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만에 사상 첫 분기 손실을 발표한 후 8월 9일 서울 시내 한 이마트 매장. 사진 조선일보 DB
26년 만에 사상 첫 분기 손실을 발표한 후 8월 9일 서울 시내 한 이마트 매장. 사진 조선일보 DB

한국의 유통 공룡 이마트가 2분기 어닝 쇼크에 빠졌다. 적자 규모도 당초 증권 시장 전문가 예상치(당기순손실 49억~105억원)의 두 배가 넘었다. 매출액 기준 국내 유통 1위로 신세계 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이마트의 어닝 쇼크는 세계 유통 업계에 닥친 위기가 한국에서도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8월 8일 이마트는 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2분기 매출액이 4조581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14.8% 증가한 것으로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영업이익이었다. 영업 손실 29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33억원에서 적자 전환했다. 1993년 이마트 창사 이후 처음이다.

이마트는 매출 기준 국내 1위 유통업체다. 2등(롯데마트·6조원)과 두 배 이상, 업태가 다른 유통업체 롯데백화점(3조원), GS리테일(8조원) 등과도 차이가 있다. 경기 불황이 내수 침체로 이어진 탓에 경쟁사 롯데마트가 2015년부터 영업 손실을 내는 등 유통 업계 실적 부진이 가시화되기는 했지만, 1위 업체가 적자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회사는 2분기가 전통적인 비수기인 데다, 공시 지가 상승에 따른 재산세 부담을 일시적인 비용 상승 요인으로 들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유통업계에 불어 닥친 위기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풀이한다. 현재 유통업계는 쿠팡으로 대표되는 신생 이커머스 진영과 신세계·롯데 등 기존 유통 강자 진영이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소비 패턴은 매장 방문에서 온라인·모바일 쇼핑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우려가 현실화된 지 오래다. 125년 역사의 중저가 백화점 시어스, 미 전역에서 볼 수 있는 장난감 매장 토이저러스, 명품 패션에 특화한 96년 전통의 바니스 등이 지난 1~2년 사이 아마존의 공세에 밀려 파산했다. 일본 유통업체들도 소비 침체로 위기를 겪고 있다.

위기감을 느낀 이마트도 2015년부터 유통 시장 파고(波高)에 대비해 여러 실험을 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당시 “가격 할인이 아니라 이마트를 찾아와야 할 본질적 이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세상에 없던 유통’을 내세웠다. 이때 내놓은 간편 가정식 브랜드 ‘피코크’, 자체 브랜드(PB) ‘노브랜드’, 가전 전문점 ‘일렉트로마트’ 등이 잇따라 성공을 거두면서 정 부회장 주도의 유통 혁신이 빛을 보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정 부회장의 관심은 ‘유통·소비자 경험’으로 확장했다. 2017년 하반기 경영전략회의 특강에서는 “15년 만에 대형마트 매출이 반 토막 난 일본처럼 우리나라 대형마트도 더 편하고 즐거운 경쟁 업태에 밀릴 수 있다”고 했고, 2018년 신년사에서는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로 고객이 찾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 결과물이 만물잡화점 ‘삐에로쑈핑’, 드럭스토어 ‘부츠’의 개점, 일렉트로마트 캐릭터의 영화화 사업 등이었다.

그러나 2019년 실적 악화 직격탄을 맞은 이마트는 당분간 본업인 마트 유통 사업의 정상화에 힘을 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회사는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로 했다. 13일 이마트는 공시에서 1000억원어치 자사주를 매입하고, ‘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10여 개 내외의 자가 점포(전체 135개)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올 초 대비 50% 가까이 떨어진 주가를 방어하고 자산 매각으로 현금을 마련해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마트의 승부수 새벽배송·초저가

전문가들은 이마트가 가진 강점과 자원 활용이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마트의 구매력으로 초저가 전략을 펼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활용해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 142개에 달하는 점포 중 일부를 온라인 배송용 물류센터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 부회장도 올 초 신년사에서 “미지의 영역인 초저가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자”며 ‘상식을 벗어난 초저가’ 제품을 주문한 바 있다. 그 결과가 ‘국민 가격’ 시리즈다. 이마트는 와인 판매가를 4900원으로 맞추기 위해 수입 물량을 3000병에서 100만 병으로 대폭 늘렸다. 주문량을 300배 이상 늘려 가격을 60% 이상 떨어뜨린 것이다. 이마트는 다양한 품목을 정해 판매 단가를 ‘온라인보다 더 싸게’ 맞출 예정이다.

이마트 매장 리모델링도 진행 중이다. 유명 맛집을 이마트 푸드코트에 입점시키거나 게이밍·VR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일렉트로마트를 열어 체험 공간을 확보하는 식이다. 실제로 15일 오전 찾은 이마트 월계점은 푸드코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개점 초창기부터 있던 낡은 푸드코트를 리모델링해 소비자들이 찾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신선식품 새벽배송도 강화해 한국 유통 시장 움직임에 발맞추고 있다. 지난 3월 신세계와 이마트 온라인 사업을 SSG닷컴으로 통합했고, 3개월 후 SSG닷컴을 통해 마켓컬리·쿠팡이 잡고 있는 새벽배송 시장에 진출했다. 특히 8000억원 규모로 커진 신선식품 새벽배송이 올해 유통업계의 키워드로 자리잡으면서 이마트 내부적으로도 더 늦기 전에 이 시장을 잡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 내부 관계자는 “지난 연말에서 올 초 사이 이 시장 진출에 대한 고심이 있었다”면서 “모든 업체가 수익은 커녕 적자를 내는 새벽배송 시장 진출이 부담스러웠지만 시장 대세를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6월 말 시작한 SSG닷컴 새벽배송은 서비스 시작 1개월 만에 하루 주문 건수 5000건을 기록했고, 추가 물류센터 확충으로 연말 1만 건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켓컬리는 4만 건, 쿠팡은 7만 건이다.


plus point

아마존에 맞서는 미국 유통사들

미국의 중저가 백화점 콜스는 지난 4월부터 전국 1150개 매장에 아마존 반품 코너를 열었다. 일부 지역에서 2년 전부터 운영하던 서비스를 확대 적용한 것이다. 이 서비스는 아마존 고객이 산 물건을 반품하고 싶을 때 콜스를 방문하면, 콜스 직원이 무료로 반품을 대행해 주는 것이다. 콜스가 이런 서비스를 하는 것은 적(아마존)의 고객이라도 어떻게든 백화점으로 끌어들여 구매를 유도해 보겠다는 것이다. 콜스는 반품 소비자를 위한 전용 주차 공간을 마련하고, 매장용 할인쿠폰까지 제공했다. 실제로 아마존 반품 서비스를 먼저 시행했던 일부 매장의 매출 상승률은 10%에 달했다. 평균의 두 배였다.

유기농 마트 체인 트레이더조는 자사만의 특색 있는 제품으로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취급 상품은 4000종 정도로 월마트 등 기존 마트(5만 종)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만든 다양한 종류의 소스, 향신료, 스낵 등으로 면적당 매출을 끌어올렸다. 2014년 JLL 조사에 따르면 트레이더조의 평방피트(ft²)당 매출은 1734달러로 경쟁 유기농 마트 체인 홀푸드(930달러)의 두 배가 넘었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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