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최대 물동항인 오데사 항구. 러시아 흑해 함대가 기뢰 설치 등으로 이 항구를 포함해 인근 해상을 봉쇄한 탓에 100여 척의 곡물 수송선 발이 묶여 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가 5월 24일(이하 현지시각) 비밀 해제된 미 정보 당국 자료를 인용해 묘사한 모습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5월 23일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인 다보스포럼 화상 연설에서 “2200만t의 곡물과 해바라기유 등이 수출 길이 막혀, 썩고 있다”며 서방이 러시아의 해상 봉쇄를 끊어낼 것을 촉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도발한 우크라이나 침공이 식량 위기 심화의 진원지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밀 수출의 10%를 차지하는데, 이 물량의 95%는 흑해 항구를 통해 수출된다. 

전 세계 밥상이 인플레이션(인플레) 습격을 받고 있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 세계의 밀 28%, 보리 29%, 옥수수 15%, 해바라기유(油) 75%를 공급하는 식량 대국인데다, 러시아가 세계 최대 비료 수출국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상 기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식량보호주의까지 겹치면서 지구촌이 식량 위기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전쟁 전 세계 최대 밀 생산국인 중국은 작년 홍수 탓에 올해 밀 작황이 최악을 기록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세계 2위 밀 생산국인 인도는 폭염으로 밀 수출을 금지한다고 5월 13일 발표하고 24일 설탕 수출 제한 조치도 내놓았다. 식량 수출 통제 국가는 이미 26개국으로, 해당 식량은 전 세계의 15%(열량 기준) 수준이라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신 호에서 전했다. 

이상 기후, 팬데믹,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우크라이나 전쟁), 보호주의 등 4중고는 유엔 집계 세계 식량가격지수를 팬데믹 직전인 2019년 95.1에서 올 4월 158.5로 치솟게 했다. 국제 밀 가격은 연초 대비 50% 넘게 상승했다. 이 여파로 밀가룻값이 뛰었고 빵값, 라면값까지 줄줄이 오르고 있다.

밥상 물가는 곡물에만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서는 삼겹살 가격이 치솟아 ‘금(金)겹살’이 됐다. 5월 18일 기준으로 국내산 삼겹살 1㎏의 소비자가격은 전년 5월 대비 15.4% 오른 2만8290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거리 두기 해제로 돼지고기 수요가 늘고, 곡물 가격 급등으로 사료용 곡물 가격도 뛰자 고깃값도 덩달아 오른 것이다. 업계는 앞으로 고깃값이 더 오를 것으로 본다. 보통 5~6개월치를 미리 구매하는 사료용 곡물 특성에 따라 이제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이 본격적으로 사료용 곡물 수급에 영향을 끼치게 되기 때문이다.

식량 인플레는 단순한 물가 상승을 넘어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 유엔(UN)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기아 위기에 놓인 인구가 8000만 명에서 2억7600만 명으로 급증했다. 지구촌 식량 위기이자 식량 인플레 사태다. ‘이코노미조선’이 ‘비상 걸린 식탁 인플레’를 기획한 배경이다.


식량 공급 ‘비상’에 가계 장바구니 ‘울상’

한국 장바구니 물가도 심상찮다. 마트에서는 벌써 ‘식용유 대란’과 ‘밀가루 대란’이 일어났다. 이마트의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는 1인당 식용유 구매 수량을 두 개로 제한했다. 5월 18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콩기름(900mL)의 5월 평균 판매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3674원)보다 33.8% 올랐고, 해표 식용유(900mL)도 4071원에서 4477원으로 비싸졌다. 밀가룻값도 오르면서 식당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밀가루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났다. 

지난 4월엔 해태제과와 롯데제과가 대표 과자 제품인 ‘허니버터칩’과 ‘빼빼로’ 가격을 13.3% 올렸다. 한국은 소비하는 밀의 99%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수입 밀의 약 80%는 미국과 호주, 우크라이나 3개국이 공급한다. 식량 인플레에 가계가 느끼는 체감 물가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5월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4월 소비자물가는 4.8% 상승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반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식탁 인플레는 정권마저 흔든다. 5월 21일 호주 총선에서 8년 9개월만에 자유·국민연합에서 노동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게 대표적이다. 호주 물가 상승률은 2001년 이후 최고치에 올랐고, 주택가격도 폭등한 상황이다.


식량 인플레 잡을 묘안은 ‘식량 자급률’

치솟는 밥상 물가를 잡는 묘안은 무엇일까. 금리 인상 같은 통화 정책은 농가의 비용을 키워 악순환을 이끌어낼 수 있다. 각국 정부와 식품 기업, 애그테크(AgTech·농업+기술) 기업은 한목소리로 ‘식량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외친다. 한정된 공간에서 적은 비용을 투입해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일만이 전 세계 공급망 문제로 대두된 식량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식량 자급률을 높일 방안으로 농업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IT(정보기술)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디지털 농업이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첨단 실내 농업 스타트업이자 나스닥시장에도 상장된 ‘앱하비스트(AppHarvest)’는 수경재배(水耕栽培·흙을 사용하지 않고 작물을 키우는 농법)와 AI, IoT, 로봇 기술을 접목해 생산 비용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였다. 이스라엘 애그테크 스타트업 ‘애그로스카우트(AgroScout)’는 드론으로 농작물 항공 이미지를 촬영하고 AI로 분석하고, 병충해와 농작물 상태를 실시간으로 점검해 농가에 알려준다. 병충해는 농업 생산량을 감소시키고 농작물 질에도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축산 부문도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다. 

국내 ‘축산테크’ 스타트업인 ‘한국축산데이터’는 AI와 바이오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해 소와 돼지 개체 면역력을 높이고 있다. 가축 질병을 예방하고 약품 비용을 줄이면 축산 생산량이 극대화된다.

직접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 있는 기업뿐만 아니라 식량의 대체 공급처와 수요처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기업도 각광받는다. 글로벌 농산물 B2B(기업 간 거래) 시장에서 첫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 될 것으로 보이는 ‘트릿지(Tridge)’는 각국에 있는 현지 직원과 AI로 전 세계 수백만 공급자가 생산하는 농산물 15만 종의 가격과 품질, 물량 데이터를 집대성했다. 트릿지의 신호식 창업자는 데이터 기반의 글로벌 농산물 거래 플랫폼을 통해 구매자와 판매자 간 정보 비대칭을 줄이게 되면 식량 인플레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plus point

尹 정부 출범…‘식량 주권’ 강조
정황근 농식품부 장관 “밀 자급 확대”

5월 11일 취임한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식량 주권’을 강조했다. 정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자급률이 낮은 밀과 콩의 국내 생산 기반과 비축 인프라(기반 시설)를 확충해 쌀에 편중된 자급 구조를 밀과 콩 등 주요 곡물로 확대하겠다”라고 밝혔다. 또 “밀가루를 대체할 건식 쌀가루 산업화를 핵심 프로젝트로 추진해 식량 안보 문제와 쌀 수급 안정 문제를 개선하겠다”라며 “해외 곡물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기업을 지원해 비상시 안정적 해외 공급망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식탁 인플레가 미치는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물가 안정 및 민생 대책을 곧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다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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