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 독일 HR(인력 관리)테크 스타트업 ‘페르소니오’는 지난해 두 차례나 투자를 받았다. HR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업체인 이 회사는 지난해 1월 1억2500만달러(약 1666억원)를 받았는데, 같은 해 11월에 2억7000만달러(약 3600억원)를 유치했다. 기업 가치도 63억달러(약 8조4000억원)로 1년 새 네 배 가까이 오르며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에 등극했다. 

# 국내 HR테크 스타트업 ‘플렉스’도 올해 1월 18일 38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기업 가치는 3500억원으로 평가받았으며 8월 현재 5000억원을 넘어섰다. 플렉스 투자를 주도한 그린옥스캐피털은 디스코드, 스트라이프, 로빈후드 등 내로라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한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로, 투자사 중 한국 기업은 쿠팡뿐이었다. 국내에서 근태 관리, 급여 정산, 전자계약 등을 다루는 플렉스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나온 이유다. 

보수적이고 변화가 더뎠던 HR 업계에 혁신 기업들이 잇따라 등장하면서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는 사례들이다. 시장 정보 업체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HR테크 스타트업에 123억달러(약 16조3900억원) 이상의 자본이 투자됐다. 2020년의 약 3.6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HR테크 시장에 자금이 밀려들기 시작한 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 불러온 대퇴직(Great Resignation) 행렬로 HR테크가 ‘귀한 몸'이 됐기 때문이다. 자발적 퇴사자들이 늘면서 20년 만에 최악의 인력난을 겪는 미국이 대표적이다. 미 노동부의 구인·이직보고서(JOLTS)에 따르면 지난 3월 미국 기업들의 구인 건수는 1155만 건으로, 2000년 12월 통계 집계 이래 최대치였다. 같은 기간 자발적 퇴직자 수도 454만 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팬데믹 여파로 직장을 떠난 근로자들이 높은 실업수당과 자녀 양육 문제로 돌아오지 않으면서 구인난이 나타난 것이다. 영국과 벨기에, 프랑스, 일본 등에서도 구인난이 속출하고, 노동조합의 파업이 이어진다. 

특히 팬데믹을 거치면서 근무의 유연성을 보장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고 긱 워커(gig worker⋅조직과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수입을 올리는 근로자) 같은 프리랜서 유형의 일자리를 선호하는 근로자들이 늘어난 것도 대퇴직을 부추겼다. 리서치 애널리스트 조시 버신은 “직원 우선 경제학 개념이 자리 잡고 있다”며 “기업들은 여느 때보다 직원 의존도가 높고, 투자 업계에서는 직원 중심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직자 우위 시장 형성은 미국과 유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대기업들이 신입 공채 전형을 폐지하고 경력직 중심의 수시 채용을 늘린 뒤, 능력만 되면 이직을 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이직의 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나온다. 

더욱이 팬데믹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Digital Transformation)이 빨라지면서 전 산업에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IT 기술 인력난이 심화한 데다 원격 근무 도입으로 인재가 전 세계 어디에 있든 채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 HR 업무는 대변화에 직면했다. 

HR테크 기업은 채용에서부터 관리, 교육, 인재 유출 방지까지 다방면에서 기술을 활용한 혁신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2021년 ‘대퇴직’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앤서니 클로츠(Anthony Klotz)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부교수가 “팬데믹 2년간 HR의 미래가 현실이 됐다”고 할 정도다. BCG컨설팅에 따르면, △인재 수요 예측(엠시 버닝 글래스) △개인별 역량 평가(엠파스·스카이하이브) △구인 및 사내 후보 매칭(하이어뷰·카탤런트·업워크·글로트·에잇폴드) △직원 업무 기술 및 역량 증진(디그리드·에드캐스트·베터업) △직원의 조직 적응 지원(스타마인드·비바토픽스) △직원 성과 및 참여도 관리(라티스·15파이브) 등 다양한 인사 관리 분야에서 기술로 무장한 전문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HR테크 기업이 채용 및 인재 관리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적확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구직자 평판을 데이터화해 온라인 평판 조회를 가능케 한 ‘스펙터’, AI를 통해 스타트업에 적절한 인재를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선보여 채용 성공률을 높인 ‘원티드’ 등이 대표적이다. 원티드가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할 정도로 몸집이 커지자 ‘잡코리아’ ‘사람인’ 등 국내 1세대 채용 플랫폼들도 AI나 빅데이터,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 등 신기술을 도입해 쌍방향 추천, 화상 면접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섰다. 

포천비즈니스인사이츠는 2020년 228억달러(약 30조원)에 달했던 HR테크 시장이 2028년 356억달러(약 47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 조사 업체 맥시마이즈마켓리서치는 인적자본관리(HRM)에 적용하는 소프트웨어 솔루션인 SaaS 시장이 2027년까지 연평균 10.1%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클로츠 부교수는 “팬데믹 이후 기업은 인재 영입과 유지를 위해 유연 근무, 재택근무 등 다양한 혜택을 도입했고 채용은 물론, 성과 관리, 경력 개발까지 직원의 모든 ‘라이프 사이클’을 지원해야 한다고 깨달았다”며 “이 모든 혁신을 위해서는 기술 기반이 필수이기에 HR 테크는 투자 업계에서 핫한 분야가 됐다”고 했다. ‘이코노미조선’이 팬데믹 이후 판 바뀌는 노동 시장에 주목해, HR테크를 조명한 기획을 마련한 이유다.


plus point

Interview 국내 1호 액셀러레이터 스파크랩 김유진 공동대표
“HR 시장 성장세 당연…인력 관리는 모든 기업의 난제”

김유진 스파크랩 공동대표전 텐센트코리아 해외사업개발실 총괄, 전 포도트리사업개발부분 이사, 전 버티고게임즈 해외사업본부장, 전 NHN USA 본부장 및 매니저
김유진 스파크랩 공동대표전 텐센트코리아 해외사업개발실 총괄, 전 포도트리사업개발부분 이사, 전 버티고게임즈 해외사업본부장, 전 NHN USA 본부장 및 매니저 사진 스파크랩

“매일 ‘훌륭한 임원, 유능한 개발자를 찾는다’ ‘직원 추천 좀 해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모든 기업이 채용과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의미다.”

김유진 스파크랩 대표는 7월 21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HR 시장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HR테크가 왜 필요한지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기존 HR 기업들의 변화가 크지 않아 스타트업들에 기회가 있다고 봤다”고 했다. 

2012년 설립된 스파크랩은 ‘원티드랩’ ‘스펙터’ ‘나인하이어’ ‘스윙비’ ‘커리어데이’ 등 HR테크 기업에 초기 투자한 국내 1호 액셀러레이터로, 원티드랩의 코스닥 시장 상장까지 지켜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다양한 HR테크 스타트업이 늘어난 배경은. 
“요즘 국내 창업 생태계가 성장하면서, 연쇄 창업자나 직장인 출신이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경험해봤던 ‘인재 영입’ ‘직원들의 조직 적응’ 문제에 관심 갖는 창업자가 많은 것 같다. 또 ‘이 솔루션보다는 내가 생각한 방법이 나은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서 출발해 인력 관리 SaaS 플랫폼을 선보이는 경우도 있다.”

HR테크 스타트업의 성공 요건은. 
“사실 모든 스타트업에 해당하는 이야기인데, ‘어떤 문제가 있느냐’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낼 것인가’를 보면 된다. 문제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창업부터 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앞으로 어떤 HR 기업이 등장할 것이라 보나.
“과거에는 ‘기업이 성공하려면 모든 직원이 한 건물에 모여 한 마음으로 일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러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제는 ‘흩어져있는 직원들을 어떻게 잘 관리할까’ ‘직원들끼리 비대면으로도 잘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뭘까’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이를 다루는 솔루션이 나올 것 같다. 또 ‘자리에 오래 앉아있는 직원이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는데, 이제는 이러한 기준으로 파악하기 힘들다 보니 직원 생산성 향상, 성과 측정 솔루션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 같다. 글로벌화로 전 세계에 직원들을 두는 경우가 늘어, 글로벌 인재 관리 솔루션도 더욱 주목받을 것이라 본다.”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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