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재계 임원 인사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올해는 내수 시장 둔화와 고용 환경 변화, 수출 규제, 무역 분쟁 등 대내외 경영 환경이 급변한 가운데 암울한 경제 상황이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란 전망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은 연말 인사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을까. 12월 5일까지 발표된 대기업 인사 키워드를 세 가지 기업 유형으로 나눠 살펴봤다.


오너家│GS·한화…3·4세 전면으로

올해 재계 인사의 특징은 오너가(家) 3·4세들이 경영 일선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회사를 이끌던 2세 회장이 물러나고 부문장급에 있던 다음 세대가 승진으로 임원을 달았다. 12월 3일 재계 8위 GS그룹 인사에서 GS건설 허윤홍(40)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허 신임 사장은 같은 날 GS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허창수 회장의 장남으로 GS건설에서 신사업추진실장을 맡고 있었다. 재계에서는 지난해 인사에서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인 허세홍(50) 사장이 GS칼텍스 대표를 맡은 데 이어, 올해도 허윤홍 부사장이 승진하는 등 GS의 4세 경영이 본격화됐다고 분석한다. 허동수 회장은 허창수 회장의 사촌형이다.

한화그룹에서도 3세 경영이 닻을 올렸다. 12월 2일 발표된 인사에서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6)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전무 승진 4년 만이다. 김 부사장은 태양광 부문 사업을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 부사장은 내년 1월 출범하는 한화케미칼과 한화큐셀의 합병법인 한화솔루션(가칭)의 전략부문장을 맡게 된다. 태양광·석유화학·소재를 아우르는 핵심 직책으로 이번 승진으로 김 부사장이 한화그룹 화학 계열사 전반을 맡는다는 재계의 시나리오가 구체화됐다. 김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는 금융 부문 디지털전략을 맡고 있다.


3대 그룹│과감한 쇄신, 구광모의 LG

3대 그룹사 중 가장 먼저 임원 인사에 나서며 연말 인사 시즌 신호탄을 올린 LG그룹의 키워드는 쇄신과 젊은 조직이었다. 특히 올해 인사는 구광모 회장이 취임 후 두 번째로 맞는 정기인사였던 터라 그의 결정에 관심이 쏠렸다. 구 회장은 주요 계열사인 LG전자 CEO를 교체하며 쇄신을 꾀했다. ‘세탁기 박사’로 불렸던 고졸신화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이 물러나고 권봉석(56)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HE(홈엔터테인먼트) 사업본부장(사장)이 신임 CEO로 임명됐다. 조 부회장의 사임으로 고(故) 구본무 회장과 함께 LG전자를 이끌던 부회장단 6명 중 5인이 교체됐다. 남은 1인인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유임됐다. 30대 여성 임원도 올해 LG그룹 인사 키워드다. 입사 12년 만에, 마케터로 입사해 LG생활건강 상무로 승진한 심미진(34) 사업총괄은 1985년생으로 그룹 역사상 최연소 임원이 됐다.

올해 하반기 임원 직급을 폐지한 SK그룹의 정기 인사 규모는 예상대로 크지 않았다. 12월 5일 발표된 SK는 인사에서 SK㈜, SK텔레콤,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등 주력 관계사 CEO는 모두 유임으로, 안정의 리더십을 택했다. 한편에서는 SK C&C, SK루브리컨츠, SK브로드밴드, SK머티리얼즈에 모두 50대 CEO를 선임하고 젊은 임원들을 주요 위치에 배치하는 등 세대 교체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같은 날 현대차그룹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장 하언태(57)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의 연말 인사를 단행했다. 올해부터 전문성과 사업 성과에 기반한 수시 임원 인사를 하기로 해 인사 규모가 작았다.

삼성전자의 정기 인사 관전 포인트는 부문장 교체 여부다. 삼성전자 3개 사업부인 디바이스솔루션(DS·반도체), IT·모바일(IM), 소비자가전(CE)은 김기남 부문장(61·부회장), 고동진(58)·김현석(58) 사장이 이끌고 있다. 다만 재계에서는 3인 공동 대표이사 체제가 출범한 지 2년밖에 안 된 데다,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 속에서 대폭 교체는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3인 대표의 임기는 모두 2021년 3월까지다.


유통街│급변하는 환경 속 외부 수혈

유통 시장을 움직이는 힘이 온라인쪽으로 이동하는 대격변 속에 오프라인 유통 업계는 대표이사 교체라는 초강수를 뒀다. 가장 먼저 움직인 곳은 올해 최악의 실적을 냈던 유통 공룡 이마트다. 신세계에서 37년간 근무한 유통 전문가 이갑수(62) 대표이사가 물러나고 컨설팅 회사 베인앤컴퍼니 파트너 출신의 강희석(50) 대표가 선임됐다. 사상 첫 외부 출신 대표이사다. 이마트는 지난 2분기 창립 26년 만에 첫 분기 적자를 내며 오프라인 유통 업계가 맞닥뜨린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런 영향으로 올해 이마트는 그룹 내에서도 가장 이른 10월 임원 인사를 단행했다. 보통 11월 말 그룹과 함께 임원 인사를 냈던 것과 다른 움직임이었다. 인사에서 신세계는 차정호(62)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를 신세계 대표이사로, 장재영(59) 신세계 대표는 신세계인터내셔날 대표이사로 승진시켰다. 두 회사 경영진을 맞바꾼 것으로, 성장 속도에 필요한 인물을 배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현대백화점그룹도 예년보다 열흘 가까이 사장단 인사를 앞당겼다. 이번 인사에서 그룹의 핵심 경영진이자 1950년대생인 이동호(63) 부회장, 박동운(61) 사장, 김화응(60) 현대리바트 사장이 모두 물러나게 됐다. 이들의 배턴을 이어받은 인물은 모두 50대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는 평가다. 현대백화점 신임 대표이사에 김형종(59) 한섬 사장, 한섬 대표이사에 김민덕(52) 한섬 경영지원본부장, 현대리바트 대표이사에 윤기철(57) 현대백화점 경영지원본부장이 선임됐다. 김 신임 사장과 김 신임 대표이사는 모두 한섬을 그룹 내 알짜배기 회사로 키워낸 공을 인정받았다. 실제로 김 사장이 2013년 한섬 대표이사를 맡은 이후 매출은 4900억원에서 지난해 1조3000억원으로 2배 넘게 커졌다.

12월 중순 중 정기 임원 인사를 앞둔 롯데그룹도 큰 폭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재계 관계자들의 예측이다. 특히 롯데는 내년 상반기 7개 계열사 온라인 조직을 합친 ‘통합 온라인몰’ 출범을 앞두고 조직을 재정비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이 사업에 그룹 미래가 달려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여기에 지난 10월 신동빈 회장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경영간담회에서 황각규 부회장이 비상경영체제 전환을 요청한 것도 대폭 인사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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