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년 뒤의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IT기술이 현기증이 날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것으로 미뤄, 세상은 일반인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변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2020년 가을, 30대 직장인 김진호 차장의 하루를 따라가보자.
생활 구석구석 IT기술 사례 “What a Wonderful World!”







어느덧 늦가을이다. 아침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진호는 잠에서 깨자 약간의 한기를 느꼈다. 더운물로 목욕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온수 좀 받아줘!” 아내에게 말한 것이 아니다.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외쳤다. 진호의 음성을 들은 ‘센서’가 욕실로 주인의 의사를 전달했다. 수도꼭지에서 자동으로 온수가 흘러나와 욕조를 채우기 시작했다. 수온은 진호가 선호하는 40도에 맞춰졌다.

거실로 나온 진호가 “TV 켜”라고 말한다. 벽면의 대형 화면이 켜진다. 이어 그가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미리 설정해둔 맞춤 뉴스가 떴다. 진호는 자기 직업과 연관된 산업 뉴스, 그리고 스포츠 및 문화계 소식을 30여 분간 대충 훑었다.

요즘 가정에서는 대부분 ‘스마트TV’를 들여놓고 있다. 옛날처럼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보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접속해 나만의 옵션을 몇 가지 걸어 놓으면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만 간추려서 볼 수 있다. 한 가지 성가신 게 있기는 하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사족을 못 쓰는 특정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의 광고가 슬며시 끼어드는 것이다. 요즘 광고는 불특정 다수를 향하지 않고 실제 구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잠재 고객층에게 직접 노출되는 방식이다.

목욕을 마친 진호는 집을 나섰다. 진호가 나간 뒤에는 집이 저절로 움직인다(?). 먼저 문고리에 내장된 센서가 지문 인식을 통해 집주인의 외출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창문, 가스 밸브, 수도, 조명 등이 즉각 안전 모드로 전환됐다. ‘디지털홈’이 알아서 척척 집안 단속을 해주는 것이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자 진호의 자동차가 주인을 감지하고 저절로 시동을 건다. 좌석과 실내 공기도 순간적으로 따뜻하게 데워진다. 외부 기온을 파악한 중앙 컨트롤러가 자동으로 온도 조절을 한 것이다. 차에 탄 진호는 먼저 ‘스마트폰’으로 강 상무에게 간단한 메일을 보냈다. “오늘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제가 원하는 곳에서 일하도록 하겠습니다. ‘프로젝트 A’의 진행 경과는 오후 늦게 보고하겠습니다.”

꼭 10년 전 정부는 ‘스마트워크’ 도입을 선언했다. 그 후 일하는 풍속도가 참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 재택근무 및 유연근무 제도가 정착되면서 회사원들이 스스로 근무시간과 장소를 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호는 요 며칠 집안일로 심란하던 차였다. 부부싸움을 벌인 끝에 아내는 짐을 싸 들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회사에 나가봐야 일이 손에 잡힐 리가 만무했다. 간혹 회사에 나가 동료들과 함께 밥 먹고 차 한잔 하는 재미가 있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도 전혀 아니다. 어떡할까? 잠깐 생각한 끝에 그는 모처럼 춘천 소양호로 바람을 쐬러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곳에는 아내와 데이트하던 시절 간혹 가던 호젓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다.



진호는 프로그램 개발자다. 예전에는 사무실이나 집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일할 때 필요한 각종 소프트웨어가 자신의 컴퓨터 안에 저장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무 데서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통해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른바 ‘클라우드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인터넷 서비스가 일반화된 덕분이다. 춘천의 호숫가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은 그래서다.

서울·춘천고속도로에 진입한 진호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어졌다. ‘오토 크루즈’를 작동시켰다. 그러고는 운전석을 뒤로 한껏 제쳐 몸을 묻은 채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늦가을 교외의 풍경을 물끄러미 감상했다. 또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시스템으로 좋아하는 팝가수의 최신 뮤직비디오를 다운받아 틀어놓았다. 기분이 좀 나아지는 듯했다.

그가 핸들을 놓고 있지만 자동차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고속도로를 미끄러져 나갔다. 주변을 보니 다른 운전자들도 적잖이 핸들을 놓고 있었다. 이른바 ‘스마트카’와 ‘지능형교통시스템(ITS)’이 함께 어우러져 빚어내는 환상적인 풍경이다.

어느덧 소양호. 평일 오전이지만 의외로 호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 진호 같은 직장인들도 제법 섞여 있을 것이다. 아내와 자주 가곤 했던 카페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태블릿PC를 켰다. 태블릿PC는 개인용 만능 단말기나 다름없다. 업무, 화상회의, 정보검색, 학습, 엔터테인먼트 등을 태블릿PC 하나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10년 전쯤 본격적으로 등장하더니 금세 노트북의 자리를 빼앗아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 업무에 몰입해 있던 진호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벌써 오후 3시. 아내였다. 사흘 만의 전화다. “당신, 지금 소양호지? 거기는 왜 간 거야?”

진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요즘에는 휴대전화 가입자가 어디를 가든 위치가 파악된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GPS 칩’을 통해서다. 물론 가입자가 사생활을 노출하고 싶지 않으면 GPS 차단 버튼을 누르면 된다. 사실 진호는 평소 GPS를 차단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은 일부러 작동시켜 놓았다. 왠지 아내가 전화할 것 같아서였다. 행선지를 소양호로 잡은 것도 다 뜻이 있었다. 진호의 작전은 적중했다.

“응, 그냥 머리가 좀 복잡해서…. 여기 오면 마음이  차분해질 것 같더라고.” 아내가 맞장구를 쳤다. “거기 갈 거면 같이 가든가. 혼자 청승맞게….” 둘 사이에 생긴 앙금이 슬며시 녹았다.

마음이 한결 가뿐해진 진호는 모처럼 아내와 저녁 외식을 하기로 했다. 요즘 장안의 명물로 떠오른 ‘가상현실 레스토랑’에 전화 예약을 했다. “음, 자리는 하와이 호놀룰루 해변가로 잡아주시고, 주변은 좀 한적했으면 좋겠어요.”

가상현실 기술은 과거 일부 전문적인 영역에서 쓰였지만 이제는 일상생활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경험할 수 있게 됐다. 원한다면 우주조종사가 되어 달나라를 다녀오는 체험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실감이 나더라도 가상은 가상일 뿐. ‘다음 주에는 아내와 함께 하와이로 떠나볼까? 어차피 일은 거기서 해도 되는 거잖아.’ 서울로 돌아오는 진호의 입가에 또 한 번 미소가 번진다. “What a wonderful world~”

김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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