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인간과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AI)을 개발하는 실리콘밸리의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기업) 유니포(Uniphore)는 2021년 감성적인 기계 개발 업체 이모션 리서치 랩(Emotion Research Lab)을 인수했다. 인간의 표정과 시선 등을 분석해 사람의 감정을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인텔은 지난 3월 학생들의 감정을 인지하는 AI 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화상 교육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 클래스룸 테크놀로지스(Classroom Tech-nologies)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디지털 기술에 인간의 감성을 접목하려는 두 기업의 사례는 AI와 가상현실(VR)의 발달로 점차 디지털화하고 있는 세상에서도 우리가 여전히 인간적인 공감과 소통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 연구팀은 저서 ‘트렌드코리아 2021’에서 이를 ‘휴먼 터치(human touch‧인간 감성)’라고 정의했다. 말 그대로 고도로 기술이 발달한 사회에서도 공감·소통 등 인간적 손길,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부분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뜻이다. 김 교수 팀은 휴먼 터치를 구현하기 위해 인간적 소통을 강화하고, 기술에 사람의 숨결을 불어넣는 방안을 제시했다. 최근엔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비대면 경제의 부상과 4차 산업혁명 가속화 및 초고령화가 교차되면서 국내외에서 휴먼 터치를 구현하는 기업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VR이나 증강현실(AR) 활용이 커지는 것도 디지털의 인간화를 추구하는 점에서 휴먼 터치 흐름과 맥이 닿는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VR 시장은 올해 284억달러(약 36조49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2030년까지 연평균 15% 고성장을 지속해 870억달러(약 111조7900억원)의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코노미조선’이 휴먼 터치를 다루게 된 배경이다.

신한은행은 2021년 7월 서울 서소문동에 ‘디지로그(DIGILOG) 브랜치’를 오픈했다.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의 합성어로, 최첨단 디지털 기술과 고객을 위한 따뜻한 감성이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고객과의 접촉을 최우선으로 설계된 이 지점은 설계 단계부터 고객 패널을 업체 선정 과정에 참여시켜 고객의 의견을 적극 반영했다. 기존 은행과 달리, 매장 입구 전면을 안이 들여다보이는 유리로 설계해 예비 고객들이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고, 셀프뱅킹 기계를 비치하는 한편 시니어 고객이나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객을 위해 실내 곳곳에 도우미를 배치했다.

현대자동차가 작년에 선보인 ‘리틀빅 이모션(Little Big e-Motion)’은 휴먼 터치를 덧입힌 장난감 자동차다. 어린이 환자가 병원에서 치료받을 때 받는 공포를 줄이기 위해 만든 치유형 장난감 자동차로, 탑승자의 표정·호흡·심장박동수 등 생체 신호를 측정해 이에 따라 반응하는 감정 인식 차량 컨트롤(EAVC‧Emotion Adaptive Vehicle Control) 기술이 탑재돼 있다. 이 차량은 어린 환자들이 불안한 기분을 느낄 때면 터치스크린 속 캐릭터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주거나, 달콤한 사탕 향기를 분사해 긴장감을 풀어주도록 했다.

많은 사람은 이렇듯 휴먼 터치가 부각되는 현상을 코로나19 이후 심화된 언택트(untact·비대면 접촉)에 대한 반동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인간적인 것을 더욱 갈구하는 욕망을 근본적인 이유로 꼽는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John Naisbitt)는 1982년 저서 ‘메가트렌드(Megatrends)’에서 ‘하이터치(high-touch)’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했다. 직역하자면 ‘고감도’로 번역할 수 있는 하이터치는 ‘하이테크(high-tech)’와 정반대 개념인 인간적 감수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휴먼 터치’와 맥을 같이한다. 나이스비트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하이테크를 과도하게 추구한 결과,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기술 중독 지대(technologically intoxicated zone)로 변해버렸다. 

이런 기술 중독 지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이스비트는 인간성을 중시하는 하이터치를 통해 최첨단 기술문명에 대한 균형 감각을 가질 것을 제시했다. 그는 “하이테크는 필연적으로 하이터치를 동반하게 된다”면서 “21세기는 감성이 지배하는 하이터치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저서 ‘AI 슈퍼파워: 중국, 실리콘밸리 그리고 새로운 세계질서(A.I. Superpowers: China, Silicon Valley, and the New World Order)’에서 ‘2033년엔 AI가 인간이 하는 일의 40~50%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던 구글차이나의 전 CEO 리카이푸(李開復)는 2020년 뉴욕타임스(NYT) 칼럼에서 “AI에 휴먼 터치를 덧입히라”면서 “AI가 인간의 창의력뿐 아니라 인간성(humanity)을 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plus point

Interview 제임스 메를리노 클리블랜드 클리닉 최고경험책임자(CXO)
“환자 입장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라”

제임스 메를리노클리블랜드 클리닉 최고경험책임자(CXO)현 클리블랜드 클리닉 외과 교수, 환자경험협회(Association for Patient Experience) 설립자, 헬스 리더스(Health Leaders) 저널 선정 ‘2013년 의료계를 빛낸 20인’, ‘환자의 경험이 혁신이다(Service Fanatics)’ 저자 사진 클리블랜드 클리닉
제임스 메를리노클리블랜드 클리닉 최고경험책임자(CXO)현 클리블랜드 클리닉 외과 교수, 환자경험협회(Association for Patient Experience) 설립자, 헬스 리더스(Health Leaders) 저널 선정 ‘2013년 의료계를 빛낸 20인’, ‘환자의 경험이 혁신이다(Service Fanatics)’ 저자 사진 클리블랜드 클리닉

4분 남짓한 동영상에선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한 달째 심장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 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들을 보며 눈물짓는 가족,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선고를 듣고 망연자실한 부부. 슬픔과 혼란에 빠진 사람들 모습이 지나간 뒤 영상 끝부분엔 한 줄 자막이 뜬다. ‘그들이 듣는 것을 듣고, 보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을 느낀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본원을 둔 병원 클리블랜드 클리닉(Cleveland Clinic) 소개 영상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예우와 공감을 보여주는 이 동영상은 유튜브에서 600만 회 이상 조회 수를 기록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환자 중심주의(Patients First)’를 모토로 2007년 미국 최초로 환자 경험 센터(Office of Patient Experience)를 설립해 환자에 대한 서비스와 환자 및 의료진 사이의 교감에 집중하고 있다. 

2008년 ‘US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에서 서비스 부문 미국 내 최하위를 기록했던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2019년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병원 2위에 기록될 만큼 10여 년 만에 빠르게 환골탈태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변화는 ‘하버드 비즈니스리뷰’ 등에도 경영 성공 사례로 자주 거론됐다. 2007년부터 센터의 최고 경험 관리자를 맡고 있는 제임스 메를리노(James Merlino) 외과 교수는 ‘이코노미조선’과 서면 인터뷰에서 “2004년 아버지가 클리블랜드 클리닉에서 방광암 수술을 받다가 돌아가셨을 때 환자와 가족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했다.

환자 경험 센터와 CXO의 업무는 무엇인가.
“우리 병원이 환자와 그 가족들을 모든 업무의 중심에 두는지 확인하는 데 전념하는 것이다. (환자들이 편안해할 수 있는) 경험 전략을 짜고, 의료진이 하는 모든 계획과 업무에 환자가 중심이 되도록 병원 운영자들을 설득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의사가 환자의 불만 사항을 알아채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그들이 잘 보호받고 있는지, 그들의 요구가 다 충족되고 있는지 직접 물어서 확인해야 한다. 의료진은 환자들이 돌봄을 잘 받고 있다고 느낄 거라고 추측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의사와 환자 사이엔 매우 명백한 위계 관계가 만들어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무조건 의도적으로 환자에게 질문하고 들어라. 의료진이 환자를 중요시한다고 느끼도록 그들에게 시간을 할애하라.”

의사들이 환자와 더 잘 소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흔히들 무심한 객관주의(detached objectivity)가 환자를 치료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따뜻함, 보살핌, 공감이 포함된 소통 기술이야말로 환자에게 중요하다. 외과 시술 기술처럼 커뮤니케이션도 기술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훈련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도 병원에서 이런 공감 능력이 중요하리라고 생각하나.
“나는 기계가 간병인과 환자 사이의 기본적 인간관계를 대체하리라 생각지 않는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오윤희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