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조선비즈가 개최한 ‘2022 헬스케어이노베이션 포럼’에서 새로운 통상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바이오·제약 산업의 기술안보 전략을 논의 중인 전문가들. 왼쪽부터 박성준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교수, 정태성 에이치앤컨설팅 대표, 김정아 애스톤사이언스 연구개발(R&D)·지식재산권(IP) 관리 이사, 김성중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고준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진 조선비즈
11월 10일 조선비즈가 개최한 ‘2022 헬스케어이노베이션 포럼’에서 새로운 통상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바이오·제약 산업의 기술안보 전략을 논의 중인 전문가들. 왼쪽부터 박성준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교수, 정태성 에이치앤컨설팅 대표, 김정아 애스톤사이언스 연구개발(R&D)·지식재산권(IP) 관리 이사, 김성중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고준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사진 조선비즈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산·학·연과 법조계로 구성된 통상 전문가 5인이 한자리에 모였다. 미국과 중국이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해 벌이는 통상 분쟁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반도체로부터 시작된 양측의 ‘기 싸움’은 배터리를 넘어 제약·바이오 산업으로 확전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무역 질서를 책임져왔던 세계무역기구(WTO), 자유무역협정(FTA)도 무용지물이다. 이른바 ‘신기술 냉전’이다.

당장 지난 9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제약·바이오에서도 미국이 국가 안보를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겠다고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1월 10일 조선비즈가 개최한 ‘2022 헬스케어이노베이션 포럼’에서 진행된 좌담회 좌장은 박성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교수가 맡았다. 정태성 에이치앤컨설팅 대표, 김정아 애스톤사이언스 연구개발(R&D)·지식재산권(IP) 관리 이사, 김성중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고준성 산업연구원(KIET)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바이오·제약 산업의 미·중 갈등 대응 전략을 공유했다.

좌담회에서는 국내에서 제약·바이오 혁신과 산업 진흥이 일어나야 하는 시점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이 미·중 패권 다툼 심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기술력뿐이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기업이 국가 정책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중심을 잡고 입법 등의 절차를 통해 강력하게 대응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좌담회 이후 11월 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국가 합성생물학 이니셔티브(전략)’를 발표했다.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은 인공세포, 유전자, 단백질 등을 설계·제작·합성하는 학문·기술을 뜻한다. 정부는 이번 첨단 바이오 육성 전략을 통해 2024년부터 5년간 첨단 신약과 바이오 에너지 개발 등에 활용되는 ‘바이오 파운드리’ 분야에 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2030년까지 전문인력 1000명을 육성할 계획이다.


471_20_01.jpg
이미지 크게 보기

박성준 글로벌 공급망이 분할 중이다. 위험 관리 전략은.

김정아 “애스톤사이언스는 바이오벤처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이오 디스커버리 단계 연구는 하지 않는다. 임상 디스커버리가 끝난 약물을 라이선스 인 해 임상 1, 2상에 올려 추가 가치를 높이기 위한 퍼스트 인 클래스 신약을 만들려는 경영 모델을 갖고 있다. 우리는 임상 1, 2상 파이프라인 약물 몇 종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 2상 임상시험계획(IND)을 승인받고 첫 환자를 인도해야 하는데 바이든 행정부가 9월 서명한 행정명령을 보고 국내서 약물을 생산하면 미국에서 임상 2상 성공 후 라이선스 아웃(기술 이전)할 때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우리는 위탁생산(CMO)을 미국 회사에 맡겨 조금 자유로운 편이지만, 보수적으로 보면 진도 빠른 약물의 라이선스 아웃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다만 아직 미국에서 (바이오 이니셔티브) 구체적 내용은 발표되지 않았다. 기업 입장에서 큰 이슈다. 빨리 해결돼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사업을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다.”

김성중 “각국이 과거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무역에서 완전히 전환해 자국 내에서 혁신과 생산을 일으키고 수입에 대해 장벽을 세우는 기조는 제약·바이오 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큰 흐름의 중심에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있다. 미국의 반응이 기존 통상 규범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기조로 가고 있다. 첫 번째는 안보 의식이다. 코로나19가 미국 사회에서 중국산 의약품 안전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트리거가 됐다. 미국이 중국산 의약품에 더는 의존하면 안 되겠다는 일종의 방어적 안보 관점에서 출발했다. 두 번째는 중국의 경쟁력 격차 추격을 뿌리치겠다는 미국의 의지다. 미국이 중국 화웨이에 가혹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현재 제재가 다가 아니라 앞으로 더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강한 규제들이 계속 뒤따를 것을 전제하고 시장의 플레이어들은 모두 이 같은 관측에서 준비해야 한다.”

고준성 “산업통상이 전제돼야 한다. FTA를 추진하는 것은 협정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걸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이나 시장이 더 좋은 조건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협정을 짠다. 2019년 5월부터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조치 근거는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을 초래할 수 있는 국가, 개인, 연구기관 등에 대한 제재다. 당시 5개에 불과했던 제재 대상 기업이 600개까지 늘었다. 반도체 분야는 사실상 모든 기업이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바이오 분야는 그 전 단계다. 미국의 대중국 제재의 바탕에는 중국이 불법적으로 미국 기업의 첨단 핵심 기술을 도둑질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미국 입장에선 정당한 근거가 국가 안보이고, 구체적인 사유는 지식재산권(IP) 침해와 불법적인 산업보조금 지원이다. 중국에 대한 제재를 통해 민감 기술을 중심으로 한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이 이어지고 있는데 외신에서는 ‘신기술 냉전’이라고도 표현한다. 국가 안보에 기반한 경제 안보 조치 퍼즐이 완성됐고, 바이오 분야에서도 섹터별로 진행될 것이다. 현재 초기 단계에 있다.”

디커플링은 국가와 국가, 한 국가와 세계의 경기 등이 같은 흐름을 보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탈동조화다.

정태성 “한국의 의약품·의료기기 수출이 증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위상도 올라가고 있다. 품목별로 보면 차이가 크다. 산업 특성별 경쟁력이라고 하면 가격과 품질에서 가장 먼저 시작하는데 바이오 산업은 너무 많은 요소로 구성돼 있다. 안보에 대한 문제라 막을 수 있다고 스스럼없이 말할 수 있는 게 바이오 산업이다. 수출 경쟁력을 높이려면 산업 특성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경쟁력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바이오 쪽 수요 예측을 정부가 잘 해줘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요 예측을 다 할 수 없지만, 코로나19가 확산·완화하는 시점과 독감 시기 예측처럼 미리 알아보고 움직여야 한다. 바이오는 돌발변수가 너무 많아서 예측력이 있어야 기업들에 도움이 된다. 정부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만들어 정책을 입안했으면 한다.”


박성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김성중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주의·집중해야 하는 시기다. 사실 기업은 일차적으로 만들어진 제도를 따라가는 존재고, 그게 최선이다. 기업이 외국 정부가 통상 규범 위반한다고 직접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새 정부 출범하고 제약·바이오 산업을 ‘제2의 반도체’라고 많이 강조한다. 그러면 반도체가 어떻게 성장했고, 그 성장 과정에서 생겼던 통상 이슈를 어떻게 돌파했는지 등에 대한 사례연구가 매우 필요하다. 우선 정부 차원에서 산업별 전략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 단순히 어떤 분야가 민간에서 활성화하고 있으니 거기에 편승하자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 세계가 예전에 폐기했던 산업 정책을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미국조차 그렇게 움직인다. 제약·바이오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전략을 짜야 한다. 신약 개발 여러 주기 중 연구개발(R&D)에 집중할 것인지 생산·공정에 집중할 것인지. 이런 부분을 검토해 전략을 세워야 한다. 반도체가 제약과 비슷한 점이 많다. 흔히 말하는 팹리스 산업이 제약·바이오로 보면 R&D 영역이고, 삼성전자와 TSMC가 하는 파운드리, 즉 위탁생산은 CMO 같은 영역이다. 통상 분쟁이 불가피하다는 걸 인식하고 돌파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반도체는 크게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로 나뉜다. 각각의 목적은 데이터 저장과 연산·제어 등이다. 비메모리 반도체 업계는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와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Foundry),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 분류된다. 

고준성 “꼭 한마디하고 싶은 것은 미국 경제 안보에 따른 무역, 투자, 산업 안보 지원 공급망 재편은 기본적으로 국가 안보라는 정당성 확보를 위해 치밀하게 짜여있다. 대부분 조치는 국제 규범 정당성 확보를 위한 내부적 검토를 거쳤다. 막 나가는 게 아니다. 우리도 국가첨단산업지원 육성에 관한 법 같은 상응하는 입법 조치가 필요하다. 지금 시기는 국가 안보와 연계해 정당화할 수 있는 분야 품목은 적용할 수 있다. 단순히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조치는 국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국가 안보가 연계돼 있다는 점을 다른 국가에 설득해야 한다. 공급망 기본법이 국회에 발의돼 있는데 국가 안보를 내세워 정당화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가져가야 다른 국가를 상대로 대처할 수 있다. 주요국 안보 통제 대상에 바이오가 다 들어가 있다. 특히 투자 안보 쪽으로 강하게 심사하는 까닭에 바이오 분야 인수합병(M&A) 규모가 1000억달러(약 133조6000억원) 미만으로 줄었다.”


박성준
미·중 갈등이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김정아 “핵심만 말하면 굉장히 고민하는 문제지만 아직 답을 못 찾았다. 우리로서는 정책에 순응하는 쪽을 택하고 싶다. 작은 벤처기업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CMO도 미국 기업을 택했다.”

정태성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기회와 위험 요인 다 존재한다. 바이오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 가운데 하나를 택한다는 것은 어떤 기업에는 기회, 어떤 기업에는 위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바이오는 의료서비스와 의약품, 의료기기, 화장품까지 포함할 수 있는데 일부 의약품과 의료기기는 미국 수출이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미국 조치가 중국 배제를 위하는 거라면 한국 기업에 득이 될 거로 생각한다. 또 어떤 품목은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다. 이 경우 미국 정책에 동조하는 느낌을 우리 정부가 주면 그 기업에는 치명타다. 품목과 핵심 기술별로 면밀히 분석한 결과를 갖고 세부적 내용을 기반으로 품목·국가별 전략을 다양하게 세워야 한다. 기회를 활용하면서 기업에도 피해 안 가는 조치가 꼭 필요하다.”


박성준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는 의미인가.

고준성 “9월 미국의 바이오 행정명령이 발표됐지만, 구체적 지원 내용은 아직 안 나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얼마 전에 발표를 하나 했다. 미국 진출이 시간문제였으니 서둘러 미국에 공장 짓겠다고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이다. 공급망 편 가르기에서 하나의 줄에만 설 수 없다. 다만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리스크 관리가 빠를수록 좋다. 미국 조치와 비슷한 것을 우리는 할 수 없다. 미국 법을 보면 미국 기업과 외국 기업을 다 규제 대상에 넣어놨다. 미국 기술을 보유하면 다 규제 대상이라는 의미다. 바이오가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김정아 “회사별로 잘하는 분야가 있다. R&D를 잘하는 회사는 신약 후보 물질을 만들어 다른 기업에 판다. 물질을 매입한 기업은 임상시험을 통해 판매 허가를 받은 뒤 직접 생산하거나, CMO에 의뢰해 생산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우리 회사의 경우) 미국 편 들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는데 미국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미국 편을 들겠다고 한 것이다. 중국에서 임상하고, 신약 개발하려면 중국 CMO를 택하는 수밖에 없다.”

김성중 “한국에서 혁신과 산업 진흥이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모두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다. 국내서 개발이 일어나고 생산된 신약에 대해 제도적으로 어떤 보상을 해줄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건강보험에서의 약가(약제 가격) 산정 같은 제도를 통해 어떻게 혁신에 대한 보상을 제공할 것인가, 이런 문제 같이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정태성 “핵심 제품·서비스를 수출할 때 로열티 지불을 줄여야 기업과 정부가 더 많은 부(富)를 축적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고민을 같이 해야 한다.”

박성준 “미·중 문제만 강조하는 것 같다. 지금 코로나19 백신 특허 강제 유예가 결정됐고, 진단이나 치료제에도 확대하는 걸 논의하고 있는 시점이다. 메신저 리보핵산(mRNA) 같은 플랫폼은 우리나라에 있지도 않고, 사실 특허 면제된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단 시약 같은 품목은 특허 끝나면 마구잡이로 생산할 수 있다. 이 조치에 대한 피해는 우리가 크지 않나 생각한다. 이에 대한 대응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중국은 미국 거쳐 오는 건 중국에 팔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한국은 가운데에서 고생이다. 어떻게 하면 미국과 중국에 팔 수 있을지 그런 가이드라인도 정부가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김양혁 조선비즈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