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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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에서 반도체 설계 인프라 관리 부문을 이끌던 한국계 인재 이석 부사장이 지난 6월 미국의 인텔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4~6월)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램리서치의 윤석민 수석 디렉터를 삼성전자 설비기술연구소 부사장으로 데려왔다. 세계 D램 시장점유율 3위인 미국 마이크론도 최근 링크드인 등 구인·구직 플랫폼을 통해 한국인을 대상으로 채용에 나섰다. 마이크론은 극자외선(EUV) D램 생산 경험을 보유한 한국 반도체 기업의 직원 영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미국, 일본 등 7개국서 인력을 상시 채용 중인 TSMC는 9월 11일 해외 석·박사들을 대상으로 채용설명회 성격을 띤 온라인 행사를 처음으로 진행한다.

반도체 인재 확보를 위한 국경 없는 전쟁이 가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반도체 인재 전쟁 뒤에는 반도체 인력 쇼티지(부족)가 있다. 미국의 인력관리회사 에이트폴드는 2025년까지 미국에 7만~9만 명의 반도체 전문 인력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미국의 반도체 자립 현실화에는 최소 30만 명의 추가 인력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제조 강국인 한국과 대만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국내 반도체 인력은 2020년 기준 17만7800명 수준으로, 매년 고졸부터 석·박사급까지 1600여 명이 부족한 것으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정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 인력을 올해 6월 기준 6만8121명으로 10년 새 2.3배 늘렸지만 국내 업계는 여전히 인력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대만 구인·구직 업체 104인력은행에 따르면 대만의 반도체 산업 종사자는 2021년 말 기준 29만 명으로 2년 전에 비해 6만5000명(28%) 늘었지만, 부족 규모가 3만4000명으로 같은 기간 77% 급증했다. 미국 견제에도 반도체 굴기(崛起)에 속도를 내는 중국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베이징에 있는 기술 연구기관 이퀄오션에 따르면 중국의 반도체 인력 규모는 최근 5년 새 두 배 늘었지만, 2020년 기준 25만 명이 부족한 상태다. 

반도체 인력 부족 심화는 공급에 비해 수요가 급증한 탓이 크다. 여기엔 반도체 쇼티지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이 빨라지면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한 데다 반도체 공급망까지 영향을 주면서 반도체 쇼티지가 확산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은 올해 6332억달러(약 865조5800억원) 규모로 팬데믹 직전인 2019년(4286억달러) 대비 48% 정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기존 반도체 제조 대국인 한국과 대만의 생산 확충에 더해 미국과 유럽의 반도체 자립 바람이 거세지면서 인력 수요가 급증했다. 미국의 반도체 생산능력 부활은 미·중 갈등이 심화하면서 반도체에서도 ‘세계 공장’이 되려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성격이 짙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3월 브라운대 강연에서 “미국은 반도체 산업을 창조했지만 전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이 1990년 이후 37%에서 12%로 떨어졌고, 세계 최첨단 반도체의 90%는 대만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자연재해, 정치적 불안이 해외 반도체 생산시설에 타격을 준다”며 “이는 미국의 제조시설을 닫게 해 미국 근로자와 가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만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인 데다 최근 대만 독립을 둘러싸고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미국으로선 반도체 자립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인터넷 등 빅테크로 인재가 몰린 것도 반도체 인력 부족을 부채질하고 있다. 반도체 쇼티지가 촉발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조정이 반도체 인력 쇼티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인재 전쟁은 메모리 반도체 1위인 한국이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할지, 추격을 당할지를 좌우할 수 있는 이슈다. ‘이코노미조선’이 ‘반도체 인재 전쟁’을 기획한 이유다.

반도체 인재 전쟁에는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뛰어들고 있다. 향후 10년간 15만 명의 반도체 인재 양성 목표를 세운 윤석열 정부는 내년 반도체 인력 양성 예산을 올해보다 1.5배 증가한 4500억원으로 잡았다. 9개교의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 신설을 돕고, 폴리텍대 반도체학과를 10곳에 설립하는 것을 지원한다. 대만은 2021년 5월 기업과 손잡고 대학이 반도체 특성화 대학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켜,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10% 늘렸다. TSMC의 마크 류 회장은 “산학 협력이 대만 반도체 산업 향후 10년의 기초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국도 정부가 나서서 반도체 전공자 양성 학과를 최상위인 1급 학과로 만들거나 특성화 대학을 세우고, 해외 인재 유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 반도체 특성화 대학을 설립한 곳만 칭화대 등 12곳에 이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9일(현지시각) 서명한 ‘반도체 산업 육성법’은 527억달러(약 72조409억원)를 지원하는 내용으로, 우선 연구개발과 인력 확보에 132억달러(약 18조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스터 반도체’로 불리는 진대제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반도체 설계와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는 고급 인력으로, 반도체학과를 갓 졸업한 사람은 최소 20년은 지나야 그런 인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처럼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와 장기적으로 첨단 반도체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석·박사급 고급 인력을 투트랙으로 양성해야 한다(남은영 동국대 글로벌무역학과 조교수)”는 주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plus point

Interview 정덕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실험 실습 경험 풍부한 석·박사급 인재 필요”

정덕균 서울대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서울대 전자공학과,UC 버클리 전기컴퓨터공학박사, 현 국민의힘 반도체특위위원, 전 서울대반도체 공동연구소장 사진 정덕균
정덕균 서울대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서울대 전자공학과,UC 버클리 전기컴퓨터공학박사, 현 국민의힘 반도체특위위원, 전 서울대반도체 공동연구소장 사진 정덕균

“석·박사급 인재를 늘려야 한다.”
정덕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8월 22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지난 6월 출범한 국민의힘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반도체 특위) 위원으로 선임된 반도체 전문가다. 정 교수는 “학부 졸업생만 늘리는 것은 반도체 인력 확충이지 인재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대학원에서 반도체칩 설계 등 실습을 해 본 고급 인재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내 반도체 인재 상황은. 
 
“국내에서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계의 인재 확보가 크게 취약하다. 메모리나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에서는 소자 공정 쪽에서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팹리스 업계에 비하면 인력 수급은 최악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반도체 설계 분야는 고도의 창의성과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전문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에 다른 반도체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급 인력이 요구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반도체 전문가 양성 교육에 들어가는 돈이 과다하다는 점이 문제다. 예를 들면 설계 분야에서 박사를 한 명 배출하기 위해선 학위 기간에 반도체칩을 3~4개 설계하고, 제작된 칩이 제대로 동작하도록 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운동선수를 양성하는 데, 책으로 아무리 많이 가르쳐도 실전 훈련이 없으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반도체 회로 설계를 전공하는 교수들이 칩 제작 등 연구비 부족 때문에 다른 분야로 전공을 바꾸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배출되는 반도체 고급 인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떤 인재가 필요한가.
“궁극적으로는 학부가 아닌, 석·박사급 인재가 필요하다. 물론 학부에서 좋은 교육을 받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 석·박사급 인재를 키우려고 해도 반도체를 전공한 우수 학부 학생이 부족하면 대학원에서 좋은 인재를 양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표방할 만한 해외 인재 육성 모델은.
“지금 우리나라는 반도체 인재 확보 경쟁에서 크게 밀리고 있다. 이를 극복할 좋은 방법은 최고급 인재를 양성해, 충분한 보상과 함께 이들이 창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내가 알고 있는 좋은 모델은 이스라엘의 ‘탈피오트 프로그램’이다. 이스라엘의 고등학교 졸업생 중 우수한 인재 80여 명을 뽑아 국가에서 대학을 무상으로 보내주고, 9년간 국방 연구에 종사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배출된 인재가 이스라엘의 벤처기업을 선도하고 있다.”

심민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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