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개 솔드(sold)! 2.7! 10개 추가 2.7!”

6월 3일 오후 3시 29분. 서울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2층 외환 딜링룸에서 원·달러 거래가 종료되기 직전 직원들의 육성이 터져 나왔다. ‘40개 솔드(1개=100만달러)’란 4000만달러를 사겠다는 주문이 들어왔다는 뜻이고, ‘2.7’은 원·달러 환율의 끝자리다. 3시 30분이 되자 딜링룸 전광판에는 원·달러 환율 종가가 1242.7원이라고 표시됐다. 전일 14.9원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하루 만에 9.4원 떨어지며 장을 마감했다.

국내에서 외환 거래를 가장 많이 하는 이 딜링룸에서 2004년부터 18년간 근무한 고규연 유닛리더(팀장)는 “5월 13일에는 원·달러 환율이 장중 1291원까지 오르며 연중 최고점을 찍었고, 최근 하루 등락 폭도 10원을 넘는 날이 많아지면서 변동성이 큰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를 연상케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여파로 미국의 통화 긴축과 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졌고, 최근 루나 사태로 위험자산인 암호화폐 가격이 내리면서 안전자산인 달러 강세가 나타났다”며 “최근 중국 코로나19 방역에 따른 봉쇄 해제나 유로존 금리 인상 소식 등이 나오면서 달러 강세가 진정됐지만, 중기적인 관점에서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고 했다.

환율이 널을 뛰면서 경제 주체들을 둘러싼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기축통화국 미국의 통화 정책이 혼돈의 환율에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5월 4일(이하 현지시각) 22년 만에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금리 인상을 단행한 뒤 한 달간(5월 6일~6월 6일·총거래일 20일) 원·달러 환율이 장중 8원 이상 오르내렸던 날은 8일에 달했다. 전날 종가와 10원 이상 차이 나게 마감한 날도 5일이나 됐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 인덱스도 100선을 돌파했다. 올해 초 달러 인덱스는 96.21이었으나, 5월 12일 104.92까지 올랐다. 20년 만의 최고치다. 이후 다시 하락세를 보이긴 했지만, 6월 초 여전히 102선에서 머물고 있다.

달러가 강세로 전환한 건 지난해부터다. 달러는 2018년부터 약 2년간 대체로 강세를 보였다가, 2020년 4월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대폭 늘고 실업자가 증가하는 등 경제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약세로 돌아섰다. 미 정부의 대규모 경기 부양책, 연준의 유동성 공급 확대가 맞물리면서 2020년 말까지 달러 하락세가 지속됐다. 

그러나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대규모 양적 완화로 유동성이 넘친 데다, 글로벌 공급망 위축으로 물가가 급등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 시그널을 내보내면서 강달러 흐름으로 바뀐 것이다. 투자자들은 연준의 긴축 속도가 다른 중앙은행보다 빠를 것이라고 예상하며 주식, 암호화폐 같은 위험자산 대신 안전자산인 달러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유럽·일본의 경기 둔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도 세계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며 달러 환율 변동세에 불을 붙였다. 일반적으로 달러와 원자재 가격은 반대로 흘러가지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 부족 현상이 더해지면서 달러 강세, 원자재 가격 급등 현상이 한꺼번에 나타났다. 엔화 가치는 일본이 미국 금리 인상에도 제로금리를 고수한 탓에 6월 9일 장중 달러당 134엔으로 20여 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중국 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강력한 봉쇄 조치가 시행돼 공급망 차질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로 중국 위안화와 신흥국 통화 약세가 가속화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 전망에 대한 불안 심리가 커지자 강한 달러 매수세가 나타났다. 세계은행은 6월 7일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9%로 5개월 새 1.2%포인트 하향 조정하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지속적인 물가 상승)을 경고했다.



외국인 자금 빠지고, 외환보유액도 감소 

우리나라도 환율 불확실성에 갇혀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5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에 1300원대를 넘보다, 최근 120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방향성은 불명확하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 탓에 국내에 들어왔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고, 4월부터 2개월 연속 무역 적자를 내고 있고, 재정 적자까지 겹쳐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어서다. 올해 2월(18억6000만달러) 순유출되기 시작한 외국인 주식 투자금은 올 들어 4월까지 약 82억3000만달러(약 10조5000억원) 빠져나갔다. 

‘국가 외화 비상금’인 외환보유액도 크게 줄고 있다. 외환 당국이 달러 강세를 막고자 외환보유액에 있는 달러를 팔고 있는 탓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4692억1000만달러(약 598조원)로 사상 최대였지만, 7개월 만에 215억달러(약 27조4000억원)가량 줄었다. 전 세계 외환보유액 순위도 8위에서 9위로 내려앉았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高) 악재’ 속에 취임한 윤석열 정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월 10일 업무 시작과 동시에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부터 꾸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에 육박하고 있는데, 경제 성장률이 2% 중반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탓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6월 3일 “경제 위기를 비롯한 태풍 권역에 우리 마당이 들어가 있다”며 “지금 집에 창문이 흔들리고 마당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거 못 느끼느냐”고 말했다. 

기업들도 단순히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수입 기업은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원가 절감, 수입처 다변화, 수입 물량 조절 등을 고민하고 있다. 환헤지 상품 수요도 늘어나는 편이다. 한국무역보험공사에 따르면, 환율을 고정하는 환변동보험 가입액은 올해 초부터 5월 말까지 6000억원을 넘어섰다. 5개월 만에 지난해 하반기 환변동보험 가입액(5200억원)을 뛰어넘은 셈이다. 원화 약세라고 수출 기업이 웃을 수 있는 환경도 아니다. 원자재·에너지값 상승이라는 변수가 작용해 ‘환율 상승-수출 기업 수혜’ 공식이 깨졌기 때문이다. 

개인들도 변동하는 환율에 고민이 커졌다. 미국 주재원들은 외식을 끊고, 유학생들은 공부하면서도 환율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미국 거주·유학을 준비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환율 폭등에 현지 물가까지 올랐다고 하니까 1년짜리 미국 연수를 미룰지 고민된다” “1300원을 넘길 거라 생각해 미리 환전했는데 떨어졌다”는 글이 올라왔다. 코로나19 방역 완화에 미국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몇 년 만의 여행인데, 이전보다 돈이 1.5배는 더 드는 것 같다” “환율이 내릴 거라 믿고 신용카드를 쓰려고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 직구족도 강달러에 지갑을 닫아 올해 1분기 해외 직구액은 전 분기 대비 10%가량 줄었다. 

정부와 개인, 기업 할 것 없이 모두의 눈이 미국을 향한다.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고, 긴축 정책이 성장을 억제할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연준이 언제든 방향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강달러 추세는 얼마든지 꺾일 수 있는 상황이다. 

급변동하는 환율 환경 속 대응 전략에 대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코노미조선’이 커버 스토리로 ‘혼돈의 환율’을 기획하고, 배리 아이켄그린, 스티븐 로치, 제프리 프랑켈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경제 석학과 국내 외환·증권 전문가, 환테크 투자자 및 플랫폼 창업자 등의 목소리를 들은 이유다.

안소영·심민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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