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과 운동의 만남. 스크린 골프로 불을 붙인 가상 스포츠가 새로운 레저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첫선을 보인 스크린 사격은 창업 시장 블루오션으로 떠올랐고, 스크린 야구는 젊은이들의 필수 데이트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이뿐이 아니다. 최근에는 스크린 양궁·마라톤·사이클까지 등장했다. 눈에 띄게 다양해지는 가상 스포츠, 무슨 매력이 있기에 이토록 인기인걸까.

스크린골프에서 점화…양궁·마라톤·사이클까지 등장

#파리 센 강변을 따라 한 여성이 조깅을 한다. 눈앞에 펼쳐진 이국적 풍경을 감상하며 달리는 사이 그를 추월하려는 다른 이들의 발길이 바삐 움직인다. 경쟁심리가 발동한 여성은 조금 더 속도를 내 보지만 결국 나중에 출발한 사람에게 따라 잡혀 코스 밖으로 밀려난다.

지난 2009년 한 중소업체가 개발해 올해 상반기 출시를 앞둔 ‘스크린 마라톤’의 모습이다. 사용자는 일반 러닝머신과 마찬가지로 제자리에서 달리기를 하지만 눈앞에는 원통형 스크린을 통해 마라톤 코스가 펼쳐진다. 배경으로는 서울 한강이나 춘천 의암호 등 국내는 물론 중국 천안문광장,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등 해외 명소가 재현된다.

여러 대의 러닝머신을 연결하면 마라톤대회도 가능하다. 각각의 러닝머신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이 스크린 속에 아바타로 등장해 누군가와 경쟁하는 방식이다. 속도를 높이면 먼저 접속한 아바타를 따라잡을 수 있으며 순위권 밖으로 밀려나면 스크린에서 아바타의 모습이 사라진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 프로그램을 개발한 가미테크(대표 김상선) 관계자는 “TV가 아닌 마라톤이라는 가상현실에 몰입함으로써 운동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동신대 디지털콘텐츠협동연구센터(센터장 박찬종)가 스크린 사이클을 내놓았다. 실제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좌회전·우회전을 하며 사이클링할 수 있으며 스크린상의 언덕에 올라갈 때는 경사도에 따라 페달에 힘이 더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가상현실과 운동의 만남, 이른바 ‘가상 스포츠’ 시대가 열리고 있다. 스크린 골프로 첫발을 내딛은 가상 스포츠는 스크린 마라톤과 사이클에 이어 야구·사격·양궁 등으로 확대됐다.

전문가들은 게임 산업의 발달, 그리고 웰빙을 추구하는 트렌드가 가상 스포츠를 새로운 레저 산업으로 키워냈다고 설명한다.

김대수 한국콘텐츠진흥원 과장은 “‘나이키의 상대는 닌텐도’라는 말처럼 현대인들이 게임을 즐기면서 운동하는 시간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건강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며 “오락성과 운동효과를 모두 갖춘 가상 스포츠가 경쟁력을 가진 비결”이라고 말했다.

스크린 골프방 전국 5000여 개 성업 중

가상 스포츠의 인기는 창업 시장에서 보다 더 실감할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가상 스포츠의 원조 격인 스크린 골프는 직장인들의 퇴근길 문화를 바꿔놓았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정형화돼 있던 뒤풀이가 ‘골프 한 게임’으로 변화한 것. 강남 오피스 거리에 스크린 골프방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까닭이다. 최근 2~3년간 급팽창한 스크린 골프방은 전국적으로 5000여 개에 이를 정도다.

진화된 형태의 스크린 골프방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은 “스크린 골프방이 점점 고급화, 대형화하는 추세”라며 “음식점과 와인바, 주점을 끌어안고 찜질방 및 노래방 역할까지 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스크린 골프방이 창업 시장에서 각광받는 것은 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 업계에 따르면 최근 3개월 내 스크린 골프방을 찾은 이용객은 지난해 상반기 96만 명에서 하반기에 127만 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이에 따라 시설 공급도 증가했다. 스크린 골프 시설 공급 시장은 올해 2600억 원 규모로 세계 최대이며 연간 매출은 약 4000억 원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업계 1위인 골프존(대표 김영찬)의 지난해 매출은 1년 전보다 34% 증가한 1400억 원으로 나타났다.

스크린 골프뿐만이 아니다. 서바이벌 사격게임을 첨단 3D 시뮬레이션과 접목한 스크린 사격 또한 창업 시장의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스크린 사격 시장의 규모는 연간 6000억원 정도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사로 1대당 1000만원으로 창업비용이 저렴한 데다 약 10㎡(3평) 정도의 공간만 있으면 운영이 가능해 영화관·호프집·찜질방·놀이공원 등에 ‘숍인숍’ 형태로도 많이 진출한다.

스크린 사격이 유망 창업 아이템으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이 보장되기 때문. 스크린 사격 업체 6곳을 비교해 본 결과 스크린 사격장을 찾는 고객은 하루 평균 300여 명으로 나타났다. 스크린 골프와 달리 직장인과 학생,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다양한 계층을 끌어안을 수 있다는 점이 주효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의 선발주자인 슛업(대표 이용석)의 김정우 마케팅 팀장은 “사업설명회 첫날부터 500여 명이 모여들었다”며 “가맹점 문의가 많아 매주 사업설명회를 진행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지난 2009년 8월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첫 선을 보인 슛업은 수원·부산·울산 등 전국에 13개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굿샷, 라센 등 6개 스크린 사격 업체가 보유한 가맹점이 30여 개로 확대된 상태다.

인기 비결은 ‘리얼리티’

스크린 사격의 인기 비결은 뭘까. 해답은 리얼리티에 있다. 스크린 사격은 일반 오락실에 설치된 사격게임기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무엇보다 외관이 실제 총기와 거의 흡사하다. 그도 그럴 것이 군대나 경찰에서 쓰는 사격 시뮬레이터를 민간용으로 개조한 장비를 사용하기 때문. 전직 사격선수 출신의 슛업 관계자는 “방아쇠를 당기면 구경 9㎜ 정도의 자동권총의 반동이 그대로 손목에 전달된다”며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총기 반동률을 96%까지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쏘는 방식도 다르다. 스크린 사격은 크게 비비탄 방식과 레이저 방식으로 분류된다. 주로 쓰이는 레이저 방식은 사용자가 총기를 겨냥하면 적외선 카메라가 명중 여부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실탄 대신 레이저 빔을 사용해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 국내 업체 중 굿샷(대표 김재건)이 특허를 낸 비비탄 방식은 스크린 자체가 터치패드 센서다. 발사된 비비탄이 터치스크린을 자극해 명중 여부를 곧바로 컴퓨터에 전송하기 때문에 보다 정확도가 높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완성도 높은 그래픽과 다양한 콘텐츠, 사운드가 실제 총을 쏘는 듯 한 생생한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총 속에 공기나 가스를 유입해 발사 시 충격에 의해 ‘탕’ 하고 소리가 나도록 한 것이다. 서울 홍익대 앞에 위치한 스크린 사격장을 찾은 김민형씨(26)는 “총을 쏘는 느낌이 군대에서 경험한 것과 흡사하다“며 “여자친구와 종종 데이트코스로 이용한다”고 말했다.

리얼리티하면 스크린 야구도 둘째가라면 서럽다. 지난 2007년 대전 둔산동에 들어선 홈런왕배팅센터(대표 박종대)는 실제 야구장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기존 실내야구연습장과 달리 스크린을 통해 투수의 동작이 비춰진 다음 피칭기계에서 야구공이 튀어나와 집중도가 훨씬 높아진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외관도 실제 야구장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타석과 스크린의 거리가 18.4m로 길고 공의 속도 역시 60~150㎞로 현장감을 높였다.

볼을 치면 그 자리에서 안타, 홈런과 같은 타격 판정까지 해준다. 이런 사실성 덕분에 스크린 야구는 두터운 마니아층이 있다. 다음카페 ‘홈런왕배팅센터(http://www.daum.net/homerunwang)’는 회원 수가 2000여 명에 달한다. 현재 대전 본점에 이어 울산·천안·수원 등 가맹점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박창일 홈런왕배팅센터 천안점 사장은 “하루에 스크린 야구장을 찾는 고객이 300여 명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아직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상반기에 알디텍(대표 최승환)이 선보일 예정인 스크린 양궁 역시 리얼리티를 강조했다. 선수용 양궁 모션 분석 시스템인 ‘엑스아처리(X-ARCHERY)’를 레포츠용으로 응용한 스크린 양궁은 유압실린더를 장착한 화살이 과녁을 향해 날아가지는 않지만 활의 기울기·장력 등이 전방의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다. 활시위를 당겼다가 놓을 때의 장력을 측정해 활의 발사 속도를 측정하고, 스크린의 적외선 센서와 활에 장착된 적외선 라임 빔을 이용해 비행궤적과 꽂히는 위치를 계산해낸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시장 수요 충족해야 ‘롱런’

최근 다양한 형태의 가상 스포츠가 등장하는 것은 스크린 골프의 성공에 따른 기대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스크린 골프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서 모든 가상 스포츠가 승승장구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시장의 수요에 맞지 않다면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란 설명이다.

김대수 한국콘텐츠진흥원 과장은 “스크린 골프가 인기를 끈 것은 접근성과 리얼리티 외에 기존 골프인구를 끌어안았기 때문”이라며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고 오락성만 있는 가상 스포츠는 산업으로 성장하기 힘들다”고 잘라 말했다. 골프와 마찬가지로 마니아층을 끌어안은 야구, 국민 절반이 남성인 만큼 군필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사격과 달리 양궁은 선수를 제외한 일반인이 평소에 접하기 힘든 종목인 만큼 수요층이 확보될지는 불투명하다는 설명이다.

한편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가상 스포츠의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배 교수는 “스크린 사격은 군필자가 아닌 여성과 어린이들에게도 호응을 얻는다”며 가상 스포츠가 인기를 끄는 것은 현실에서 체험하지 못한 것을 대리만족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보통 드라이브 거리가 200야드인 사람이 스크린 골프에서는 400~500야드의 드라이브샷을 날림으로써 쾌감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배 교수는 그러나 현실적 요소를 배제한 가상 스포츠는 산업으로 성장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스크린 러닝머신이나 사이클의 경우 한 사람이 오래 사용하게 되는 데다 공간도 많이 차지해 회전율이 중요한 헬스클럽에서 굳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장비를 구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효동 아주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가상 스포츠가 새로운 문화 아이콘으로 등장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잠시 반짝하는 데 그칠지 장기적으로 성장할지는 조금 더 두고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김주영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