 오준호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과 석좌교수가 웃으며 다가왔다. “강아지 재롱부리는 소리가 꽤 시끄럽죠?”

오 교수의 안내를 받아 연구실 문을 열자 보라색으로 멋을 낸 사족(四足) 보행 로봇 ‘RBQ-3’가 폴짝폴짝 점프하며 연구실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로봇이 바닥에 발을 디딜 때마다 입구에서 들은 ‘탁, 탁, 탁’ 소리가 울려 퍼졌다. RBQ-3의 겉모습은 미국 로봇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지난해 6월 선보인 4족 보행 로봇 개 ‘스팟’과 비슷했다.

RBQ-3는 생각보다 빨랐고, 지면을 박차는 다리 4개의 절도 있는 움직임에서는 힘이 느껴졌다. 한 연구원의 조종에 맞춰 네 다리를 동시에 굽혔다가 펴면서 점프를 하는가 하면, 주인을 따라가는 강아지처럼 전방을 향해 질주하기도 했다. “재주넘기도 보여드려.” 오 교수의 말에 연구원이 RBQ-3를 연구실 한쪽 매트로 보냈다. 푹신한 매트 위에 선 로봇이 두 앞다리를 움츠리더니, 반동을 주면서 순식간에 공중 돌기했다.

체조 기술의 하나인 ‘백플립(backflip)’이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이족(二足) 보행 로봇 ‘아틀라스’가 세계 최초로 성공해 화제를 모았던 기술이다. 오 교수는 “족형 로봇 중에서도 4족 로봇은 기술적으로나 수요 측면에서나 시장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라며 “방범·순찰, 배달 등 다양한 용도로 문의가 쏟아진다”라고 했다. 오 교수는 RBQ-3의 베타 버전을 올해 연구기관에 공급한 뒤 상용화 절차에 돌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오 교수가 이끌던 카이스트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센터의 인력이 주축이 돼 설립됐다. 이 센터에서 인간형 2족 보행 로봇 ‘휴보’를 만든 오 교수와 제자들이 2011년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창업했다. 올 2월 코스닥에 상장한 이 회사 대표는 오 교수의 제자인 이정호 박사다. 오 교수는 미래 기술을 구상하고 현장에서 안 풀리는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휴보는 2015년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세계 재난 로봇 경진대회(DRC)에서 전 세계 24개 팀의 로봇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해 화제를 모았다. 휴보는 차량을 운전해 가상 재난 지역으로 진입하고, 드릴로 벽을 뚫고, 밸브를 손으로 돌려 잠그는 등 8가지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당시 휴보에 이어 2위를 차지한 로봇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다.


‘DRC 휴보2’가 2015년 6월 6일(현지시각) 미국‘세계 재난 로봇 경진대회(DRC)’ 결선에서 손으로 밸브를 돌리고 있다. 사진 DARPA
‘DRC 휴보2’가 2015년 6월 6일(현지시각) 미국‘세계 재난 로봇 경진대회(DRC)’ 결선에서 손으로 밸브를 돌리고 있다. 사진 DARPA
레인보우로보틱스 직원이 협동 로봇 ‘RB5’ 작동법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레인보우로보틱스 직원이 협동 로봇 ‘RB5’ 작동법을 시연하고 있다. 사진 전준범 기자

RBQ-3의 묘기를 보여주던 오 교수가 사옥 내 다른 연구실로 안내했다. 이곳에서는 한 직원이 테이블에 올려진 로봇팔을 조작하며 작동 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다른 직원이 카메라로 녹화했다. 로봇팔은 이 회사가 2020년 1월 출시한 산업용 협동 로봇 ‘RB5’였다. 시연하던 직원은 “고객사에 보낼 협동 로봇 사용 가이드라인 영상을 촬영하는 중”이라고 했다.

오 교수는 “로봇 개가 미래라면, 협동 로봇은 현재이자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현시점에서 회사 매출에 기여하는 존재는 협동 로봇이라는 의미다. 2020년 전까지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휴보 같은 인간형 로봇을 주문 제작해 납품했다. 구글 등 글로벌 기업과 유명 대학·연구기관에서 주문이 들어왔다. 하지만 시장 자체가 작다 보니 판매량을 끌어올릴 수 없었다. 결국 회사는 기술력과 경험을 잘 살릴 수 있는 협동 로봇 시장 진출을 결정했다. 2019년 17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54억원으로 3배 이상 뛰었다.

오 교수는 “음료·음식·용접 등 협동 로봇의 쓰임새가 무궁무진한 만큼 올해는 더 큰 매출을 기록할 것”이라며 “2족·4족 보행 로봇 개발에도 꾸준히 투자해 ‘한국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되겠다”라고 했다.


plus point

[Interview] 오준호 카이스트 석좌교수 겸 레인보우로보틱스 CTO
“휴보 우승의 교훈이요? 한국이 로봇 후진국인 사실 깨달은 것”

오준호 카이스트 석좌교수 겸 레인보우로보틱스 CTO는 2015년 세계 재난 로봇 경진대회(DRC)에서 우승해 기뻤지만, 한국과 선진국의 로봇 기술력 격차를 실감하기도 해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급해졌다고 했다. 오 교수는 “한국에 돌아와 로봇 기술 자립에 올인했다”라며 “작은 부품 하나까지 손수 만들 수 있게 된 게 DRC 우승의 소득”이라고 했다.

휴보의 DRC 우승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냉정하게 말해 그 우승은 그 게임에서만 승리한 것이다. 휴보가 운 좋게 1등 했지만, 아틀라스(보스턴 다이내믹스)의 퍼포먼스는 그때도 압도적이었다. 여전히 배울 게 많다는 걸 현장에서 느꼈고, 한국에 돌아와 기술 자립에 집중했다.”

기술 자립은 어떻게 했나.
“로봇 움직임에 필요한 구동기·제어기·센서·브레이크 등의 핵심 부품까지 스스로 개발할 수 있어야 그게 진짜 로봇 강국이다. DRC가 끝난 후 로봇 원천 기술 확보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었다. 이제는 많은 부품을 우리가 직접 디자인해 만든다.”

부품을 직접 만들면 어떤 점이 좋나.
“우선 비용 절감 측면에서 유리하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로봇 제작에 필요한 핵심 원천 기술을 내재화해 대부분의 부품을 자체 수급한다. 이는 현재 회사의 캐시카우인 협동 로봇의 시장 진출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핵심 부품을 외부에서 사 와 쓰는 경쟁사보다 판매가를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어서다. 그리고 부품을 직접 만들 수 있다는 건 제품 확장의 용이함을 의미한다. 원하는 목적의 로봇은 뭐든지 만들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은 어떻게 보는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로봇 산업에 거는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걸 느낀다. 식음료는 물론 물류·안보·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문의가 온다. 한 우물을 꾸준히 파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 온다는 걸 휴보를 통해 깨달았다. 죽을 때까지 계속 그렇게 한 우물을 팔 생각이다.”

대전=전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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