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웹디자이너를 꿈꾸는 김모(22)씨는 지난해 디자인 공부 자금 1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시중은행에 신용 대출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저축은행에서 소액 대출을 받았다가 연체했던 게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는 ‘크레파스솔루션’과 금융 플랫폼 ‘청년5.5’의 도움으로 대출받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 충전 기록, 주요 사용 시간 및 패턴 등 기존 금융권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정보가 평가 항목에 포함되며 성실도를 높게 평가받은 덕분이었다. 그는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로 월 70만~80만원을 벌면서 대출금 중도 상환에도 성공했다.

사례2: 식물성 빵을 판매하는 망넛이네는 온라인 쇼핑몰 매출이 급증했지만, 현금 경색이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주문이 급증했지만, 결제금이 3개월 후에 들어오는 탓에 새 빵을 만들 자금이 없기 때문이었다. 전년도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는 기존 금융사에서 대출받기는 쉽지 않았다. 망넛이네는 결국 금융 스타트업 ‘고위드’의 벤처 대출을 받아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고위드는 망넛이네의 실시간 현금흐름 현황과 단골 수 같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평가해 대출해줄 수 있었다.


사회초년생, 주부, 온·오프라인 소상공인 등 이른바 신 파일러(thin filer·금융 거래 정보가 거의 없는 사람)의 대출 길을 열어주는 새로운 신용평가 시대가 열리고 있다. 대형 금융사부터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기업, 정보기술(IT) 기업까지 대안 정보를 활용한 새로운 신용평가 기법을 잇따라 개발하고 있다.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해 12월 미래에셋캐피탈과 손잡고 금융 사각지대에 있던 온라인 소상공인을 위한 대출 서비스를 선보였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매출 흐름, 단골 비중, 고객 리뷰, 반품률 등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출을 심사한다. 대출 이용자 42%는 기존 금융권 대출 상품을 이용할 수 없는 사업자로 집계됐다.

카카오뱅크도 이동통신 3사가 보유한 정보와 카카오선물하기, 카카오T 등에서 나온 정보를 대출심사 때 활용한다. 카카오뱅크는 2023년까지 중⋅저신용 고객 비중을 10%에서 30%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올해 4분기 출범하는 토스뱅크도 다양한 데이터로 구축한 신용평가 방식을 통해 대출 판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IT 기업과 인터넷은행, 스타트업 등이 잇따라 금융 사각지대 고객을 잡으려고 나서자, 은행·카드사 같은 전통 금융사들도 잠재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열심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 8월 통신정보 등 다양한 소득인정기준을 활용하는 대출상품을 출시했다.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도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통신·전기비 납부 이력, 온라인 구매 및 포인트 적립, 소셜미디어(SNS) 사용 내역 등 비금융 관련 디지털 데이터를 활용한 ‘대안 신용평가’ 시장이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기업 신용평가를 구축했고,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2003년 카드대란 이후 개인 신용평가를 고도화했지만, 시대가 변화하며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스타트업 붐이 일고 있지만, 대부분 적자를 내면서 성장하고 있는 데다 BNPL(선구매 후 결제)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특성도 대안 신용평가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특히 담보가 없는 온라인 소상공인과 크리에이터(creator⋅창작자), 긱 워커(조직과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수입을 올리는 근로자)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이 새로운 신용평가의 필요성을 높였다.

구글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수익을 내는 유튜브 채널이 200만 개를 넘었다. 국내에서도 유튜브 10만 구독자 이상 채널 수는 2019년 2000개에서 2020년 5500개로 늘었고, 웹툰 작가는 2010년 443명에서 2020년 8679명으로 19배 증가했다. 미국에서만 긱 워커가 2019년까지 10년간 600만 명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글로벌 긱 이코노미 시장도 2019년 2483억달러(약 278조원)에서 2023년에는 4552억달러(약 510조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신 파일러의 금융 소외는 고질적 문제지만 최근 들어 더 부각된다. 국내에서 신용등급이 1~4등급인 고신용자라면 금리 5% 내외로 1금융권에서 대출받을 수 있지만, 중·저신용자는 금리가 20~30%인 2·3금융권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대안 신용평가가 가능해질 경우, 기술 혁신이 금융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 선진국 미국도 소외계층이 많은 건 다르지 않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엑스피리언에 따르면, 2018년 기준 미국의 18세 이상 인구 (2억4700만 명) 중 25%는 금융 거래가 1~4건인 금융 거래 이력 부족자였고, 9%는 신용 기록이 전혀 없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국 핀테크 기업 시그니파이는 모바일 활동 내역을, 소규모 기업금융 대부 업체 캐비지는 전자상거래 이용 내역을, 커넥트(옛 PBRC)는 통신, 전기, 수도 요금 납부 정보를 수집해 신용평점 산출에 활용한다.

인공지능(AI) 기반의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은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면서 디지털 데이터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이는 대안 신용평가 흐름을 가속화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됐다. 마켓샌드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빅데이터 시장은 2020년 1389억달러(약 155조원)에서 2025년 2294억달러(약 256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강덕준 네이버파이낸셜 신용관리사업 리더는 “팬데믹 여파로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며, 대안 신용평가의 원천도 더욱 풍부해졌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대안 신용평가 시장 육성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8월 25일 대안 신용평가 전문기업 크레파스솔루션의 ‘전문개인신용평가업’ 예비인가를 의결했다. 본인가를 통과하게 되면, 처음으로 정부 인가를 받은 비금융 정보 기반 신용평가사가 탄생하게 된다. 내년 1월부터 마이데이터(My Data·본인신용정보관리업) 서비스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앞으로 더욱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한 대안 신용평가 시장이 펼쳐질 수 있다.

물론 대안 신용평가의 미래가 장밋빛만 있는 건 아니다. 프라이버시 침해와 신뢰성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풀락 고시 인도방갈로르 경영대학원(IIMB) 교수는 “현재 핀테크 기업들은 거의 규제를 받지 않거나 강하지 않은 정도의 규제를 받고 있다”며 “모든 국가는 소비자의 사생활 정보를 보호할 규제 및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중국 알리바바 금융 자회사 앤트그룹은 대안 신용평가를 바탕으로 서민금융을 휩쓸었지만, 중국 정부 규제에 성장세가 꺾였다. 최근 중국은 “신용조회기관의 개인정보 수집은 ‘최소화’ ‘필요’ 원칙에 따라야 한다”며 개인정보의 과도한 수집을 금지했다. 이군희 서강대 교수는 “대안 신용평가 시장을 위해 정부가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의 경계선을 법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120여 년 전 무디스의 철도 회사 채권 평가를 시작으로 태동한 기업 신용평가 시장은 1929년 대공황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채권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급증했다. 국내에서도 외환위기로 기업들이 무너지고, 카드대란으로 신용불량자가 늘자 신용평가 시장이 커졌다. 팬데믹발 위기 속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면 신용평가 시장도 변할 수 있을까. ‘이코노미조선’은 ‘빅데이터 신용평가’ 커버 스토리를 통해 신용평가 시장의 변곡점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고시 교수는 “은행과 핀테크 기업들의 협업으로 신용평가 시장이 극적인 변화를 보이고, 금융에 접근할 수 있는 계층이 늘어나 소득 불평등이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의 공급자와 수요자가 윈윈할 수 있는 대안 신용평가 시대의 도래를 기대해본다.

안소영 기자, 김혜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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