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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텍사스 주립대 오스틴 캠퍼스 경제학 박사, 전 국회예산정책처 세입세제분석팀장,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 조정실장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텍사스 주립대 오스틴 캠퍼스 경제학 박사, 전 국회예산정책처 세입세제분석팀장,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 조정실장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우리 사회에 대변혁이 일고 있다. 팬데믹은 글로벌 공급망을 이용한 생산 방식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줬고, 국제적인 협력보다 국가적 대응이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세계화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노동자의 보건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국 중심의 공급망 구축, 비대면 산업의 급부상, 생산 공정의 디지털화가 새로운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또한 감염병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정부 개입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공공보건을 이유로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사생활 침해를 당연시하고 있다. 경기회복을 위한 정부의 지원 대가로 기업에 대한 경영 간섭이 심화되고, 정부 지원으로 만들어진 일자리에 의존하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다. 정부 지원으로 회생되었다는 이유로 기업의 사적 이윤이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기를 바라는 국민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 공공의료 서비스와 현금성 복지 확대, 공공일자리 제공,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서히 진행되어온 탈세계화와 큰 정부를 추구하는 세계적 추세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급속히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화가 재정만능주의와 반시장적인 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우리 경제에 커다란 위협 요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이룬 경제 기적은 자유와 창의가 넘치는 시장경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위대한 기업가 정신, 근면·자조의 국민성이 어우러진 결과다. 또한 노동, 자본, 기술의 전 세계적인 상호연결성으로 인류의 번영을 가져온 세계화의 물결에 시기를 놓치지 않고 편승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5년을 되돌아보면 형평과 공동체를 강조하고 시장 원리를 부정하는 반시장적인 정책이 주류를 이루면서 저성장은 고착화되고,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오히려 소득 양극화를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부가 문제의 해결사가 아니라 문제의 원인 제공자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이 확대된다면 더 참담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불황이 닥치면 국가개입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충격 흡수력이 약한 취약 계층이 주로 타격을 입기 때문에 정부 개입에 대한 국민의 지지 또한 높다. 경제 전문가들조차도 재정 지출 확대를 통해 경기 침체를 극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불의의 재난으로 생계가 위태로워진 취약 계층을 구제하고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우량 기업들을 지원해 시스템 붕괴를 막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코로나19 위기같이 집합 금지 및 영업 제한 같은 정부의 방역 조치로 손실을 입은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 또한 필요하다. 더욱이 교육 및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 투자로 물적·인적 자본이 고도화되고 민간의 창의와 기술 혁신이 일어난다면 정부 역할과 재정 지출 확대의 타당성도 커지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재원이 국민 세금으로부터 나오고 민간의 활동을 구축하기 때문에 재정을 무작정 확대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투입 대비 산출을 극대화하는 적정이론이 재정 지출에도 적용이 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살포하고, 비효율적인 공공 사업을 벌이고, 허드레 일자리를 만드는 데 재정을 낭비하면 위기의 골은 깊어지고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현재는 물론 미래 세대에게 두고두고 부담이 되기 마련이다.

재정은 하늘에서 떨어진 공짜 돈이 아니라 국민의 주머니로부터 나온 돈이기 때문에 정부 지출에도 기회 비용이 수반되기 마련이다. 정부가 세금을 걷지 않았으면 국민이 알아서 어딘가에 썼을 돈을 정부가 대신 쓰는 것이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곳에 도로를 건설하고, 허드레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쓴다면 재정의 기회비용은 커지고 재정의 경기 부양 효과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국채를 발행해서 재원을 조달하는 경우도 재정 지출과 재원 조달 간 시차만 존재할 뿐 큰 차이가 없다.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서 시장금리가 상승하고 민간의 투자가 감소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국가 채무는 세 부담이 증가할 거라는 신호로 작용하기 때문에 예비적 동기의 저축이 늘고 소비는 줄어들게 된다. 문제는 국가 채무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누적될 경우 국가부도 위기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과거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국가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취약한 경제구조로 세입 기반은 약하고 재정은 방만하게 운용됐고,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가계 부채 규모는 크고 저축률은 낮았다. 세입 기반이 약한 가운데 인기영합적인 복지 지출이 늘어나면서 재정 적자는 일상화되고 국가 신용도는 떨어지게 됐다.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했지만 부채에 시달리는 가계와 국내 기업은 이를 사줄 여유가 없다 보니 자연히 외채에 의존한 국가 채무가 늘어나게 됐다. 외채 비중이 높아지면서 작은 충격에도 자금이 회수되는 일이 잦아지고 결국에는 아무리 이자율을 높여도 위험성 높은 국채를 누구도 사주지 않게 됐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재원 조달이 불가능해지면서 화폐 발행밖에 기댈 곳이 없었다. 그러나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는 화폐 발행은 하이퍼인플레이션과 환율 급등으로 귀결되고 국가부도 위기로 치닫게 됐다.

정책 실패를 재정으로 메우려는 재정만능주의가 만연하고 국회의 ‘나라 살림 지킴이’ 역할마저 실종되면서 국가부도 위기를 겪은 나라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가 채무는 지난 5년간 400조원 넘게 늘어 올해 107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36%이던 국가 채무 비율도 50.2%로 높아져 재정건전성의 마지노선이라고 여겨왔던 40%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여기에 비영리공공기관 부채, 공기업 부채, 연금 충당 부채를 합치면 2019년에 이미 110%가 넘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머지않아 일본보다 국가 채무 비율이 높아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일본 등 기축통화국은 아무리 빚이 많아도 발권력을 동원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국가부도에서 자유롭다. 하지만 비기축통화국인 우리나라가 기축통화국 수준으로 국가 채무 비율을 유지할 경우 신용도 하락, 외화 유출, 초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으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새 정부, ‘큰 시장, 작은 정부’ 정책으로 구조적 문제 해결해야

오랜 기간 쌓여온 구조적인 문제와 코로나19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새 정부가 출범을 앞두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저성장, 저출산·고령화, 양극화, 희망사다리 붕괴, 성장과 고용의 선순환 붕괴 등 다중복합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패권경쟁 속 선택의 기로에 서 있으며, 2050 탄소중립 구현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대한민국이 다시 비상하느냐 추락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큰 시장,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정책은 우리가 직면한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다. 정부 지원은 꼭 필요한 곳에 집중돼야 한다. 비대면·디지털화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업종 간, 직종 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노동과 기술의 미스매치가 커지고 한 번 일자리를 잃으면 영구 실업에 빠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노동·기술의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동 정책과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의무 중 하나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고, 기업 활동을 억제하는 정책이 만연할수록 민간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성장이 둔화되며 그 피해가 저소득층에 집중되는 현상은 한 번도 예외가 없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역 분산의 위험성이 커지면서 자국으로 유턴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갈라파고스적인 높은 규제, 반기업·친노조 등 반시장적인 정책이 난무해 유턴은커녕 여전히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이다. 결국 국내 산업 생태계 약화, 양질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다. 새 정부는 민간의 자유와 창의를 억눌렀던 낡은 제도를 혁파해서 한국에서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개인과 민간 또는 시장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정부가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조경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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